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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로 쓴 SBS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 김남길과 한가인, 오연수 등이 주연을 맡아 남녀의 사랑과 야망, 복수를 그렸다.
 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로 쓴 SBS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 김남길과 한가인, 오연수 등이 주연을 맡아 남녀의 사랑과 야망, 복수를 그렸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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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드라마 <나쁜 남자>,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KBS 대기획 <의궤, 8일간의 축제>, MBC 다큐멘터리 <바다愛 물들다>... 우리에게 익숙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들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캘리그래피 작가 진성영(45)씨가 제목 글씨를 썼다는 점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뿐 아니다. 진씨는 가수들의 음반 제목과 각종 포스터, 책 표지 글씨도 많이 썼다. 전남도청 소식지 <전남새뜸> 등 신문과 사보, 잡지의 제호도 수없이 썼다.

한결같이 글씨가 맛깔스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의 한 은행 지점 앞에서 진씨를 만나 캘리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9월 12일 서울의 한 은행 지점 앞에서 만났다.
 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9월 12일 서울의 한 은행 지점 앞에서 만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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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영 씨가 도자기에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고 있다. 드라마와 음반의 제목, 책 표지 등을 캘리그래피로 써 온 진 씨는 도자기와 컵 등 생활용품에도 캘리그래피를 적용해 대중화시키고 있다.
 진성영 씨가 도자기에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고 있다. 드라마와 음반의 제목, 책 표지 등을 캘리그래피로 써 온 진 씨는 도자기와 컵 등 생활용품에도 캘리그래피를 적용해 대중화시키고 있다.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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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의 글씨가 멋있고,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글씨 몇 자를 쓰려고 현장까지 답사하는, 그의 철저한 프로정신과 열정에서 읽힌다. '징비록-임진왜란, 피로 쓴 교훈'은 안동 하회마을까지 답사하고 나서 썼다고.

"류성룡 선생의 생가가 있는 안동 하회마을에 갔었어요. 임진왜란 7년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고 쓴 징비록의 흔적을 찾아보려고요. 옥연정사의 마당을 거닐고, 부용대를 바라보면서 당시 선생의 마음을 떠올려봤죠."

작업실로 돌아온 진씨는 '징비록'이란 글씨를 수없이 썼다. 수백 수천 번도 아닌, 1만7300번을 썼다고. 이 가운데 하나가 드라마의 표제가 된 '징비록'이다. 거저 책상에서 쓴 글씨가 아니었다. 그의 열정과 발품으로 쓴 글씨였다.

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로 쓴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진 씨가 하회마을에 있는 류성룡의 생가에까지 답사하고 와서 쓴 글씨다.
 진성영 씨가 캘리그래피로 쓴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진 씨가 하회마을에 있는 류성룡의 생가에까지 답사하고 와서 쓴 글씨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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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가독성이 높아야죠. 글자가 정확히 보이고, 문장의 내용이 쉽게 전달되는 게 관건이에요. 시선이 고정될 수 있도록 공간 안에서 차별성도 둬야 하고요. 물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리듬감도 살아 있어야 하고요. 선의 움직임과 형태를 통한 조형미에다 나만의 개성도 있어야죠."

진씨가 이야기하는 좋은 캘리그래피의 조건이다. 이런저런 설명이 없더라도, 글자만으로 읽고 이해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가독성과 주목성, 율동성, 조형성, 독창성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성영 씨는 일상에서 머그컵 등을 이용,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글씨가 새겨진 머그컵은 기념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진성영 씨는 일상에서 머그컵 등을 이용,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글씨가 새겨진 머그컵은 기념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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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영 씨가 즉석에서 써준 캘리그래피. '말하는 글씨, 맛있는 글씨로'다.
 진성영 씨가 즉석에서 써준 캘리그래피. '말하는 글씨, 맛있는 글씨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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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씨는 전라남도 진도에 속한 섬, 조도에서 나고 자랐다. 전남에서 대학을 다니고, 한때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영상 촬영 일을 했다. 캘리그래피를 접한 건 8년 전, 서울의 한 회사방송국에 프로듀서로 근무할 때였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제목의 글씨를 컴퓨터 서체가 아닌, 다른 글씨로 독특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단다.

다짜고짜 필방에서 붓과 먹을 샀다. 진도에서 나고 자란 덕에 서예의 기본은 익힌 터였다. 진씨는 사무실에서 먹을 갈아 여러 가지 모양의 글씨를 써봤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글자에서 삶의 질곡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흡족했다.

지난 9월 12일 서울의 한 은행 지점 앞에서 만난 진성영 씨. 머리를 풀어도 멋지겠다고 했더니, 묶고 있던 머리를 바로 풀어 보였다.
 지난 9월 12일 서울의 한 은행 지점 앞에서 만난 진성영 씨. 머리를 풀어도 멋지겠다고 했더니, 묶고 있던 머리를 바로 풀어 보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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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막 쓴 글씨였어요. 따로 가르침을 받거나 공부를 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처음과 달리, 쓰면 쓸수록 글씨가 점점 빗나가더라고요. 한계였죠."

몇 달 뒤, 진씨는 텔레비전에서 캘리그래피가 조명되는 것을 우연히 봤다. 자신이 쓴 글씨가 캘리그래피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평소 성격대로 도전정신이 발동했다. 제대로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서예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초정 권창륜 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 본격적인 캘리그래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진성영 씨는 최근 펴낸 <캘리그라피를 말하다>의 앞표지.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도록 캘리그래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진성영 씨는 최근 펴낸 <캘리그라피를 말하다>의 앞표지.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도록 캘리그래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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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를 들어 캘리그래피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래피는 가독성과 정확성, 차별성, 유연성, 조형성, 창조성 등을 갖춰야 한다는 게 진 씨의 얘기다.
 실제 사례를 들어 캘리그래피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래피는 가독성과 정확성, 차별성, 유연성, 조형성, 창조성 등을 갖춰야 한다는 게 진 씨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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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손으로 쓴 글씨를 일컫는다. 밋밋한 글자를 손글씨로 독특하면서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자에 옷을 입히는 작업인 셈이다. 감성디자인이 강조되는 요즘 시대와 딱 어울리는 글씨다.

"세상에 하나뿐인 글씨잖아요. 이 글씨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고요. 실제, 제 글씨가 희망을 준 사례도 있거든요. 이제 캘리그래피의 매력이고 마력인 것 같습니다."

진씨는 최근 캘리그래피의 모든 것을 담은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를 펴냈다. 지난 9월 10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출간기념회도 열었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인데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놀이처럼 즐겁고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글자에 독창적인 옷을 입혀서 말하는 글씨, 맛있는 글씨로 만드는 진씨에게서 캘리그래피의 정수를 본다. 한글의 멋과 맛도 높아진다.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출판기념회 모습. 지난 9월 10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렸다.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출판기념회 모습. 지난 9월 10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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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출판기념회 모습. 저자 진 씨가 책 안 표지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지난 9월 10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진성영 씨의 책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출판기념회 모습. 저자 진 씨가 책 안 표지에 사인을 해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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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를 말하다 - 말하는 글씨, 맛있는 글씨 석산 진성영의

석산 진성영 지음, 영진.com(영진닷컴)(2016)


태그:#캘리그래피, #진성영, #징비록, #나쁜남자, #캘리그라피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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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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