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가위 밤 하늘에 뜬 '슈퍼문'  민족대명절 추석인 27일 오후 올해 뜨는 달 중 가장 둥근 보름달인 슈퍼문이 부산 수영구에서 바라본 하늘에 환하게 떠 있다.
슈퍼문은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평소보다 밝고 커진 달을 말한다.
달의 크기가 변화하는 이유는 달이 지구 주위를 타원궤도로 공전하면서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가위 보름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35만 6882km이다. 이는 달과 지구 사이의 평균거리인 약 38만km 보다 약 2만3000km 가까워진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이번 보름달은 올해 가장 작았던 3월 6일의 보름달에 비해 약 14% 크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 한가위 밤 하늘에 뜬 '슈퍼문' 지난해 9월 27일 추석, 보름달이 떠 있는 모습.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겨레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한가위 추석이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이 무렵은 중추가절(仲秋佳節)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게 풍성하다. 게다가 이 날은 예로부터 즐거운 민속놀이로 밤낮을 즐겁게 지내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겨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옛날 사람들은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매우 부족했다. 그렇게 헐벗고 굶주리다가 이 날에 이르러서야 새 옷을 한 벌 얻어 입었고, 또 배부르게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말로 그 유래는 참으로 가슴 아프다.

지난 시절 우리 조상들은 모든 게 부족해 매우 힘들게 살았다. 가난한 시골의 여성들은 시집을 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먹지 못하고 혼인한다고 할 만큼, 보리나 감자, 옥수수나 귀리로 끼니를 잇거나 하루에 한두 끼는 나물죽으로 때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놀면 쉬 배가 꺼진다고 뛰어놀지도 못하게 할 만큼 대부분 백성들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물론 그 시절에도 사대부 양반 댁이나 일제강점기 때 관리들은 요즘 못지않은 풍요를 누렸을 테지만은 대부분 백성들은 몹시 가난했다. 그 까닭은 조선시대에는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애써 지어놓은 곡식들의 대부분을 군량미나 공출로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도 추석 날이면 '조상님 덕에 이밥'이라는 말처럼, 햇곡식으로 배불리 먹었고, 새 옷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손꼽아 이 날을 기다렸다.  

추석과 한가위의 유래

추석은 오늘날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으로, 그 유래는 고대 사회의 풍농제(豊農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득한 원시시절부터 조상들은 이른 봄부터 여름내 땀 흘려 지은 오곡백과를 거둔 뒤, 조상에 대한 추원보본(追遠報本,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음)의 천신제(薦新祭, 새로 난 햇곡식과 과일을 먼저 신에게 바침)를 지냈다. 그 제물은 그해 새로 수확한 곡식과 과일이었다. 그 천신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그 제물을 나눠 먹으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보름달밤을 즐겼다.

한가위의 유래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라 유리왕이 왕녀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성들을 두 편으로 나눠 7월 16일부터 베를 짜게 했다. 한 달이 지난 8월 15일에 이르러 그동안 짠 베의 양을 가지고 승부를 가렸다. 그런 뒤 진 편은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내놓으면서 노래와 춤으로 승자를 축하하며 함께 각종 놀이를 하면서 즐겼다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 '가배'가 오늘날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 가위란 한 가운데라는 뜻으로 음력 8월 15일을 말한다. 이때에 부른 노래가 슬프고 아름다워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고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자랐다. 그 무렵 추석 준비는 안방과 사랑이 사뭇 달랐다. 안방의 할머니는 추석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곳간에서 놋쇠 제기를 꺼낸 뒤 그걸 하나하나 윤이 번쩍 나도록 닦았다. 

그럴 즈음이면 사랑의 할아버지는 낫을 들고 논으로 가셨다. 대체로 추석은 햅쌀이 본격으로 쏟아지는 시기보다 조금 빨랐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벼논 가운데 가장 먼저 익은 벼를 벤 뒤 그것을 하루나 이틀 햇볕에 말렸다. 그런 다음 그것을 타작해 알곡을 방아를 찧었다. 할머니는 그 햅쌀로 술을 빚었고, 시루떡을 만들거나 송편을 빚었다.

추석날 추억

 추석을 며칠 앞두고 붐비는 남대문 시장(1977년 09월 23일).
 추석을 며칠 앞두고 붐비는 남대문 시장(1977년 09월 23일).
ⓒ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관련사진보기


 추석 때 가족들 송편 빚는 모습(1957).
 추석 때 가족들 송편 빚는 모습(1957).
ⓒ 국가기록원

관련사진보기


추석 대목 장날이면 할머니는 이런저런 제수를 마련했다. 가장 먼저 건어물을 마련했는데, 문어, 가오리, 북어, 홍합 그리고 조기를 산 뒤 나를 아동복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할머니는 내 옷을 꼭 1~2년은 더 입을 수 있도록 품이 넉넉한 걸로 샀다.

나는 큼직한 그 옷이나마 당장 입고 싶은데 할머니는 그 옷은 옷장에 넣고 명절날에야 입게 했다. 그래서 하룻밤 자고 날 때마다 그 옷을 빨리 입고 싶어 추석이 언제냐고 물었다.

추석 2~3일 전에는 모두가 바빴다. 물에다 불린 햅쌀을 디딜방아로 곱게 빻고, 그걸 찐 다음 송편을 빚었다. 그 송편에는 참깨, 팥, 콩, 밤 등의 소를 넣었다. 그럴 때 내 몫은 뒷산에 가서 솔잎을 따오는 일이었다.

그 무렵이면 부산에 사시는 어머니도 오시기에 나는 이래저래 날마다 신이 났다. 추석 전날 할아버지는 식전 댓바람부터 닭장에서 씨암탉을 한 마리 잡아 목을 비튼 뒤 가마솥에 끓인 물에다 잠시 집어넣고 살짝 익힌 다음 털을 뽑았다. 그런 뒤 푹 그걸 삶아 제상에 올릴 수 있도록 장만하셨다.

집안 한편에서는 부침개나 어물들을 굽거나 지지느라 부산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칭얼거리면서 그걸 한 입씩 받아먹을 때 그 즐거움이란. 그래서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추석을 기다렸다. 그렇게 야단스럽고 분주했던, 그 즐거운 추석 명절의 추억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점차 간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는 서울에서 전날 용케 구한 열차표로 밤새 고향집에 가서 차례를 지낸 뒤 가족들과 제수 음식들을 즐겁게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한 나절을 보낸 뒤 그날 밤 열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결혼한 뒤 제사를 물려받은 1980년대 이후부터는 고생고생 고향으로 내려가는 그런 수고는 사라져 버렸다.

명절증후군

시대가 엄청 바꿨다. 어린 시절에 본 만화에서는 "열려라 참깨"라고 부르짖으면, 동굴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런 상상 속의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지 오래다. 배가 꺼진다고 뛰지도 못하게 했던 어른들의 잔소리가 이제는 아이들의 비만을 걱정하며 많이 뛰라고 권유하는 시대가 된 지도 오래다. 세월이 흐르면 바뀌지 않은 게 없다.

일부 가정에서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 다가오면 명절증후군에, 명절을 쇠고 나면 명절후유증으로 심지어 가정이 깨지는 세태다. 이런 격변의 세태에 나는 아직도 옛 풍습에만 젖어있거나 이의 고수를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명절의 참뜻과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각 가정마다 그 집의 현실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명절 지내는 방법을 찾을 때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외딸, 외아들, 외며느리인 핵 가정에서 내 부모 내 조상만 중요하다고 부부 간 고부 간 갈등을 빚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오늘날 해외동포 800만 시대에 명절날 가족 상봉도 무리한 일하다. 앞으로 해외 진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난날 많은 자녀를 둔 다산(多産) 시절의 농경사회에서는 가까운 온 집안의 새댁들이 큰집에 모여 제수를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한두 자녀인데다가 다양한 산업사회로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모처럼 명절 연휴 내내 집에서 제수 준비에만 골몰한다면 여성들은 명절증후군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명절 풍속도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못골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전을 구입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못골종합시장에서 시민들이 전을 구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실 지나친 효(孝) 문화, 비합리적인 조상숭배 문화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침체케 했던 원인의 하나였다. 즐거워야 할 명절 날을 맞이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재래의 풍습으로 가족 간 갈등을 빚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이번 추석에 집안 식구들이 모이면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때 먼저 어른들이 이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새로운 명절 풍속도의 물꼬를 터주는 게 좋을 듯하다.

이 좋은 중추가절에 자녀들이 모처럼의 연휴를 조용히, 호젓이 즐기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앞으로 추석이나 설 연휴에 여건이 허락되면 해외여행도 가고, 국내 여행도 가라. 보름달은 세계 어느 곳에도 뜬다.

한가위 추석날, 그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먼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고 부모님과 친지 어른께는 따뜻한 감사의 말이나 문자를 보내는 것은 현대판 자녀들이 보내는 명절의 한 풍속도이리라.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인파로 가득한 모습.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인파로 가득한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태그:#한가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