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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흙길을 걷는 어느 스님, 밀짚모자를 벗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무소유 흙길을 걷는 어느 스님, 밀짚모자를 벗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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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봅니다.
 순천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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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길'을 걷습니다. 흙길입니다. 사람들 발걸음이 더딘 탓일까. 푸석푸석합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가 걸으며 숨쉬었을, 이 길 위에 선다는 게 중요하지요. 땀을 닦습니다. 대나무 숲길도 있습니다. 무더위가 한 겹 걸러져 선선한 기운이 완연합니다. 스님 한 분 저만치 걷습니다. 한 손에 밀짚모자 들었습니다. 빡빡 깎은 민머리가 까슬했을까? 차마 묻지 못하고 말을 돌립니다.

"스님, 어디 가십니까?"
"불일암 갑니다."
"무슨 일로?"
"스님께 문안 여쭈어야지요."

불일암 가는 길, 빡빡 민머리 스님께서 밀짚모자를 들었습니다.
 불일암 가는 길, 빡빡 민머리 스님께서 밀짚모자를 들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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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지요. 불일암. 스님께서 기거했던 암자입니다. 살아생전 글을 통해 먼발치로 보았기에, 그가 쉬던 공간이 낯설지 않습니다. 님 가신 후, 뒤늦은 발걸음에 그의 향기 묻어납니다. 그에게로 향하는 무소유 길 위에 님이 남긴 글들이 삶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에게 '무소유'는 욕심 없는 '아름다운 소유'의 다른 말이었다지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 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

"행복은 결코 맑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일암 입구입니다.
 불일암 입구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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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대나무 사이로 불현듯 나타납니다. 나무의자 위에 걸린 사진 한 장. 법정 스님께서 '어서 오시게'라면서도 '서늘하면 오시지, 이 무더위에 오시는가?' 타박하며 반기는 듯합니다. 뎅그러니 걸려 있는 사진에서 죽은 제갈량이 살아 있는 사마천의 간담 서늘하게 했다는 삼국지 속 광경을 떠올립니다. 삶, 이쯤이면 찔리는 게 있지 싶습니다.

사진 아래로 책갈피, 방명록, 필기도구 통, 사탕 단지가 놓였습니다. 어느 나그네, 방명록에 무언가 열심히 남깁니다. '무슨 내용을 썼을까'보다 소통하려는 마음에 주목합니다. 스님의 사진 왼쪽 측면으로 고무신과 털신 한 켤레 놓였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고무신 한 켤레가 묵언을 물고 앉았습니다.

법정 스님 사진이 걸렸습니다.
 법정 스님 사진이 걸렸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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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사진 밑으로 방명록, 사탕 단지 등이 놓였습니다. 어느 나그네 스님과 소통 중입니다.
 법정 스님 사진 밑으로 방명록, 사탕 단지 등이 놓였습니다. 어느 나그네 스님과 소통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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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결코 맑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

법정 스님이 계십니다. 스님의 유언대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 아래에 1932년 10월8일부터 2010년 3월11일까지의 삶이 유골로 묻힌 겁니다. 다비식도 평소 입던 옷을 그대로 염습한 상태에서 평상복 위에 가사를 덮은 채였지요. 잠시 머물다 훌쩍 떠나는 세상, 몸소 보이신 귀감에 고개 숙입니다. 짧은 묵념.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

불일암입니다.
 불일암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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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佛日庵). "16국사 중 제7대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 폐사 터에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이 1975년에 중건하여 '불일암'이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불일암에 계시면서 "'무소유', '말과 침묵',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인도기행', '버리고 떠나기' 등을 집필하고 열반했다"합니다. (출처 : 이렇게 아름다운 곳, 스님만 몰래 볼 심산이군!)

암자 옆으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송광사에서 배출된 16국사 중 한 분인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이 서 있습니다. "모양새가 단아하고 기품 있으며 당시의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대로 품위가 느껴집니다. 삶은 매한가지. 다만 머문 시기와 장소만 다른 뿐!

부도탑입니다.
 부도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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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

삶을 향기롭게 마무리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여겨집니다. 빙 한 바퀴 돌아 의자와 테이블, 그 위에 놓인 물주전자에 눈길이 갑니다. 나그네를 위한 배려로 읽힙니다. 이러니 죽은 제갈공명을 떠올릴 수밖에. 저만치 앞서 가는 어느 스님, 이번엔 밀짚모자를 썼습니다. 불일암 오르는 길, 모자를 벗었던 건 법정 스님 삶에 대한 예의였나 봅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불일암 한켠에는 주전자 등이 놓여 있었지요. 나그네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불일암 한켠에는 주전자 등이 놓여 있었지요. 나그네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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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에 놓인 털신과 고무신은 무소유를 실천한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습니다.
 불일암에 놓인 털신과 고무신은 무소유를 실천한 아름다운 삶 그 자체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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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법정 스님, #무소유 길, #무소유, #묵언,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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