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일하는 '조선소맨'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배급 시네마달)이 오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시네마달은 <'노동자'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온해졌나>라는 이름 아래 기고문을 받았다. 그 첫번째 순서로 송경동 시인의 기고문을 받았다.

송경동 시인은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했으며,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와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편집자말]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 (기자)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 (기자) 1% 대 99% 할 때 그 99%?
"그렇다. 상과 하 간의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사회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냐."

어느 중세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6년 7월 7일 경향신문 기자들과 회식 자리에서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했던 말이다. 99%에 속하는 기자 '개돼지'들은 몇 번씩이나 연거푸 물어보고서야 간신히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녹취록 전문을 전했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개돼지임을, 흙수저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99%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닫는 교육을 노심초사 기획하고 있었으리라. 아직 자신들이 개돼지임을 각인하지 못한 컹컹 소리에, 꿀꿀 소리에 의해 그는 결국 해임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왜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건 신분제가 더 '공고화'되지 못한 현실 탓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99% 민중들이 개돼지가 되어 사는 현실, 맞다. '개돼지'가 되더라도 '먹고 살게만 해주면' 고맙지. 그 누구도 먹고살기조차 힘든 세상이다. 1000만 명에 이르는 개돼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밥통에 매달려 간신히 살아가는 세상. 제집 한 칸 없는 서민들이 700만 가구, 200만 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들이 밥통조차 없이 거리를 헤매야 하는 세상.

간신히 먹고살 만한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만 그 알량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영혼마저 헌납하고 자본의 충실한 개돼지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 5년 이내에 80%가 도산하고 마는 영세 자영업자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는 통하지 않는 극단의 신분제 사회. 전 세계 부자 62명이 전 세계 하류층 절반(35억 명)의 총 재산과 같은 규모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 나향욱은 너무 솔직했던 게 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쯤 '인간'이 되어볼 수 있는 것일까?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그들이 모르는 개돼지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 시네마달


다큐 영화 <그림자들의 섬>(김정근 감독)은 그렇게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어떤 개돼지들의 운명을 다룬 영화다. 1970년대 대한조선공사 때부터 현재의 한진중공업까지 40여 년 동안 거대한 배를 만들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한진중공업 얘기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한국사회 '개돼지'들이 비로소 '인간'이 되기 위해 벌여야 했던 피눈물 나는 세월을 담고 있다.

용접슬러그에 얼굴이 움푹 패고, 눈알에 용접 불똥 맞아도 아프다 소리도 못했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을 주면 공업용수에 말아 먹어야 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한 달 잔업 128시간에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매일 저녁 8시까지 일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용접 불똥 맞아 타들어 간 작업복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넝마처럼 기워 입고, 한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살아야 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용접을 하고, 절단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 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한 해에도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추락사고, 감전사고로 죽어가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친 동료들 문병 다니고 죽은 동료들 문상 다니는 시간이 잔업 다음으로 많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용노조는 조합비를 횡령해 먹기 위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조합원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더 나아가 자녀들까지 서류상으로 죽여 상조비를 갈취해 가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 졸고, <85호 크레인과 김진숙> 중에서

그런 공장에서 개돼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1985년 도시락통을 집어 던지며 민주노조 설립 투쟁에 나선 지 30년. 그들이 비로소 '인간'이 되기 위해 버텨내야 했던 눈물의 세월은 어떤 것이었을까.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인간이 되기 위해 버틴 눈물의 세월들. 영화 <그림자들의 섬> 중에서. ⓒ 시네마달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은 나라. 이병철 회장의 아들 이건희 회장은 상속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가 이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 '회장님'(정몽구)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재계 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 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 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 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 치 임금 7만5000원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 올라간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중략)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내면 70만 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잣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중략)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중략)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만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진숙, <김주익 열사 추도글> 중에서

2003년 아이들에게 고공농성에서 내려가면 '힐리스'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면 내려가지 않겠다'던 다른 약속을 지키고 고공농성 129일차에 85호 크레인 난간에 자신의 목을 내걸었던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그런 동료의 죽음에 아파하다 까마득한 '도크(dock)'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곽재구 열사의 합동 장례식 날 동료였던 김진숙씨가 읽어 내려갔던 추도글이다. 그전 LNG 선상 파업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이가 대통령이 되어 있던 시절.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도 내미는 놈이 없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프다.

거기에서만 멈췄더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2011년 1월. 벗의 추도사를 읽어야 했던 김진숙은 다시 차디찬 겨울 새벽, 혼자 배낭을 꾸려 그 눈물의 85호 크레인을 다시 올라야 했다. 개돼지임을 망각하고 '인간'이 되려고 하는 이들을 다시 정리해고하려는 조남호 회장과 대주주들에게 맞서야 했다.

사측은 개돼지들을 내버리기 위해 수년간 준비를 해왔다. 필리핀 수빅에 2조 원대 조선소를 세우고, 2만 2천여 명의 다국적 비정규직들을 고용하고, 그곳으로 모든 수주 물량을 빼돌린 뒤였다. 법도 언론도 관공서도 모두 사측 편이었다. 그 외롭던 고공농성 309일. 기적처럼 찾아온 희망버스의 승객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살아 내려올 수 있었을까. "김주익도 이렇게 살아 내려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살아 내려온 김진숙의 첫 말이었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영화 <그림자들의 섬> 관련 기획 기고문 첫 번째 '우리는 언제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송경동 시인) 관련 사진

ⓒ 정택용 사진 작가


거기에서만 멈췄더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14년 만에 국회청문회장에 선 재벌총수.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리해고 철회, 1년 내 복직을 약속했던 사측은 개돼지들의 소리가 잠잠해지자 다시 약속을 번복하고 나섰다. 158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 사내에 어용노조를 만들고, 한진중공업지회 노조 사무실 폐쇄를 통보하는 등 다시 민주노조 탄압에 나섰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서른다섯, 최강서씨가 노동조합 사무실 배관 파이프에 자신의 목을 걸어야 했다. 명백한 간접 살인이었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일상적인 '살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명의 목숨이 바쳐지고서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간신히, '먹고살게' 해주겠다는 조남호 회장 밑으로 '복직'할 수 있었다.

여기서만 멈춘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올해 초부터 다시 조선 산업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해고의 칼바람에 물량팀으로 불리는 하청노동자들이 먼저 쫓겨나고 있다. 이미 거제 통영 고성 지역에서 4000여 명의 노동자가 버려졌다고 한다. 물량팀에서 시작됐지만 곧 정규직에도 구조조정의 칼날이 다가올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 해양플랜트 부문마저 중단되면 2만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해고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기도 하다. 전체 6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쓰나미 전야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이 모든 과정을 담담히, 아니 집요하게 기록해 간다. 아니 눈물겹게 기록해 간다. 도리어 이런 '그림자' 인생들이 만들어가는 이토록 "찬란한 우리들의 우주를 보라" 한다. 너무나 잘 만든 영화지만, 아름답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검은 막 앞에서 한참을 일어날 수가 없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한진중공업 40년 역사의 어느 한 틈에 그림자 하나로 끼어 있어서인가 보다.

2011년 85호 크레인이 다시 고립된 '섬'이 되면 안 된다고,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몇 개월의 수배 생활과 3개월의 수형 생활,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나긴 법정 투쟁 중이기도 하다. 그런 우리는 모두 언제쯤이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1%만 걷어내면 되는데, 왜 99%는 함께 연대해 일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신분제가 공고해지면 그때야 일어설까.

 영화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영화 <그림자들의 섬> 불편한 개돼지들의 역사. ⓒ 시네마달


김정근 감독은 어쩌자고 이렇게 불편한 개돼지들의 역사를 파헤쳐 놓은 걸까. 어쩌자고 세상이 이러한데도 우리에게 인간이 되자고 부추기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어떤 '찬란한 우리들의 우주'에 대한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어떤 좁은 골목길로 자꾸 올라가는 이들의 뒷모습처럼 내가 다시 어떤 골목으로 접어드는 꿈을 꾸고 있다. 그렇게 우리 인생의 어떤 뒤안길에서 그림자처럼 살아가더라도 한때 인간이었던 기억을, 한때 인간이고자 했던 꿈을 잃지는 말자. 오늘도 어디에선가 그림자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그림자들의 섬 송경동 시인 기고 노동자 개돼지 김정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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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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