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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장 임명장을 받기 위해 국회에 도착한 국민일보 주필 출신 이진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
▲ 새누리 윤리위원장에 이진곤 지난 20일 오전 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장 임명장을 받기 위해 국회에 도착한 국민일보 주필 출신 이진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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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중앙윤리위원회(윤리위)가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 등 친박 실세가 관여된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윤리위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진곤 윤리위원장이 직접 "국민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인 만큼 모른척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밝히는 등 진상 규명 의지를 적극 천명해 왔다.

그러나 윤리위는 27일 여의도 당사에서 첫 회의를 열고 진상조사를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 위원장은 "잘못하면 계파 대립 구도에 윤리위가 함몰될 우려가 있다"며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윤리위가 잘못 건드리면 어느 특정 정파에게 이익을 줄 수 있고, 특정 정파에게는 필요 이상의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해명했다(관련기사: '횡설수설' 새누리 윤리위 "녹취록 파문, 다루기 어렵다").

진상규명 노이로제에 걸린 새누리당

역시나였다. 자고로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라 하지 않던가. 새누리당 윤리위의 결정은 자신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녹취록 파동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문제가 터지면 일단 덮고 보자는 적당주의와 무책임이 만연해 있는 정당의 당연한 귀결이다. 고양이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 이유가 하등 없다.

더구나 그들은 진상규명에 극심한 노이로제가 걸려있는 정당이 아닌가.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물론이고 성완종 리스트,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의 행적, 청와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자방 비리 등 진상규명의 '진'자만 들어도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정당에게 이는 애시당초 기대난망이었을 뿐이다.

사실 이번 녹취록 파문은 당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할 지질하고 쪼잔한 사안이 아니다. 친박 실세의 녹취록 파동은 '당내 경선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를 협박하거나, 경선운동을 방해하거나, 위계·사술 등 부정한 방법으로 당내 경선의 자유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공직선거법 제237조(선거의 자유 방해죄)를 위반한 중대 범죄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녹취록 파동이 당 차원으로 국한될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란 의미다. 최 의원과 윤 의원이 김성회 전 의원에게 지역구 변경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압력과 협박을 가했고,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에 대한 불법사찰 정황까지 내비친 것이 이번 녹취록 파동의 핵심이다. 중앙선관위는 물론이고 검찰 조사까지 이루어져야 할 중대 사안을 당에 맡겨 진상조사를 한다는 것부터가 착점이 잘 못 맞춰진 것이었다.

어물쩍 넘어가는 게 일상인 나라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을 허무는 심대한 문제가 발생해도 어물쩍 어물쩍 넘어가는 못된 관행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다. 국가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사건을 필두로 위에 열거한 사안들은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도 다양했다. 국정원 사건의 국정조사에서는 너무 더워서 조사를 못하겠다고 널브러지는가 하면, 세월호 참사에서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진상규명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최고 존엄의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밝혀내야 할 진실이 가려지고 묻히기도 했다.

진상규명이 안 되니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리가 없고, 재발방지 대책이 강구될 리도 만무하다. 무수히 많은 꼬리와 깃털이 뽑혀져 나가기만 할 뿐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 나라에 사회 정의와 공의를 좀먹는 부정과 부패가 끊이질 않고, 같은 종류의 사건과 사고가 계속해서 되풀이 되고 있는 주된 이유다. 집권여당으로서 이 나라 정치를 선도해 온 새누리당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번 녹취록 파동은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실추된 새누리당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당내의 윤리 기강을 확립시키기 위해 닻을 올린 새누리당 윤리위의 빗나간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국민들의 장탄식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그들은 공모자다.

이진곤 윤리위원장은 이번 녹취록 파문을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 자해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녹취록 파동이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 자해적 행위라면, 진상규명을 보류한 윤리위의 결정은 국민을 우롱하는 대국민 기만극임을 그는 모르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당내 민주화도 존재하지 않는 비민주적 패권 정당임을 온 천하에 입증한 새누리당의 녹취록 파동과 이를 고스란히 덮으려는 윤리위의 모습은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그들이 유유상종(끼리끼리 '놀고 있다'는 사자성어) 하는 사이 국민들의 한숨과 시름만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기득권과 비민주적 패권에 집착하는 정당이 건재 하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을 우리 정치의 오래된 비극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윤상현 녹취록, #윤상현 최경환 녹취록 파문, #친박 비박 갈등, #윤상현 막말 파문, #김성회 전 의원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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