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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어버이'란 좋은 말을 퇴색시켜버린 어버이 연합 관련 뉴스를 보다보면 화도 나고 착잡한 마음이 함께 든다. 어버이 연합에서 활동하는 노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당 알바 노인들로 밝혀졌지만, 내 눈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립고 고파서 이 단체에 나오는 노인들이 많아 보였다. 이 분들을 보면서 어느 책에서 본 글귀가 문득 떠올랐다.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란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과 결핍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 남자들은 외로움이 깊어지다 보면 괴팍해지기 십상이다. 이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나이가 들수록 비례해서 생기는 외로움, 고독에 대한 책이다.

'외로우니까 중년이다'식의 뻔한 내용은 아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 주로 나이 들어가는 남성의 심리를 특유의 유머로 재미있게 들려주는 전직 교수이자 현직 화가지 망생인 김정운이 쓴 책이니까.

저자가 그렸다는 표지 그림에서 보듯 이 책은 고독 혹은 외로움이 버거워지려 하는 사람, 특히 외로움에 취약한 나이든 남성들을 위한 책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며 정호승 시인이 위로한 대상은 중장년 남성들이지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성의 인간관계가 여성보다 느슨하거나 얇아지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더는 외롭지 않게 된다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적을 만든다. 외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모임에 나가고, 저녁마다 술자리를 만들고,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고, 자신의 글에 얼마나 많은 '좋아요'가 눌렸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불행히도 이럴수록 사람은 더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도 엄습한다. - 본문 가운데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니 남자는 78세, 여자는 85세가 평균 기대 수명이다. 현재 50대 이상 중년층은 100살까지 충분히 산단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이토록 오래 살아본 적이 없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바로 고독이다.

책 표지.
 책 표지.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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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나라에서 고독은 당연한 거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푹 쉬고 여가를 즐겨야 할 주말에 죽어라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가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 속에 들어가야 안심을 하고, 스케줄이 비면 불안해한다.

저자는 나이 오십이 되던 해인 2012년 심리학 교수직을 '충동적'으로 그만두고 노인들을 위한 성인만화 작가를 꿈꾸며 홀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저자는 그 4년 간 제대로 외로움을 겪게 된다. 저자는 수년 간 일본에서 살면서 참 많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허나 그런 외로움이 있었기에, 고독을 경험 했기에 타인과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했단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더는 외롭지 않게 된다는 외로움의 역설이다.

이런 역설을 깨닫게 된 건 아마도 일본이 저자의 표현대로 '고독 순응 사회'라서 가능 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우리 사회는 외로운 사람을 실패한 인생으로 여기는 '고독 저항 사회'다. 고독에 대처하는 어떠한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런 사회에서 부작용처럼 자연스레 잉태한 것이 어버이 연합이나 일베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행태에서 보듯 외로운 개인들이 외로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적을 만든다. 공동의 적을 만들면 내 편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혐오와 분노·적개심으로 고독감·상실감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자아실현은 그런 공부를 통해 구체화된다. 공부야말로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이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내린 고령화 사회 대책은 공부다. '평생학습' 개념도 고령화 사회라는 맥락에서 나오는 거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홀로 있을 때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 그 외로움이 두렵지 않단다. 저자의 외로움 예찬은 인생에서 진정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 사람들이 바쁜 척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은퇴가 몇 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쉰'은 불행하다. 그래서 저자는 먼저, 당신은 일생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느냐'란다.

책에는 이 외에도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담겨있다. 여행을 자주 하고 부지런히 보러 다닐 것, 많은 것과 많은 이를 흉내내도록 노력할 것, 시기심과 이분법을 조심할 것,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인으로 행동할 것. 이 모든 것들은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운 (지은이) | 21세기 북스 | 2015-12-21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21세기북스(2015)


태그:#김정운, #외로움, #고독, #가끔은격하게외로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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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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