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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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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선언했다. 이른바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은 물론 유럽연합 탈퇴로 끝난 투표 결과 이후 수많은 논란과 다양한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브렉시트 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분열과 무관심"이라며 국민을 협박하는 대통령 말을 필두로, 연일 기업인과 언론을 통해 임금 동결 등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많은 이들이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은 향후 영국 경제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큰 반면, 또 다른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브렉시트가 진보적인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반동적인 사안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운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논쟁은 한국만의 논쟁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몇 가지 잘못된 관념적 근거로 인해 논쟁이 엉뚱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단순히 향후 예측이나 논쟁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야 할 진보적인 집단이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그것을 근거로 한국에서의 상황에 잘못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정세 인식에 근거한 브렉시트 분석은 피해야 한다. 사실 유럽연합 탈퇴 혹은 잔류 중 무엇이 좌파적인 대안인지를 논하는 것이나 아직 닥치지도 않은 경제 예측에 근거한 논쟁 같은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 한다. 

물론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다루는 연구와 분석, 그리고 대처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들을 악용하여 경제 위기를 과장하고, 이를 통해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논리에는 맞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란들에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한국적 맥락에서 브렉시트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브렉시트는 기득권에 대한 반란? 절반만 맞다

24일 오후 서울 을지로 KEB 하나은행 위변조 방지센터 직원들이 파운드화를 살피고 있다. 브렉시트 공포에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장중 10% 폭락하며 198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4일 오후 서울 을지로 KEB 하나은행 위변조 방지센터 직원들이 파운드화를 살피고 있다. 브렉시트 공포에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장중 10% 폭락하며 198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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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국 특유의 정치적, 역사문화적 요인들을 제외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인들이 유럽연합 탈퇴에 더 많은 투표를 한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고통을 겪어온 노동대중의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혹은 세계화에 대한 좌파적 반대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따라서 브렉시트가 민중의 기득권 계급에 대한 반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반대라는 주장은 절반만 사실이다.

설사 고통받는 노동 대중의 반란이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그 반란의 방향이 엉뚱한 데로 향해 있고, 그 불만의 해소를 위해 극우적 선택을 한 것이라면 그런 주장은 쉽게 해서는 안 된다.

여타의 공동체와는 달리 진보적인 측면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유럽연합 내 중심부 주도 국가 지배 계급의, 유럽 주변부 국가들과 노동대중들에 대한 횡포와 착취는 가히 절정에 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 대중의 불만과 저항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 대중, 특히 하층 계급들의 불만과 저항은 언제나 진보적이고, 그들의 대안은 언제나 비진보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극우적 대안으로 유럽 곳곳에서 나타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너무 한 쪽만을 보고 지지와 비판의 양극적 선택이 옳은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조차 갑작스럽게 고립주의라는 용어와 개념을 마구 쓰고 있지만, 고립주의라는 이름의 극우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승리하여 설사 그들의 의도대로 정치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영국은 신자유주의의 주요 주도자의 역할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 등 최근 이민의 문제가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유럽 제 국가들 내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대로 인한 민영화, 노동 유연화와 구조적 실업 증가, 그리고 복지 축소 등으로 인해 사회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유럽연합의 중심부 국가들에서도 상황이 이러할진대, 남유럽이나 동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그 상황은 한층 더 심각했다.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 이민자 문제에 불이 붙은 것이다.

따라서 이민자 문제만으로 대중의 불만이 극우화된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동대중은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을 이미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품어왔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유럽 곳곳의 극우파 약진과 미국의 트럼프 현상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기존의 신자유주의 글로벌 체제에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을 가져왔다는 식의 좌파적 주장 역시 희망사항일 뿐이다. 2008년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다수의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는 주장을 너무나 쉽게 하곤 했다. 이는 자본주의 위기론이나 미국 패권 붕괴론만큼이나 참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인데, 이는 신자유주의를 이론으로만 배웠거나 단선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인식하는 데에서 오는 오류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 글로벌 체제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꿔가며 유지될 것이고, 유럽연합 전체가 해체되지 않는 한 영국과 일부 유럽 국가가 탈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국제경제체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물론 나아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체제에는 커다란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분명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각종 극우주의와 국가주의적 정치가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극우주의 정치는 변신을 거듭하는 자본가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절묘하게 결합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과도한 찬사를 보내는 그 틈으로 극우주의 정치를 키워주는 오류는 이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까지가 신자유주의이고 어디까지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인지조차 구분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다른 반동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또 다른 자본의 독재를 허용하는 지름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재원 씨는 현재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브렉시트, #브렉시트와 자본주의, #영국과 EU, #영국EU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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