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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아래 치아만다)가 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거듭 읽었다. 처음에는 다른 페미니즘 관련 책에 비해 얇아서 골랐는데, 내용적인 면에서 책은 여타 두꺼운 책들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쯤 다시 꺼내 읽었고, 휴대하고 다니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도 가끔 읽었다. 가까이 두고 싶은 책이었고, 가까이 두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은 현재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를 위해 아주 중요한 선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선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러한 선언이 어떻게 나왔고, 왜 나와야만 했는지를 구체적인 예와 상황을 통해 설명한다.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의 위험성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창비 / 2016. 1 / 96쪽 / 9,800원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창비 / 2016. 1 / 96쪽 / 9,800원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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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묻는다. 페미니즘이라는 말 말고 인권옹호라는 말을 쓸 수 있지 않냐고. 치아만다는 대답한다.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으로는 여성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가난한 남자들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에 치아만다는 대답한다. 젠더와 계급은 다른 문제고, 가난한 남자들 역시 부자의 특권은 누리지 못하지만 남자의 특권은 누리고 있다고.

책은 미국 사회 내를 가리키고 있지만 한국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젠더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불편한 주제이기 때문에 애초에 대화를 거부하거나 젠더의 문제가 아닌 다른 층위의 말들을 하면서 논점에서 부러 벗어난다. 아니, 애초에 이런 대화 양상을 보이는 까닭은 젠더에 대해, 나아가 페미니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 맞겠다.

한 대학에서 젊은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응은 남녀를 불문하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야 강간은 나쁜 짓이지만, 애초에 왜 여자애가 남자애 네명하고 한방에 있었다죠?(36p)

실제로 성폭행 사건에서 '인지하지 못함'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해자의 극악무도한 폭력성을 고발해도 모자를 판에, 피해자인 여성은 줄곧 꽃뱀으로 내몰리며 범죄의 동기를 제공한 당사자라고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른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도 범죄를 자초한 것이 피해자인 여성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범죄 현장에서조차 여성의 권리는 묵살되는데, 일상적인 경우에는 다반사일 것이다.

잘못된 교육이 문제의 시작

치아만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받았던 잘못된 교육을 회고하면서 장차 아이들이 받게 될 젠더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날 우리가 받은 교육으로 우리는 얼마나 잘못된 젠더적 생각들을 내면화했나?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름에 얼마나 잘못된 생각들을 덧씌웠나?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37p)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31p)

오늘날 젠더 교육은 여성에게는 수치심을, 남성에게는 강인함을 요구한다. 이 밖에도 각자에게 할당된 젠더적 속성은 많다. 여성은 야망을 가지지 말라는 것, 얌전하라는 것, 집안일을 응당 해야한다는 것, 남성은 야망을 가지라는 것, 두려움에 떨지 말라는 것, 바깥 일을 응당 해야한다는 것. 교육은 반복되어 이루어지고, 교육을 통해 학습된 젠더적 속성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젠더적 교육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이 지니고 있었던 진정한 자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회가 호명한 젠더적 속성이 대체한다. 천편일률적인 남성들과 천편일률적인 여성들을 강요하는 것은 대결 구도를 강화할 뿐이고 문제는 풀리지 않고 심화할 뿐이다.

치아만다는 내면화한 여러 젠더적 교훈들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는 젠더가 아니라 능력과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젠더로 기대되는 상황들로 많은 이들은 분명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나 역시도 이런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부담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히 올바른 젠더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52p)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간결하고 간곡하게 요청한다. 이 책을 읽은 나는 남자다. 나는 이 책이 요청하는 우리에 반드시 포함되는 존재이다. 돌이켜 보면 젠더라는 문제에 대해 나 역시도 행여나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침묵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침묵으로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지니고 있는 남성이라는 권위를 내려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먼발치의 너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문제인 것을 생각한다면 침묵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다. 지금 사회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를 점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불편하더라도 얘기해야 하고 부끄럽더라도 얘기해야 한다. 치아만다가 얘기했던 것처럼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화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http://grainencyclopedia.tistory.com/ 실릴 예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리커버 특별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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