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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3사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환경 프로그램인 SBS <물은 생명이다>가 방송 700회를 맞았다. 2001년 1월 시작해 16년째 이어 오고 있는 <물은 생명이다> 제작진은 700회 특집으로 백두산 일대를 취재했다. 과학 측정기기 및 분석 전문업체인 영인과학의 협조를 받아 백두산 천지와 두만강의 수질 분석도 했다. 기자는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중국 백두산 일대에서 진행된 <물은 생명이다> 700회 특집 제작 현장을 동행했다. - 기자 말

"날씨가 좋아요. 빨리 식사하세요. 천지 보러 가야죠!"

길림(吉林)성 안도(安图)현 이도백하(二道白河)의 아침, 밤사이 천둥번개와 함께 거칠게 비를 퍼붓던 하늘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햇살이 산뜻하다. 우리 일행이 투숙한 호텔 로비는 이른 아침부터 번잡스럽다. 아침 식사 시간은 6시, 가이드들은 맑은 하늘이 아까운 듯 5시 50분부터 로비에 몰려 있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식당으로 재촉했다.

'산에 올라야 하니 아침 든든히 드셔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주차장에는 'OO산악회', 'OOOO연합회' 등 우리말 명찰이 붙은 25인승부터 45인승 버스까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이 부산을 떠는 시각, 현지 주민들은 호텔 맞은편 쭉쭉 뻗은 미인송(美人松)이 가득한 공원에서 무협영화에서 본 듯한 하얀색, 빨간색, 파란색 경장을 차려입고 고요 속에서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었다.

길림성 이도백하진은 중국 내 백두산 관광의 관문 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관광객들이 천지 등산을 준비하는 동안 현지 주민들은 고요히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아침을 맞이학 있다.
▲ 이도백하 주민들의 아침 길림성 이도백하진은 중국 내 백두산 관광의 관문 도시로 자리를 잡고 있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관광객들이 천지 등산을 준비하는 동안 현지 주민들은 고요히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아침을 맞이학 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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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느껴지는 분단의 안타까움

전날(22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산동반도 부근까지 동쪽으로 날다가 기수를 북동쪽으로 꺾어 대련(大連), 심양(瀋阳), 장춘(长春)을 날아 연길(延吉)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중국 내 비행코스가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호령하던 곳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 거점지역이었던 서간도와 북간도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이 든다. 한편으로는 남과 북이 갈라선 현실도 절감케 했다. 분단만 아니었다면 북쪽 영공을 통해 바로 백두산으로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행의 최고 연장자인 이덕희 박사(58·환경보건학·영인과학 랩프런티어 사장)는 "김포공항에서 백두산 부근 삼지연 공항으로 가면 1시간도 안 걸린다"라며 "거기서 차로 두 어 시간 가면 천지 바로 밑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아쉬움을 밝혔다.

이덕희 박사에게 백두산 천지는 처음이 아니다. 이 박사가 속한 영인과학이 2001년 창립25주년을 기념해 백두산 천지와 두만강 발원지에 대한 수질을 분석한 바 있다.

올해는 40주년으로 기업 사회공언활동(CSR) 차원에서 다시 한 번 백두산 일대에 대한 조사를 벌이게 됐다. 한라산 백록담과 4대강 발원지에 대한 조사도 진행해 오는 9월 학술 발표도 예정하고 있다.

이번 백두산 현장 조사는 SBS <물은 생명이다>를 총괄하고 있는 오기현 부장과 현장피디 2명, 영인과학 이덕희 사장과 수질측정인원 4명, 기자 등 총 9명으로 구성됐다. 연길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일반적인 중국과는 다른 풍경에 눈이 갔다. 공항 내부 안내문 뿐만 아니라 공항 외부 간판 곳곳에 한글이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조선족이 몰려 있는 서울 구로구 일대에 중국어 표시가 많은 것과 일본 공공장소에 우리말 표기가 잘 돼 있는 것이 떠올라 마중 나온 가이드에게 "한국인이 많이 찾아서 한글 표기가 많은가?"라고 물었다. "아니다. 연변(延邊)조선족자치주라서 그렇다"라는 게 돌아 온 답이었다.

중국 내에는 모두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수 1000만 명 이상 모여 살면 '자치구'(내몽고자치구처럼), 200만 명 이상이면 '자치주'로 표기되는데, 중국 정부가 제정한 '간판법'에 따라 자치구와 자치주의 경우 소수민족 언어와 중국어를 병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일행은 한글 간판이 가득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 연길을 출발해 중국 백두산 관광의 관문 도시인 이도백하로 향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파 코스를 찾고 있다.
▲ 백두산 북산산문 입구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파 코스를 찾고 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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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명산 지정 후 중국인들 많아져

난생 처음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밀린 일 때문에 며칠 밤샘을 했음에도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 때문에 이도백하의 태양은 새벽 3시 30분 경에 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이 우리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아침 7시, 일행은 백두산 천지 등반 코스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북파 코스로 향했다.

중국 내 백두산 천지 등반 코스는 북파, 서파, 남파 3곳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3코스를 모두 오르는 일을 '백두산 등정 그랜드슬램'이라 칭한다. 우리는 백두산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고산지대로 이어진, 즉 산맥 개념으로서 장백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북파 산문 주차장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예전에는 네다섯 명 씩 지프차를 탔다고 하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지프차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중국 사람들이 훨씬 많다. "70%는 중국 사람들"이라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이 80%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2003년 중국 정부가 장백산을 '중국 10대 명산'으로 선정하면서부터 중국인들이 더 많아졌다. 일부 역사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의 동북공정(고구려 등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작업)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백두산 북파코스에서 만난 많은 중국인들은 겨울용 긴 코트를 입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천지에 올라서야 절감할 수 있었다.
▲ 초여름 겨울복장 백두산 북파코스에서 만난 많은 중국인들은 겨울용 긴 코트를 입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천지에 올라서야 절감할 수 있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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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 코스에서 만난 많은 수의 중국인들은 등판에 영어와 한자로 '장백산'이라 쓰여 있는, 두툼한 겨울용 긴 코트를 걸치고 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천지에 올라서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을 태운 셔틀버스는 해발 고도 1500m를 지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따라 2000m를 넘어서고 있었다.

해발 고도가 높아질수록 아직 녹지 않은 얼음과 족히 20cm 이상으로 보이는 이끼층이 보였다. 맑았던 하늘은 천지에 가까울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져 불과 10m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백두산을 설명하는 중국 자료에 '일산유사계 십리부동천'(一山有四季 十里不同天)이란 말이 있다. 해석하자면 '하나의 산에 4계절이 있고, 십리(4Km)만 벗어나도 날씨가 다르다'는 말인데, 그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다.

하루 평균 23번 변한다는 백두산 날씨

'물은 생명이다' 제작진과 일행은 천지 앞 길게 이어진 쇠사슬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백두산은 높이 2750m(북한 장군봉)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2500m가 넘는 봉우리만 16개가 넘는다. 천지의 해발 고도가 2257m. 우리 일행이 서 있는 북파 정상에서부터 약 300~400m 아래에 장엄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천지는 안개 때문에 어떤 형태도 보이지 않았다. 천지의 안개는 남쪽의 따뜻한 공기와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면서 생기는 것으로, 이덕희 박사는 "이런 날씨는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쓰고 있던 모자를 20m 날려버릴 정도의 바람이 있었지만, 천지에 가득한 안개를 흩어내기에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백두산 북파 정상은 안개로 가득차 천지가 보이지 않았고, 밀려드는 사람 때문에 촬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안개로 가득한 천지 백두산 북파 정상은 안개로 가득차 천지가 보이지 않았고, 밀려드는 사람 때문에 촬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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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하루 평균 23번 날씨가 변하기 때문에 기다려 보자"라는 말에 <물은 생명이다> 한건규 피디 등은 카메라를 대기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기 지친 중국인들은 하나 둘 "라이러 라이러"를 합창했다. '바람아! 더 강하게 불어라(來了)'라는 뜻으로 마치 주술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천지는 결코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촬영은 난항에 빠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도 없어져, 1983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백두산에 오른 기념으로 썼다는 '텐츠'(天地) 비석은 카메라에 담기조차 힘들었다. 안개는 빗줄기가 됐고, 더욱이 천지 주변 온도는 대략 5~6℃로 손이 시릴 정도로 체감 온도가 떨어져 갔다. 결국 촬영을 접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는 것이 천지"라는 누군가의 농담이 야속하기만 했다. 백두산은 부석(浮石)이 산 정상부에 많아 '하얀 머리의 산'이란 뜻이다. 현지에서는 다른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백번 와야 천지를 두 번 볼 수 없는 산'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더 떨어진다.

짙은 안개때문에 이곳이 천지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확인케 한 것은  1983년 덩샤오핑이 천지를 방문하고 썼다는 '텐츠'비석 뿐이었다.
▲ 덩샤오핑이 쓴 '천지' 짙은 안개때문에 이곳이 천지를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확인케 한 것은 1983년 덩샤오핑이 천지를 방문하고 썼다는 '텐츠'비석 뿐이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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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관광 성수기(6월말 ~ 9월 중순)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 입산 인원이 제한되거나 당일 날씨에 따라서도 제한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8월에는 입장표를 구하는 데만 족히 1시간 30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 때문에 70%는 백두산에 오르지도 못한다는 것이 가이드의 말이다. 아무래도 천지를 못 본 우리 일행을 달래주기 위한 허풍이 포함된 듯하다.

중금속 및 방사능 물질까지 분석 시도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장백폭포다. 이곳에서 채수 및 현장 수질 분석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덕희 박사 등이 2001년 수질 조사를 할 때는 백두산 북파 정상에서 천지로 바로 내려가 직접 물을 채수하고 조사했지만, 중국이 천지를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추진하면서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했다. 사실 천지 호수 보호정책은 필요했다.

비룡폭포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용이 수직으로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 백두산 장백폭포 비룡폭포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용이 수직으로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 한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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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영험한 기운 때문이었는지, 이덕희 박사 일행이 15년 전에 왔을 때는 천지 호수 주변에 기도를 올리는 무속인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따른 오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장백폭포 입구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는 나무 계단을 통해 대략 20여 분 올라간다. 한쪽에서는 최고 온도 81℃를 알리는 온천이 쏟아지고, 철분 성분으로 보이는 붉은색과 유황 성분이 섞인 누런 퇴적토가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천지의 물은 안개로 뒤덮인 협곡을 따라 흐르다 해발 1250m에 이르러 67m 높이의 장백폭포로 떨어진다. 장백폭포는 비룡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용이 수직으로 승천하는 형국이었다.

바닥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두껍게 쌓여 있고, 그 사이를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얀 포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일대 지명에 바이허, 즉 백하(白河)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장백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송화강과 아무르강을 거쳐 동해로 들어간다. 흔히 천지의 물이 바로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라 알고 있는데, 압록강은 북한 쪽 백두산 서쪽 지역에서 발원하고, 두만강은 백두산 동쪽 중국의 원지라는 곳이 발원지다. 공식적인 발원지는 그렇지만, 사실상 압록강과 두만강 모두 지하를 통해 천지와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

수질조사는 휴대용 측정 장비를 이용한 현장 측정과 채수 후 한국에서 실시하는 정밀분석으로 나뉜다. 정밀분석은 중금속 등과 함께 세슘 등 방사능 물질 조사도 진행됐다.
▲ 장백폭포수 수질 측정 수질조사는 휴대용 측정 장비를 이용한 현장 측정과 채수 후 한국에서 실시하는 정밀분석으로 나뉜다. 정밀분석은 중금속 등과 함께 세슘 등 방사능 물질 조사도 진행됐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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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장백폭포 물줄기에 대한 본격적인 수질 조사에 들어갔다. 수질 조사는 현장 측정과 정밀 수질 분석으로 나뉜다. 현장 측정은 휴대용 정밀 장비를 통해 수온, 용존산소(DO), 수소이온농도(pH), 전기전도도 등을 확인한다.

온도 6.7℃, 용존산소 9.93, PH 8.03, 전기전도도 287.4가 측정 결과다. 현장 결과는 장백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용존산소가 풍부하면서 약알카리성의 차가운 물이라는 걸 말해 준다. 정밀 수질분석은 현장에서 채수한 것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한다. 2001년과 비교하기 위해 중금속류,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농약류, 페놀류, 유기탄소(TOC)를 분석한다.

새롭게 세슘 등 방사능 물질 조사도 포함했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북한의 핵실험 등의 영향 유무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밀 수질 분석 결과는 7월 6일 SBS' <물은 생명이다> 700회 특집 방송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태그:#백두산, #천지, #물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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