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난징의 생불(生佛)' 난징대학살의 광기로부터 수십 만의 목숨을 구한 의인 욘 라베를 일컫는 말이다. 나치 당원이었던 그는 히틀러와 당에 대해 깊은 신뢰를 품고 있었다. 학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이를 고발하는 편지를 히틀러에게 부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배신당하게 된다. 귀국한 라베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다. 동맹국인 일본의 적국인 중국을 도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일하던 회사의 중재로 간신히 풀려나지만, 학살의 자세한 경과를 기록한 그의 일기는 출판 공개 모두 금지 당한다. '이적행위'가 된 난징의 진실은 나치가 패망한 이후에야 드러나게 된다.

비단 나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정부들이 자국이나 친분이 있는 나라의 인권침해 범죄 사실에 대해 부인한다.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그 예이다. 이 사건은 일어나자마자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터키 본국의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었이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터키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조차 이를 부인하였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표지사진
▲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표지사진
ⓒ 창비

관련사진보기

스탠리 코언은 자신의 책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에서 그 근간에 대해 파헤친다. 국가의 부인 행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사건 자체에 대해 부인하는 '문자적 부인', 사건은 있었으나 인권침해 행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해석적 부인', 사건과 인권침해 모두 있었지만 그럴만한 당위성이 있었다고 항변하는 '함축적 부인'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정부는 주로 해석적 부인을 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사실 자체를 숨기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학살을 최종 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 말하는 식으로 끔찍한 본질을 평범한 일로 가장한다.

보편 인권이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식으로 법 형식주의에 천착한다. 공식적으로 명령을 내린 적 없다는 식으로 책임을 부인한다. 단 한번 일어난 일일 뿐이라는 식으로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한다. '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폭력'이라는 본질은 그렇게 흐려져 버린다.

한쪽 손바닥만으로 박수를 칠 수는 없다. 국가가 부인하더라도 대중이 응하지 않는다면 인권침해 범죄가 계속되기는 어렵다. 인권침해의 한 축에는 외면하는 대중이 있다. 모르는 대중이 아니다. 1941년 한 독일주민이 정부에 보낸 탄원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근처에서 벌어지는 학살 행위를 그만 두거나 자신의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대다수의 대중은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에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코언에 따르면 3분의 2가 그렇게 외면해 버린다고 한다. 대중의 외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정부에 거역하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 자신과 무관한 일에 나서지 않으려는 이기심, 정부 또는 어용 언론이 행하는 해석적 부인에 대한 믿음,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 등이다. 그렇게 대중은 방관이라는 방법으로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코언은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가 주시하는 건 나머지 3분의 1이다. 부인과 외면이 정상인 현실에서 이들은 왜 반대로 행동하는가. 대답은 '선의 평범성'이다. 에바 포겔만의 저서 '양심과 용기'에서 나온 표현으로, 나치 치하에서 탄압받는 이들을 도왔던 사람들을 연구하여 도출한 개념이다.

그들은 특별히 용감하거나 신념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내면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었다. 코언은 선의 평범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교육·법을 통한 강제·윤리에 대한 투자 등의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륜의 문제였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배신할 수 없었다."

라베가 자신의 일기에서 밝힌 난징의 사람들을 구한 이유이다. 선의 평범성을 발휘한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연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자세한 내용은 다를지언정 그들의 발언은 모두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이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라는 명제만큼 인권침해 핑계로 적합한 것도 드물다. 라베가 국가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동맹국인 일본의 학살을 묵인했을 것이다. 우리만을 챙기는 사람에게는 그에 들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선의 평범성의 시작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다. 코언이 말한 선의 평범성을 발휘하는 이들을 늘리기 위한 방법론의 핵심에는 이 점이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

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창비(2009)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