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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1월 18일, 경찰은 한 인도네시아인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다수의 국내 언론은 그를 '이슬람국가(아래 IS) 추종자' 혹은 'IS 연계조직 추종자'로 소개했다.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직후라 큰 관심을 끌었다. 기사를 읽은 이들은 걱정이 컸으리라. 이제 우리나라에도 IS가?

그러나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사실 인도네시아인은 이슬람 무장단체 '알누스라'를 추종한 혐의로 붙잡혔다. IS와 알누스라는 알카에다에서 파생됐단 공통점이 있지만 엄연히 다른 테러 조직이다. 또한 "알누스라를 추종한 혐의로 붙잡혔다"는 사실도 의아하다. 누군가를 추종한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는 자신의 책 <나쁜 뉴스의 나라>에서 이 사건을 "명백한 오보"라고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사실 이 뉴스는 경찰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시작됐다. 이 보도자료에서도 알누스라와 IS가 다르단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은 굳이 'IS'를 가져다 썼다. 이유는 명백하다. 파리 테러로 모든 이목이 IS에 쏠린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들어 보지도 못했을 '알누스라' 보다는 'IS'가 뉴스가치를 더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추종 혐의로 체포'도 경찰 보도자료 제목에서 따왔다. 경찰 측 보도자료 제목은 "경찰청, 국제 테러단체 '아누스라' 추종 혐의 인도네시아인 검거'였다. 언론은 여기서 '추종 혐의'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이와 관련해 신훈민 진보네트워크 상근 변호사는 <슬로우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 테러 단체를 추종했다는 혐의로 검거하는 것은 국내법상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책은 "국가 권력이 개입해 뉴스가치가 조작된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쓴다"면서 "경찰은 이런 장난을 많이 치는 국가기관 중 하나"라고 단언했다. 결과적으로 위 사례에서 뉴스가치는 인위적으로 두 번 '조작'됐다.

국정원 해킹 보도, JTBC '11회' vs. 지상파 3사 '0회'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나쁜 뉴스의 나라>
▲ 겉표지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나쁜 뉴스의 나라>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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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뉴스의 나라>는 언젠가부터 '기레기'로 전락한 언론에 대한 불신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국내 저널리즘의 관행과 방침, 더불어 초급‧중급‧고급으로 이어지는 나쁜 뉴스 가려내는 방법, 나아가 뉴스의 미래를 전망했다. 저자가 매체비평지의 현직 기자란 사실이 힘을 보탠다.

책은 꽤 적나라하다. 예컨대 같은 사안을 두고 언론마다 다른 태도를 보인 뉴스 하나 살펴보자. 지난 2015년 여름,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불법 감청 프로그램인 'RCS'를 구매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같은 해 7월 9일 한 블로거의 글을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는 7월 13일까지 이 사건을 단 한 차례도 보도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JTBC의 메인 뉴스인 <뉴스룸>은 11회에 걸쳐 관련 사안을 보도했다. 저자는 "JTBC에 이른바 '손석희 뉴스'가 등장한 이후 매체비평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지상파 뉴스의 비교 기준이 손석희 뉴스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지상파 뉴스의 침묵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며칠간 해킹 의혹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강하게 제기됐음에도 지상파 등 주요 언론은 이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혹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뉴스를 잘 보지 않던 사람들마저 '국정원이 해킹했다는데?'라는 어렴풋한 인식을 가지게 될 즈음, 국정원의 해명과 여야 간 정쟁이라는 뉴스가 쏟아진다. 그럼 사람들은 '아, 간첩들 잡으려 한 거구만' 아니면 '저것들 또 싸우네!'라며 그 뉴스를 머리에서 지운다. 바로 침묵하는 미디어의 힘이다. - 156쪽

책은 언론의 '물타기' 수법도 고발했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기억하자. 미디어는 '물타기'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묻어버리기도 하고 프레임을 교묘히 비틀기도 한다. 수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의 '물타기' 수법 네 가지

첫째,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화법이다. 지난 2013년 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철도 민영화, 불법 대선 개입, 쌍용 자동차 노조가 주요 골자였다. 전국 곳곳에서 이에 응답하는 대자보가 이어지며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대자보를 처음으로 붙인 주현우씨가 "과거 진보신당에서 활동했고 현재 노동당 당원인 사실이 알려지며 선동 글이 아니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란 보도를 한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물타기' 방법이다.

둘째, '돈 때문이지?' 전략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방송과 각종 인터넷 매체에는 보상금과 보험금 이야기가 등장했다. 노동자들의 파업 역시 어떤 대의와 공공성을 내걸어도 '임금 인상이 목적'이란 프레임을 씌운다. 심지어 '땅콩회항' 사건을 보도할 때는 '박창진 사무장이 로또를 맞았다'란 제목을 뽑은 언론도 있었다.

셋째, 정치 혐오에 기대는 '다 똑같은 놈들!' 수법이다. 언론이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 현안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다면 여야의 대립으로 묘사한다. 자극적인 단어 선택은 덤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놈들 또 싸우네!"라며 정쟁만 기억한 채 사안에 대한 정보를 잊어버린다. 정작 중요한 건 알맹이인데 말이다.

넷째, '갈라치기' 역시 애용된다. 지난 2014년 12월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이후 언론이 꺼내 든 무기다. <연합뉴스TV>는 12월 28일 속보로 "유희남 위안부 피해 할머니, 정부하신 대로 따르겠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날 MBC 역시 "할머니들은 회담 결과에 대체로 불만족스러워하셨지만 일부에서는 정부의 뜻에 따르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만족하는 이들은 온건파,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강경파라는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저널리즘을 살리는 힘, 독자의 '외압'

그렇다면 언론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유가 뭘까. 책은 언론사의 '지배 구조'를 보라고 조언한다. <미디어오늘>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최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언론사는 16곳에 달했다. KBS, MBC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독립성 논란을 빚는 이유도 지배 구조 때문이다.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권력·자본권력에 동조한 회사권력과 싸우는 수많은 기자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광고를 걱정하는 데스크에 맞설 수 있는 기자의 패기는 독자의 지지에서 비롯된다. 결국, 책은 "기자들에게 외압을 행사하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기분 좋은 '외압'이 또 있을까.

기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정치, 자본, 회사의 권력이 휘두르는 외압이 아니라 뉴스에 대해 따져 묻는 독자들의 외압이라면 어떨까.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왜 이 부분은 보도하지 않느냐고, 이 기사는 다른 관점을 더 강조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외압이라면 어떨까. 그런 외압이라면, 아무리 시달려도 좋을 것 같다. - 339쪽

덧붙이는 글 | <나쁜 뉴스의 나라> (조윤호 지음 / 한빛비즈 펴냄 / 2016.05 / 1만 3000원)



나쁜 뉴스의 나라 -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조윤호 지음, 한빛비즈(2016)


태그:#조윤호, #나쁜 뉴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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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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