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떠나는 광주일고 동기생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들의 은퇴식에 참석하며 서로 마주보고 있다.

▲ 그라운드 떠나는 광주일고 동기생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들의 은퇴식에 참석하며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연합뉴스


흔히 메이저리그 1세대라 하면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박찬호(선발투수)를 시작으로 김병현(선발 및 마무리), 서재응(선발투수), 최희섭(1루수), 김선우(선발투수), 봉중근(선발투수), 류제국(선발투수) 등을 일컫는다(송승준은 메이저리그 출전 기록 없음). 이들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해외 구단과 계약하여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뒤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다.

본래 KBO리그의 구단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않고 해외 리그와 계약할 경우 2년 동안 KBO리그에서 뛰지 못한다. 최근 군 복무를 마친 정영일(SK 와이번스) 등이 이로 인하여 2년 동안 해외 독립리그를 전전했다. 그러나 이들 1세대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국위 선양에 기여, 해외파 특별 지명의 도움으로 KBO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들 중 서재응과 최희섭의 존재감은 상당히 컸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이후 풀 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한 첫 사례였던 서재응과 메이저리그 최초의 한국인 타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던 최희섭이었다.

마운드에선 컨트롤 아티스트, 더그아웃에선 나이스 가이

'이제는 전설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의 은퇴식에서 김기태 감독에게 유니폼 액자를 전달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 '이제는 전설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의 은퇴식에서 김기태 감독에게 유니폼 액자를 전달받은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재응은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뉴욕 메츠와 계약한 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전까지 시속 150km대의 속구를 던지기도 했던 서재응은 이후 구속을 낮추는 대신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을 무기로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03년 서재응은 드디어 풀 타임 선발투수가 됐다. 188.1이닝 9승 12패 평균 자책점 3.82를 기록하며 박찬호 이후 처음으로 풀 타임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04년 다소 부진하면서 2005년 전반기에는 잠시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하지만 서재응은 2005년 전반기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경기 감각을 유지하며 7월 말 드디어 메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복귀전에서 정교한 컨트롤을 앞세워 이 부문 달인이었던 그레그 매덕스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승리했다.

서재응의 2005년 메이저리그 성적만 봤을 때 90.1이닝 8승 2패 평균 자책점 2.59였다. 9월에 다소 부진하며 1점대 초반의 평균 자책점이 크게 상승했지만, 당시 메츠에서 첫 시즌을 보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이어 선발투수 중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서재응에게 있어서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시절이었다. 2005년에는 마이너리그 기록을 포함하여 200이닝을 넘겼고,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완투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재응은 시즌이 끝난 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06년 초 제1회 WBC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3경기 1실점이라는 짠물 투구를 펼쳤다. 대만 전과 멕시코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4강전에서는 후반 일본 선수들의 집중타로 승패를 가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다저스에서 부진하며 선발 로테이션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당시 신예였던 채드 빌링슬리가 승격되면서 자리를 잃고 탬파베이 데빌레이스(현 탬파베이 레이스)로 포수 디오너 나바로와 함께 트레이드됐다.

당시 탬파베이가 워낙 하위권을 유지하던 팀이었기에 서재응은 꾸준히 선발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07년 중반 지명 할당되면서 더는 메이저리그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이후 KIA 타이거즈로 복귀하게 됐다.

서재응이 아쉬웠던 점은 시즌 10승을 거둔 시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풀 타임 선발이었던 2003년에는 메츠팀 타선이 부진했고, 가장 페이스가 좋았던 2005년은 로스터 문제로 전반기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내야 했다.

이후 KIA에서 줄곧 활약했지만, 팀이 부진하거나 개인의 잔 부상 등으로 아쉬운 시즌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메이저리그와 KBO리그 기록을 합하여 통산 완투는 4회였다. 그중 2번이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2012년에 나왔다.

당시 KIA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었고, 당시 서재응은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후 KIA 선발진은 서재응의 2번째 완봉을 포함하여 4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두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재응은 이 해에 선발 44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평균 자책점 2.59를 기록한 이 시즌에도 9승 8패에 그치며 시즌 10승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던 시즌에도 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신 서재응은 더그아웃에서 팀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날이더라도 동료 선수들이 득점하고 홈을 밟는 순간 앞에서 열렬하게 맞이해주는 모습을 통해 경기 외적으로도 팀에 힘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부상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빅 초이

은퇴식 시구·시타하는 최희섭·서재응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들의 은퇴식에서 각각 시구와 시타를 하고 있다.

▲ 은퇴식 시구·시타하는 최희섭·서재응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서재응·최희섭이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자신들의 은퇴식에서 각각 시구와 시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빅 초이 최희섭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시절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트리플A에서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이며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던 최희섭은 2003년 6월 9일(한국 시각)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수비 도중 선발투수 케리 우드와 충돌하며 뒷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

응급 처치를 거쳐 6시간 뒤에 깨어나긴 했지만, 결국 이때의 뇌진탕 후유증으로 최희섭은 수시로 잔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와 다저스에서 각각 15홈런 시즌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최희섭은 적은 기회였지만 강렬한 활약을 펼쳤던 시기도 있었다. 한 경기 3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었고,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며 타격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떠한 모습을 지녔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플래툰 시스템에 발목이 잡히면서 꾸준히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2005년 후반기부터는 대타로 출전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다저스에서 웨이버 공시되면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탬파베이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KIA로 이적했다.

최희섭은 2005년 제1회 WBC에서 주로 지명타자로 활약했다. 가장 결정적인 활약으로는 2라운드 2차전이었던 미국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승엽(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결승 홈런에 힘입어 앞서가고 있었는데, 이때 최희섭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스리런 홈런을 작렬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2009년 30홈런 100타점 시즌을 만들며 최희섭은 KIA가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이후 KIA는 주전 선수들의 집단 부상에 시달렸고, 최희섭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젊은 시절부터 뇌진탕 후유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력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희섭은 2014년 각종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2015년 잠시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 은퇴를 결정했다. 광주일고 출신 메이저리거 3인방 중 이제 현역 선수로 남아 있는 선수는 김병현뿐이다. 다만 김병현도 현재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있지는 않아 향후 행보는 알 수 없다.

서재응과 최희섭은 선수 시절 화려한 커리어를 기록한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최희섭 골든글러브 1회). 기록적인 면에서는 큰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들이 선수 시절 힘든 경쟁을 뚫고 메이저리그에서 잠시나마 활약을 펼친 이후 후배들이 꿈을 키워 한국인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KIA 구단에서는 크게 기여한 시즌이 적었기 때문에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이들이 겪어 온 야구 인생을 통해 후배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KIA에서는 5월 15일 광주 북구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둘의 은퇴식을 열었다. 각각 해설위원으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두 선수의 은퇴식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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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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