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사무실 대기업 사무실은 지금까지 근무했던 중소기업과는 환경 자체가 달랐다
▲ 사무실 대기업 사무실은 지금까지 근무했던 중소기업과는 환경 자체가 달랐다
ⓒ 강상오

관련사진보기


입사 후 일주일간의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동안 우리 신입사원 5인방은 매일 아침 사무실 입구 엘리베이터앞에서 출근하는 선배사원들에게 요구르트 서비스를 해야 했다. 정식 출근시각은 오전 9시까지였지만 매일 오전 8시 30분이면 건물 5층 대회의실에 모여 그룹 뉴스를 시청해야 했으므로 모든 사원들은 8시 30분까지 회사에 출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훨씬 더 일찍 나와서 요구르트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빨대 꽂힌 요구르트를 출근하는 선배 사원들에게 나눠주며 아침 인사를 하는 이벤트인데 우리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한 건 아니었고 인사 담당자가 시킨 것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에 피곤하긴 했지만 신입사원들이 건넨 요구르트를 손에 들고 웃으며 각자 자리를 찾아가는 선배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장난기 가득한 선배는 요구르트를 받아 들고 들어갔다가 후문으로 나와 다시 요구르트를 받으러 오기도 했다.

요구르트 서비스가 끝나면 5층 대회의실에 모여 그룹 뉴스를 시청한다. 그룹 뉴스는 우리 회사가 소속된 그룹의 주요 소식을 뉴스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로 만들어 각 계열사에 보내주는 사내 방송이다. 매일 아침 이 뉴스를 보며 우리 그룹이 대내외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우리의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뉴스를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일주일의 OJT 기간동안 우리 신입사원들은 4층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매 타임별 다른 전공의 선배사원 강의를 들었다. 회사소개와 복리후생, 영업, 기술 등 전 분야에 걸친 기초 이론 과정의 교육들이었다. 한 과목당 2시간 내외의 시간동안 많은 양의 교육을 들어서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회사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기간은 회사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근무할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의 역할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우리 5명도 각자 담당업무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후 각 부서에서 적응하고 업무를 하다보면 부서간의 장벽에 막혀 답답한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이 OJT 기간에 들었던 타부서 선배의 교육은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우리 회사는 케이블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이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케이블TV는 '유선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TV 안테나 수신율이 저조하던 시절, 커다란 안테나를 세워 전파를 받아 동네 가정에 유선으로 신호를 공급해주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린시절 내가 알고 있던 그 유선방송국은 세월이 흐르며 함께 진화해왔다.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해 동네 유선방송국들을 흡수하고 새롭고 다양한 서비스들이 추가되었다.

내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서 담당하게 될 업무는 디지털 방송 수신기인 셋톱박스 관리였다. 유선방송도 이제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 방송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장비인 셋톱박스가 도입되었다. 내가 TV 제조사에 다닐 때 자주 들었던 단어인데 이 셋톱박스를 제조사가 아닌 케이블TV 회사에 취직해서 만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내가 근무할 곳은... 번쩍번쩍한 사무실이 아니었다

셋톱박스 내가 담당할 업무는 디지털 케이블 방송 수신기인 셋톱박스 구매,재고관리 업무였다
▲ 셋톱박스 내가 담당할 업무는 디지털 케이블 방송 수신기인 셋톱박스 구매,재고관리 업무였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신입사원 개개인들에게는 '멘토'가 지정된다. 멘토는 각자가 맡은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OJT 기간 일주일 중 4, 5일 차에는 현업 부서에 배치를 받아 멘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내 멘토는 내가 담당할 업무를 미리하고 있던 선배 사원이 지정되어 있었다.

나의 멘토이자 선임이었던 분은 이미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 한 달 뒤면 서울에서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신입사원들보다 나는 서둘러 업무를 인수인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너무 일찍, 난생처음해보는 업무를 한 달 만에 배울 수 있을지 걱정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임의 업무 스타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빨리 혼자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속된 부서는 기술부서였다. 기술부서에서는 케이블 방송의 송출을 담당하는 방송기술과 각 가정에 신호를 공급하기 위한 네트워크망 관리 그리고 가입자들의 집에 설치하는 셋톱박스와 모뎀과 같은 장비를 관리하는 장비관리 총 3가지 직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장비관리 업무는 몇달전까지 존재했었던 고객서비스팀에서 진행하는 업무였다고 한다. 하지만 각 지역 방송국별로 나뉘어져 있던 콜센터가 서울과 부산으로 통합되면서 콜센터 직원들이 주를 이루던 고객서비스팀이 없어졌다. 그리고 장비관리 업무는 각 지역 방송국의 기술부서로 이관되었다.

OJT 4일 차에 내가 담당할 업무를 처음으로 배워보기 위해 멘토를 만나러 건물 7층으로 올라갔다. 7층은 회사에서 '셋톱실'이라고 부르는 창고였다. 여기는 지금까지 봐온 3, 4, 5층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3, 4, 5층은 너무 깨끗하고 멋스러운 인테리어가 돼 있는, 대기업 다운 환경의 회사였다면 7층은 내가 근무해온 중소기업 공장환경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의 창고 그 자체였다.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고 여기저기 쌓여있는 셋톱박스들과 바닥에 널부러진 박스들. 그 짐들 사이를 비집고 안쪽 창가에 가니 낡은 책상 2개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 1개의 책상에 내 선임이 혼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깨끗하고 멋스러운 라운드 책상과 파티션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져 있던 4층 사무실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대기업 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좋았다. 7년간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외롭게 혼자 지내던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고, 따뜻한 집밥을 먹고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대신 지난 7년간 쌓아온 나의 커리어는 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모두 버려야 했다. 업종이 다르다고 경력을 하나도 인정 받지 못했고 대학은 아직 재학 중이라 고졸 신입 처우를 받고 입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7년간 중소기업이었지만 또래들에 비해 아주 빠른 승진과 연봉 인상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모두 내려놓아야만 했다. 내 입사 연봉은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보다 훨씬 더 적었다. 그래도 집에 내려올 수 있다는 것, 대기업 사원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기쁘게 타지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내가 근무할 곳과 해야할 일들을 내 눈으로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앞뒤 재보지 않고 여기에 온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가 만약 내가 살고 있던 타지였다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온것에 너무 기뻐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박스 먼지 가득한 7층 창고 낡은 책상에 앉아 키보드 알이 하나 빠진 노트북으로 사내 전산 시스템을 통해 셋톱박스를 협력업체로 출고 시키는 방법을 선임에게 배우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여기에 계속 다녀도 되는것일까? 그래 딱 일주일만…'이라고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