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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씨는 3살 때 소아마비가 생겨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본 기억이 없다.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하늘에 비행기가 떠있는 것만 봐도 그 자리에 멈춰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에이블 플라이트'(Able Flight)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비행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년 1회 장학생을 선발해 6주 동안 우수 항공대학 시설에서 비행 훈련을 전액 무료로 제공하는 데 2013년 여기에 최영재씨가 선발됐다. 그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환상적인 기회였다. 같은해, 그는 시험에 합격해 아시아인 최초로 '휠체어 파일럿'이 됐다. 다음은 최영재씨와 지난 3월 29일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땅 기어다니며 놀던 소년, 하늘을 날다

최영재 씨가  Tim Gleeson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최영재 씨가 Tim Gleeson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 최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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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한 뒤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현재 미국 산호세에 살고 있습니다. 22살 때 결혼해 23살에 미국으로 유학왔습니다. 누나가 이곳에 와서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아내와 함께 오게 됐습니다.

2013년 파일럿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집에 돌아와 얼마 안 돼서 제가 훈련에 사용한 것과 같은 비행기를 봤습니다. 이 비행기는 미국에 열 대도 안 되는 기종으로 캘리포니아에도 몇 대 없습니다. 무척 큰 행운이었씁니다. 귀한 기회가 계속된 것입니다. 비행기 주인인 폴에게 앞으로 비행을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하니 그 제안을 받아줬어요.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비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소아마비로 인해 많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걸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2살 때 제가 서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본 게 전부입니다. 저는 3남 3녀의 다섯째로 누나 셋, 형 하나, 동생 하나가 있어요. 대가족인데 어려서부터 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었어요. 휠체어가 흔치 않은 때라 땅을 기어다니면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화장실을 가지 못해 책가방에 몰래 플라스틱 소변통을 갖고 다녔어요. 아이들이 다 나간 쉬는 시간에 맞춰 소변을 해결하는 등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주저앉는 것보다 그 상황을 늘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 하늘을 날 때 첫 느낌이 어땠나요?
"처음 혼자 창공을 나는 자유, 기쁨, 감격은…. 저에게 진짜 날개가 달려 독수리처럼 활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최종 시험에 앞서 솔로 비행을 했었는데, 공항을 두 번 이·착륙하고 내려오는 과정이었어요. 모두 마치고 성취감에 감격했습니다. 내가 혼자 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 비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위독해진 아버지의 건강 상태였습니다. 혹시라도 훈련 도중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든 일을 접고 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밤 기도하며 잠들었습니다. 정말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시험에 통과한 뒤 다음날 곧장 집으로 돌아갔어요. 결국 아버지께선 제가 파일럿이 된 걸 보시고 이틀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제가 교육을 잘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려주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파일럿이 된 저를 보고 가실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 아내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저는 환자였고 아내는 실습 나온 간호사였습니다. 퇴원해서도 연락이 닿아 매일 편지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아내가 제 고백을 받아줬는데, 아내를 꼭 안았을 때는 제 인생에서 가장 따듯했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비관은 내 선택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비행 훈련을 받은 동료들.
 함께 비행 훈련을 받은 동료들.
ⓒ 최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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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동안 걸을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첫째날은…. 제가 물을 좋아해서 해변가를 걷고 싶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수고한 아내를 등에 업고 말이죠. 아이들이 자랄 때 안아주지 못해서 두 팔로 안아주고 싶습니다. 늘 저를 업고 다니신 어머니는 아예 번쩍 안아야 속이 풀릴 것 같네요. 둘째날은 산에 오르고 싶어요. 돌이 많아 휠체어로 가지 못했던 그 길을 힘차게 뛰어 올라가고 싶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뭔가를 밞아보는 감각을 제 기억 속에 담고 싶습니다. 셋째 날은 걸어서 교회 문을 밟아보고 싶어요."

- 만약 소아마비가 없었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휠체어에 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렇게 강하게 살 수 있었을까?' 오히려 꿈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육체도 건강해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이뤄놓은 게 많을 것 같지만, 보통 사람도 되기 힘든 파일럿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요."

-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저를 위해 비행할 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저처럼 비행을 꿈꾸는 사람, 그 사람들을 위해 비행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비행하려고 합니다. 저의 비행기로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게 목표입니다. 꿈을 갖고 있다면 언젠가 길이 열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비행 자체가 제 삶의 목표는 아닙니다. 비행을 통해 남이 할 수 없다고 하는 통념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인생은 반드시 환경과 육체의 조건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희망을 주는 메신저로 살고 싶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절망할 이유들이 남보다 많지만, 비관은 나의 선택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참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육체에도 있지 않고, 제 마음 속에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com/snsmedia)> 5월호에 먼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휠체어, #파일럿, #휠체어파일럿, #역경,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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