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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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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지난 12일 오후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전남대 사대부고에서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라사랑 병영체험 활동을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학교 측에서 보도자료를 써서 광주교육청을 통해 기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자료를 보면 충격적인 내용이 몇 가지 들어있다.

우선 2학년 남녀 학생 290명이 (남 146 명, 여 144 명) 31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12일 하루 동안 제식훈련, 서바이벌 장비 체험, 각개전투, 화생방 등의 체력 단련과 기초 군사훈련을 하는 체험활동을 한다는 부분이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교정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떠나가는 봄의 자취를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어야 할 학생들이다. 입영징집대상자도 아닌데 신병교육대에 들어가서 제련과 각개전투는 물론 화생방 훈련을 받는다는 내용 앞에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열여덟 살 학생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학교가 아닌 신병교육대에서 그토록 가혹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병영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그랬단 말인가?

보도자료는 이어 해당 학교 '2학년 남학생 김모군'의 체험 소감이라며 아래와 같이 인용하고 있다.

"실제 K2 소총을 들고 은밀히 이동하는 방법과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각개전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군대에 가서도 멋지게 잘해낼 자신이 있다."

나라사랑 체험을 하러 신교대에 입소한 고등학생이 '지형지물'이라는 군대 용어까지 능숙하게 써가며 실제 K2 소총을 들고 각개전투 훈련을 받았는데, 그것이 인상적이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전남대사대부고 이아무개 교장은 "실제 K2 소총이 아니라 물감이 들어있는 서바이벌 장비로 체험한 것일 것"이라면서 "보도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

보도자료에 나온 학생도 가공의 인물?

그런데, 확인 결과 나라사랑 병영체험의 전사로 보도자료에 등장하는 2 학년 남학생 김모군은 지난해 이 학교의 병영체험 행사를 보도한 한 언론의 기사에도 '한 학생'으로 등장해 똑같은 말을 한다.

지난해 4월 이 행사를 보도한 언론에서는 "사대부고 한 학생은 '실제 K2 소총을 들고 은밀히 이동하는 방법과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각개전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며 '군대에 가서도 멋지게 잘해낼 자신이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라고 쓰고 있다 .

결국, 지난해 보도자료에 사용했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올해 다시 사용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보도자료에 등장하는 '사대부고 한 학생' 역시 실제 학생이 아닌 가공의 인물일 개연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당 학교장은 "내년에도 행사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보도자료를 누가 썼는지 모르고 , 보지 않아서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자료에는 학교장 이름과 보도자료를 썼을 것으로 추측되는 담당교사의 이름을 전화번호와 함께 공개하고 있다.

학교의 행사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그것을 누가 썼는지도 모르고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는 학교장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학교에서 학교장의 사전 결재나 확인 없이 교사가 제 마음대로 공식 보도자료를 내는 일이 가능한가.

광주시교육청 (교육감 장휘국)은 이런 문제가 있는 보도자료를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자들에게 보내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남대 사대부고 2학년 학생들이 신병교육대에서 한창 군사훈련을 받고 있던 시각이었고,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불과 4일 남겨둔 날이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어떻게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나라사랑 병영체험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군부대에 입소시켜 군사훈련을 강행하는 이 잔혹한 폭력을 당장 중지하는 것은 물론, 해당 학교 (장)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학교는 이미 충분히 군대와 같다. 군대 같은 학교를 학교답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애국심의 허울을 덮어 학생들에게 군인 흉내를 내게 하는 폭력을 강제하는 것은 학교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할 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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