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만 원. 한때는 이거 한 장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돈으로는 시장도 못 간다는 말이 나옵니다. 둘이 밥 한 끼 먹기에도, 커피 한잔 하기에도 모자른 금액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종로3가 골목은 여전히 만 원이면 밥 먹고 이발까지 할 수 있지만 이전에 비하면 비싸진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만 원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만 원의 행복'을 사치라고 보긴 어렵죠. 오히려 행복을 위해서라면 가끔은 이런 투자(?)도 괜찮을 듯합니다. 행복이 있어야 활력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한때는 귀했지만 이제는 흔해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광어죠. 광어회는 한동안 고급 횟집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양식의 발달로 광어가 늘어나면서 이제 언제 어디서나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습니다.

만원으로 차려진 한 상
 만원으로 차려진 한 상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아무리 광어가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광어 9900원'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가면 '포장해야' 그 가격이고 게다가 양도 그리 많지 않으면서 광어살만 덥석 줍니다. 포장도 그리 정성스럽지 않고요. '그럼 그렇지. 싼 게 비지떡이야'라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만 원의 행복'을 느꼈던 곳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만 원에 한 상이 차려지는 광어횟집. 그곳에서 느낀 행복을 전하려고 합니다.

'싼 게 비지떡'? 그래도 여긴 달라요

서울 석관시장 내에 있는 조그만 횟집. '광어 10,000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9900원 회를 선호하시는 분들에겐 선뜻 내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100원의 차이'는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찾아가면 좋을 듯합니다.

"광어는 봄에 맛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봄은 도다리죠. 광어는 이제 양식이 많아져서 제철이 따로 없어요".

광어 소(小)자를 주문하자 친절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야채와 된장, 메추리알, 완두콩, 다슬기 그리고 회무침을 내놨습니다. 뒤이어 꽁치구이와 야채전이 나옵니다. 대체로 소자를 주문하면 잘해야 야채, 메추리알 정도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만 원짜리 메뉴에도 다양한 음식이 나오네요. 회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함을 메워줄 다슬기부터 횟집에서 메인 메뉴를 시켜야만 맛볼 수 있는 회무침. 그리고 중자 이상은 시켜야 맛볼 수 있게 된 꽁치까지 나와주니 말이죠.

꽁치구이는 생각보다 잘 구워졌습니다. 말라 비틀어졌다는 느낌보다는 금방 막 구운, 윤기가 나는 꽁치구이였습니다. 이런 음식이 메인이 아닌 곁음식으로 나왔으니 아, 이것만으로도 술 한 병은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구워진 꽁치가 곁음식으로 나왔습니다
 잘 구워진 꽁치가 곁음식으로 나왔습니다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회가 나왔습니다. 소자는 한 사람이 먹기엔 다소 많지만 두 사람이 먹기엔 조금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무침과 꽁치구이, 야채전이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물론 술은 따로 시켜야겠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의심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곁음식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회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실은 저도 그런 의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회 역시 싱싱합니다. 정성스럽게 담겨진 회의 모습이 고급 음식점 부럽지 않습니다.

회는 본래 쌈을 싸먹는 음식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깻잎과 회는 정말 좋은 궁합입니다. 깻잎은 본래 해독 작용이 있어 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좋다고 하네요. 거기에 깻잎의 고소한 맛이 회의 비릿한 맛을 없애주면서 고소함이 두 배가 됩니다. 초장을 찍어 깻잎쌈으로 먹고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고 소주 한잔 하다 보니…. 바닥이 보이네요.

뜻밖에 만난 자연산 숭어

그런데 광어가 아닌 다른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께 여쭤봤더니 이런 답이 나옵니다.

"그거, 자연산 숭어에요."

맙소사, 만 원에 자연산 숭어까지 맛봤습니다. 싼 음식을 시켰는데도 싫은 내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반갑게 회를 떠주시는 아주머니와 주방장님의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광어회 소(小). 자연산 숭어도 있습니다
 광어회 소(小). 자연산 숭어도 있습니다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는 아마 만족스럽지 않으신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만 원의 행복이라더니 싸구려 회 먹고 무슨 행복이냐'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역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싸구려라고 보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곁음식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다하고 싼 음식을 시켜도 반갑게 준비해주시는 분들이 이곳에 계시니까요.

그렇기에 이곳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되레 행복을 알려주는 곳이지요. 이 칼럼을 쓰면서 '행복이 맛을 만든다'라는 말을 자주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원 한 장으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어느 맛집보다도 소중한 곳이겠죠. 어려운 시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새 희망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태그:#광어회, #꽁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