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어화>에 등장하는 연희(좌, 천우희 분)와 소율(우, 한효주 분)

영화 <해어화>에 등장하는 연희(좌, 천우희 분)와 소율(우, 한효주 분) ⓒ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래와 예술을 사랑한 두 여인이 있었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십중팔구 재능을 마음껏 뽐냈을 이들이 1940년에 꽃다운 청춘기를 보낸다. 그 자체로 이들이 운이 나빴다 생각하기 쉽지만,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바로 당시에 기존 판소리와 정가 틈새로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의 맹아가 등장했고, 신민요와 트로트 등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역으로 그때가 어쩌면 한국 대중문화의 원류가 태동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영화 <해어화>는 바로 그 노래에 인생을 건 두 예인 소율(한효주 분)과 연희(천우희 분)에 초점을 맞췄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 불리며 웃음과 기예를 파는 두 사람의 갈등과 사랑을 전면에 세웠다.

수상한 시대를 살아낸 여인들

영화가 일단 반가운 이유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시대극 특히 일제강점기 비극서사들의 대부분이 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과감하게 <해어화>는 유연한 두 여성 예술인에 집중했다.

사실 몇 가지 함정이 있었다. 두 여성을 내세웠지만, 그들 사이엔 사랑의 대상이자 당대 최고 작사 작곡가 윤우(유연석 분)가 있다. 이 지점에서 <해어화>를 한 남자를 가운데 둔 두 청춘의 치정멜로극으로 예상하기에 십상이다. 남성의 상대역으로서 마냥 흔들리고 상처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재탕하는 정도로 전락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주요 갈등 원인 중 하나는 한 남자를 향한 서로 다른 마음이다. 다만 <해어화>는 거기서 더 나아가 개인의 욕망과 그걸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소율과 상처받는 연희에 더 무게를 실었다.

이를 주지시키듯 연출을 맡은 박흥식 감독은 언론 시사가 열린 지난 4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영화의 소실점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그땐 왜 몰랐을까. 이렇게 좋았던 것들을'이라는 대사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을 버린 소율로 인해 모든 비극과 회한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시 풀면 <해어화>는 비극으로 달려가는 영화이고, 그 원동력이 바로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물들이다. 단순히 소율을 악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우정을 끝까지 지키고자 해보지만 그를 짓누르고 있는 내부와 외부의 압력이 너무도 거세다. 스스로 무너지는 이 캐릭터는 그간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모적 캐릭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만큼 입체적이었다는 뜻이다.

듣는 즐거움

'해어화' 청룡의 여신 한효주-천우희와 유연석 배우 한효주, 천우희, 유연석와 박흥식 감독이 14일 오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해어화> 제작보고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의 <해어화>는 기생이자 예인을 일컫는 말로 1943년 일제강점기 시대, 민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마지막 기생(한효주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4월 13일 개봉.

▲ '해어화' 청룡의 여신 한효주-천우희와 유연석 지난 3월 14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해어화> 제작보고회 현장. ⓒ 이정민


이야기의 힘을 지탱하는 건 두 말 할 것 없이 음악이다. 음악이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이병훈 음악 감독은 당대 유행했던 유행가는 물론이고, 현대까지 아우를만한 노래 몇 곡을 열거하는데 꽤 조화롭다. 일단 한효주, 천우희, 차지연이 직접 부르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봄아가씨', '다방의 푸른꿈' 등이 새롭게 다가온다. 유연석은 윤심덕의 '시와 찬미'와 '아리랑'을 직접 연주했다.

특히 이병훈 감독이 직접 작곡한 '조선의 마음'은 천우희가 직접 1절 가사를 붙여 몰입도를 더했다. 가사에 대해 천우희는 "시대적 배경과 연희의 마음을 넣고 싶었다"며 "인생에 대한 서러움과 고단함이 시대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고, 나 자신을 대변하는 가사를 넣으려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조선의 마음' 자체가 <해어화>를 지배하는 정서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신곡 '사랑 거짓말이' 역시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조선의 마음'이 어두운 시대 속에서 자신을 저버린 아픔을 대변한다면, 이 노래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인간의 감정을 위로한다.

앞서 열거한 여러 장점이 <해어화>의 미덕이지만, 동시에 단점도 보인다. 각 캐릭터가 쌓아온 복잡한 감정을 영화 후반부가 다 아우르지는 못한다. 소율의 이야기면서 연희의 이야기이자 윤우의 이야기를 바랐던 건 큰 욕심이었을까.

그럼에도 길을 잃지 않고 중심을 지켜낸 것에 작은 지지의 마음을 보탠다.

오마이스타's 한줄평 : 위태롭게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 더 가까이 볼 것
평점 : ★★★ (3/5)

영화 <해어화> 포스터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해어화>의 포스터. 음악으로 이야기를 지탱하는 이 영화는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 영화 <해어화> 포스터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해어화>의 포스터. 음악으로 이야기를 지탱하는 이 영화는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 롯데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영화 <해어화> 관련 정보

감독 : 박흥식
제공/배급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 더 램프
개봉 : 2016년 4월 13일
러닝타임 : 120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해어화 유연석 한효주 박흥식 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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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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