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모두 지났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4월 4일 투표용지 인쇄가 들어가는데,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곳이 거의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지도부의 단일화 저지 방침에 따른 결과이다.

이에 따라 야권 분열에 따른 새누리당 압승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나는 이미 3월 27일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208석을 얻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이대로 선거 치르면... 새누리당 '208석')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여소야대를 목표로 한다고 말하거나 130석을 목표로 한다고 공언해왔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점차 참패 가능성, 야권의 궤멸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총선을 총괄하는 정장선 선거대책본부장은 4월 3일 "이러다가는 여당이 180석, 200석 갈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야권 궤멸이라는 공포스러운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새누리당이 180석을 넘어 200석을 석권하는 것을 막을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희망의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그 가능성의 단초를 본다. 아직은 작지만 잘만하면 현실화된 야권궤멸의 위기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크기'이다.

낮은 투표참여율? 이번엔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역 일대에서 강동갑 후보 진선미 의원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 문재인 '2번 진선미를 뽑아주세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역 일대에서 강동갑 후보 진선미 의원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야당이 여당에 비해 지리멸렬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야당 지지자들의 투표참여율이 낮았다는 데 있다. 야당 지지자들은 정치혐오 성향이 강했고, 언제나 여당 지지자들보다 투표율이 낮았다. 세대별로 봐도 야당 성향이 강한 40대 이하의 투표율은 언제나 여당 성향이 강한 50대 이상의 투표율보다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여론조사 중 일부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첫 번째로, 각 정당 지지자 별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을 살펴보자. 리얼미터가 3월 28~30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평균 56.9%)이 가장 높은 정당 지지자들은 ▲ 더민주로 76.8%에 달했다. 다음으로 ▲ 정의당 63.3% ▲ 새누리당 51.9% ▲ 국민의당 49.6%의 순이었다.

리서치뷰가 3월 31일~4월 2일 조사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평균 73.7%)이 가장 높은 정당 지지자들은 ▲ 더민주로 78.5%였다. 다음으로 ▲ 정의당 76.9% ▲ 국민의당 74.5% ▲ 새누리당 69.0%의 순이었다.

두 조사 모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적극적 투표의향 비율이 가장 높았고,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지지자들의 투표의향 비율이 낮았다. 지지자들의 정치적 간절함의 크기에서 더민주 지지자들의 간절함이 가장 크다는 것을 이들 조사는 보여준다.

다음은 두 번째로, 세대별 적극적 투표의향층의 비율을 살펴보자. 위의 여론조사는 세대별 투표의향층 비율에서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40대 이하의 투표율은 언제나 50대 이상의 투표율보다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그런데 두 가지 조사는 달랐다. 아래는 그것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지난 19대 총선 세대별 투표율과 최근 여론조사 결과 비교
 지난 19대 총선 세대별 투표율과 최근 여론조사 결과 비교
ⓒ 유창오

관련사진보기


지난 2012년 4월에 치러진 제19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 가장 투표율이 높은 세대는 60대 이상으로 69.7%였고, 가장 낮은 세대는 30대로 41.8%였다. 투표율 차이가 무려 27.9%p에 달했다. 반면 최근에 실시된 두 여론조사에서 적극적 투표의향층의 비율이 가장 낮은 세대는 둘 다 60대 이상이었다. 반면 가장 적극적 투표의향층의 비율이 높은 세대는 40대이거나 20대였다. 그리고 2040세대가 전체적으로 적극적 투표의향층 비율이 높았다. 이는 2040세대의 정치적 간절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야권지지층과 2040세대가 여권지지층과 5060세대보다 적극적 투표의향을 보이는 것은 이전의 선거결과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 경향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는 적극투표층에서 여당의 강세를 보이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적극투표층에서 야당의 강세를 보이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야당 지지자들, 그리고 2040세대들의 정치적 간절함의 크기를 여론조사 지표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에 패배한 이유

나는 최근 발표한 책 <정치의 귀환 : 야당, 갈등을 지배하라!>에서 지지자의 간절함의 크기가 승패를 가른 선거를 분석하며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를 그 예로 들었다(112~114쪽).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힘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간절함이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간절함보다 컸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평가한다.

지난 대선, 지지층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간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얘기가 많은데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40대 초반의 A씨. 그는 선거 전날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충청도에 거주하시는 60대 후반의 어머니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죽기 전에 소원이 있다. 꼭 들어 달라. 내일 선거에서 꼭 박근혜 후보를 찍어라."

A씨는 어머니의 죽기 전 소원을 들어 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문재인 후보를 찍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부산 출신의 30대 후반 B씨. 그는 선거 때마다 부모님께 민주당 내지 진보 정당을 찍으라고 말했고, 부모님은 대체로 그의 말을 들어줬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달랐다. B씨의 아버지는 B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안 돼. 우린 박근혜 후보를 찍으련다. 그러니 너도 이번엔 좀 박근혜 후보를 찍어라."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얘기가 많았는데, 과연 여론조사에서도 이와 관련된 정량적 지표를 발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런 조사가 있다. 대선 2일 전 방송 3사의 여론조사(아래 표)에는 후보 지지율은 문재인 후보가 앞섰지만, '지지 후보 공개 여부'와 '주변 거론 지지 후보' 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앞선 결과가 있다.

후보 지지층별 지지 후보 적극 공개 및 지지 후보 거론 관련 조사
 후보 지지층별 지지 후보 적극 공개 및 지지 후보 거론 관련 조사
ⓒ 유창오

관련사진보기


이 조사에서 "주변 사람들이 선생님께 어느 후보를 지지하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말해 준다"라고 응답한 비율('지지 후보 공개 여부')이 박근혜 후보 지지층은 50.4%로, 문재인 후보 지지층의 44.2%보다 6.2%p나 높았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주변에서 누구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까?"에 대한 응답 비율('주변 거론 지지 후보')도 박근혜 후보 지지층은 40.6%로, 문재인 후보 지지층의 36.3%보다 4.3%p나 높았다.

즉, 이 조사에 따르면 후보 지지율 면에서는 문재인 후보(46.0%)가 박근혜 후보(44.6%)보다 1.4%p 높았지만 박근혜 후보 지지층이 더 적극적으로 주변에 지지 의사를 말했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고 유권자들은 대답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적극성의 차이가 투표장으로 지지층을 더 많이 이끄는 힘의 차이를 만들어 냈고, 이것이 지난 대선 막판 혼전에서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마디로 박근혜 후보 지지층의 간절함이 문재인 후보 지지층의 간절함보다 컸던 것이다.

이제는 간절함에 달렸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야권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야권 분열에 따른 새누리당 압승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새누리당의 개헌선 확보가 가져올 공포에 떨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야권궤멸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그 가능성의 단초를 본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크기'이다. 더민주와 정의당 지지자들과 2040세대 유권자들의 적극적 투표 의지는 그들의 정치적 간절함으로 보여준다.

이제 정당에 의한 야권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남은 것은 결국은 유권자들에 의한 야권 후보 단일화, 즉 '선택과 집중'에 의한 전략적 몰아주기 투표밖에 답이 없다. 국민이 권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당선 가능한 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밖에 없음을 설득해낼 수 있느냐가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개헌선 확보를 저지할 것이냐, 못할 것이냐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원동력은 바로 지지자들의 간절함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간절함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간절함이 크면 그것은 확산되고 전염된다. 그 힘으로 역사는 만들어졌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기본원리는 간절함이 큰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 야권분열 구도의 불리함을 극복할 힘은 결국 지지자들의 간절함밖에 없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층이 더 적극적으로 주변에 지지 의사를 말했고, 그래서 유권자들이 주변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처럼, 이번 총선 야권 지지자들과 2040세대의 간절함이 야권 궤멸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유창오 기자는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민주당과 정치 현장에서 18년간 몸담아 온 '정치적 지식인'의 내부로부터의 시각, 민주당에 대한 보고서" <정치의 귀환 : 야당, 갈등을 지배하라!>라는 책을 냈습니다. 2011년에는 세대구도의 등장과 그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고 2040세대의 정치적 주도성을 주창한 <진보 세대가 지배한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태그:#단일화 , #20대 총선, #더민주, #새누리당, #안철수
댓글4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