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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 사이에 소복을 입은 색시처럼 수주분듯이 꽃을 피우고 있다.
▲ 목련화 고분 사이에 소복을 입은 색시처럼 수주분듯이 꽃을 피우고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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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겨우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용솟음치는 계절이다. 두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기지개를 켜 본다. 진달래, 매화, 산수유와 함께 봄이 찾아왔다. 앞집에도 뒷집에도, 서쪽에도 동쪽에도 봄, 봄이다.

천년의 고도 경주, 우리나라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역사와 꽃과 소나무의 도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렇다 할 추억거리가 없다. 중학교 때 부여, 서울 남산을 거쳐 다녀왔던 것이 유일하다. 울릉도 다녀올 때 불국사를 거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역사를 잊고 사는 것만큼이나 삶에 충실한 것도 아니면서 세월만 흘러 버렸다. 5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다. 그간 무엇을 했을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지난 2일 경주를 찾았다. 경주에는 지금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새로 확장 개통된 광대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에서 경주까지 걸린 시간은 세 시간 반 정도다. 무려 한 시간이나 단축되었다. 죽음의 도로라는 '88고속도로'는 역사 속 이름으로 사라졌다.

정자와 벚꽃이 어우러졌다.  환상의 조화다. 벚꽃이 절정이다. 천년의고도 경주에는 온 도시가 하얀 눈꽃이 피니 것처럼 장관이다.
▲ 보문정 정자와 벚꽃이 어우러졌다. 환상의 조화다. 벚꽃이 절정이다. 천년의고도 경주에는 온 도시가 하얀 눈꽃이 피니 것처럼 장관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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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사진, 벚꽃과 정자와 연못이 조화를 이룬다.
▲ 보문정 야경 사진, 벚꽃과 정자와 연못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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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시, 모두가 잠든 시간이다. 대릉원의 고분과 목련화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우뚝 솟은 고분 사이에 새색시처럼 소복을 하고 슬픈 듯이 나 홀로 서 있다.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고분 사이에 하얗게 핀 목련, 무슨 의미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꽃은 야경이 최고다. 불빛과 어우러져 연못에 반영되니 하늘, 땅, 연못에 꽃 천지다. 새 잎이 돋기 전 가지에 꽃을 가뜩 피워내고 있다. 벚꽃은 지금이 절정이다. 짧은 기간 활짝 피었다가 소리없이 사라진다. 삶에 지친 우리에게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경주의 야경은 뭐니 뭐니 해도 보문정이다. 세량지처럼 벚꽃이 연못에 반영되어 장관을 이룬다.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세량지는 산 벚꽃인데 비해 이곳은 토속 벚꽃이다. 연못 위에 길게 가지를 뻗친 채 꽃을 피운다. 그냥 셔터만 눌러댔다.

낮에 찍은 사진이다. 야경과 대비해 보았다.
▲ 보문정 낮에 찍은 사진이다. 야경과 대비해 보았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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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살펴보니 야경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분이 몇 분 보인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선가 보다. 연못이 조금 가파르다. 자칫 카메라를 물에 떨어뜨리기 쉽다. 이런 사고를 당하면 사진이 문제가 아니다. 좋은 여행을 망치기 일쑤다.

각자 좋은 위치에서 사진도 찍고 꽃도 보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이곳은 낮에 다시 찾기로 한 터다. 밤과 낮에 각각의 모습을 비교해 보기로 했다.

다음은 삼릉 소나무 숲 둘러보기다. 소나무는 안개와 빛 내림, 날씨 등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안개도 없고 빛 내림도 기대하기 어렵다. 날씨가 흐려 해를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요즈음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조차 흐리다.

이곳 소나무 숲은 사진작가 한 분이 찍으면서 유명해졌다. 소나무는 경주의 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에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다. 나 역시 소나무를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충분하다. 아침밥을 조금 늦게 먹기로 한 탓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소나무, 사진작가 한분이 찍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특히 이곳 삼능 소나무숲은 사진가들이 촬영을 위해 즐겨 찾는다.
▲ 소나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소나무, 사진작가 한분이 찍으면서부터 유명해졌다. 특히 이곳 삼능 소나무숲은 사진가들이 촬영을 위해 즐겨 찾는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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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모여든 사진가들이 북적인다. 전부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한 컷 촬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오전 5시가 조금 지났을까. 소나무 숲이 보인다. 웅장한 몸통에 철갑처럼 단단한 껍질로 무장한 채 버티고 있는가 하면 비비 꼬며 우리를 유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이사이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꽃을 피운 채 자태를 뽐낸다. 삭막한 소나무 숲 가운데 노랗고 빨간 꽃들이 피어있다. 소나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진달래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소나무에 취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났다. 늦은 아침 식사는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여행은 드라이브, 먹거리, 볼거리 등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는데 순두부를 먹기로 했다. 두부 반 모가 덤이다. 음식 맛이 최고다. 깔끔하고 정갈하고 담백하다. 내가 너무 시장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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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성대 1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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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여정은 보문정, 안압지, 첨성대, 천마총 등이다. 보문정과 대릉원은 새벽에 다녀간 곳이고 안압지를 거쳐 대릉원 계림, 첨성대만 돌아보면 된다. 그 사이 시내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벚꽃놀이 차량들이다.


지금부터 1300여 년 전에 조성한 연못이다. 안압지는 야경이 최고라는데 아쉽다. 물결 때문에 반영 사진도 별로다. 조명과 자연, 건축의 합작품 야경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별 수 없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1300여 년전에 조성한 연못이다. 도수로와 용수로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 안압지 1300여 년전에 조성한 연못이다. 도수로와 용수로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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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달리 이곳은 여유로움이 있다. 가족들이 자리를 깔고 드러누어 담소를 하기도 하고 꽃을 배경으로 사진놀이에 빠진 친구들도 보인다. 특히 어린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행 중 한 명이 여학생들 사진 촬영에 빠졌다. 하트 모양, 손바닥에 꽃나무 올리기, 공중 부양 등 다양한 사진들을 선사한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학생들의 깔깔거리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인다.

천년의 고도 경주는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관광지다. 아니 문화와 역사의 도시다. 비록 이번에는 그 일부만 돌아보고 가지만 언젠가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구석구석까지 돌아봐야겠다.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태그:#경주, #경주벚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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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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