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 전 교복을 입은 아이들 틈에 버스를 탄 적이 있습니다. 하교 시간이라 그런지 긴장이 풀린 얼굴에 재잘재잘 떠드는 폼이 아침 등교 때와는 사뭇 달라보였습니다. 자연스레 아이들 가슴에 달린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애 이름은 OOO네. 이 애 이름은 □□□이고. 요즘에도 이런 이름이 있구나.'

그렇게 생판 모르는 아이들 이름을 보면서 '정작 이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아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명찰을 옷에 고정시켜 학교 밖에서까지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함께요.

참 의아했습니다. 개인정보가 한층 강화되고 사생활 보호가 날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내 이름은 아무개입니다"라고 어디에서든지 자진해서 알리도록 강요받다니요. 아이들의 부모조차 이 일에 대해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걸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이름표는 처음처럼 눈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일은 제게 현실이 됐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이름표 꾸러미를 학교에서 받아왔습니다.

"엄마, 이거 교복하고 조끼하고 체육복에다 실로 꿰매 붙여야 한대."

교복에 실로 꿰매어 고정시켜야 하는 헝겊 명찰. 아이들은 이 명찰을 학교 밖에서도 달고 다니며 어디서든 이름을 노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 교복에 꿰매어 다는 고정명찰 교복에 실로 꿰매어 고정시켜야 하는 헝겊 명찰. 아이들은 이 명찰을 학교 밖에서도 달고 다니며 어디서든 이름을 노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 김상희

관련사진보기


고무줄로 묶인 헝겊 명찰 한 뭉치. 아이가 이 명찰을 달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사방팔방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영 찝찝했습니다. 혹시 나처럼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학부모가 있을까 싶어 국가인권위원회 누리집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인권침해 vs. 지도관리

"고정식 명찰 부착으로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까지 본인의 이름이 공개되어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라면서 이를 시정해 달라는 진정이 있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10월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문에는 6개 중학교 교장들로 이루어진 피진정인의 주장도 들어있습니다. 그들은 교복에 고정명찰을 부착하도록 하는 이유가 교복분실 방지, 명찰파손 예방,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서라면 과거 교복자율화 때처럼 옷핀으로 탈부착이 가능한 아크릴 명찰을 달면 됩니다. 아크릴 명찰은 던져도 잘 깨지지 않으니 파손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실제 저는 교복자율화 세대로 아크릴 명찰을 사용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내내 각각 하나의 명찰로 잘 지냈습니다. 또 교복분실이 걱정된다면 교복 안쪽에 헝겊 명찰을 고정시키면 됩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의 보장)와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근거로 이런 관행은 시정되어야 하며, 이 사건의 진정내용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공통된 부분이므로 지도·감독 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전국 시·도교육감에게 이 결정의 취지에 맞추어 각급학교를 지도·감독 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특히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가 자신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권리(개인정보 자기결정권)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므로, 자기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주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는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교들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은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사원들을 관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비바람이 불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이름표를 옷마다 달으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회사 밖을 나와서 어디를 가도 누구나 내 이름을 압니다.

이렇게 개인정보를 알리는 것이 자기(정보주체)에게 있지 않고 회사에게 있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인권침해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교가 고정명찰로 학생의 신상을 노출시키는 것 역시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태그:#교복 고정명찰, #인권침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