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사태'(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구단이 올 시즌 영입한 KBO 출신 한국 타자 김현수의 거취를 둘러싸고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일관하면서 국내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김현수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어 2년 700만 달러의 조건으로 볼티모어에 입단했다. 볼티모어는 취약 위치이던 외야를 보강하기 위하여 김현수를 영입하면서 다음 시즌 주전 좌익수로 중용될 것이 예상됐다.

하지만 김현수가 시범경기에서 극도로 부진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애초 김현수에게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겠다던 볼티모어 구단이 최근에는 태도를 바꾸어 김현수에 대한 신뢰를 잃은 듯한 모습이다. 시즌 개막이 가까워져 오면서 출전기회가 눈에 띄게 줄었고 심지어는 마이너리그행과 국내 유턴설까지 벌써 나오고 있다.

시범경기 좋지 않았지만... 기회 자체가 너무 적었다

힘겨운 첫 안타로 가는 길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가 지난 5일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 센추리링크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 3회 초, 선수타자로 나와 땅볼을 치고 아웃된 뒤 더그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경기에서 박병호는 2타수 무안타 1득점, 김현수는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 힘겨운 첫 안타로 가는 길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가 지난 5일 오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스 센추리링크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미네소타 트윈스의 경기 3회 초, 선수타자로 나와 땅볼을 치고 아웃된 뒤 더그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경기에서 박병호는 2타수 무안타 1득점, 김현수는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물론 김현수가 애초에 시범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구단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 문제의 원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현수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처음 데뷔하는 선수다.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생소한 투수들과 낯선 야구스타일-준비과정 등을 거쳐야 했던 김현수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고작 40여 번의 타석으로 실력을 전부 증명하라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애초에 김현수를 영입한 자신들의 안목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인증하는 제 얼굴의 침 뱉기가 되어버린다.

김현수보다 1년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피츠버그)도 데뷔 첫해 시범경기 성적은 고작 타율 0.200(45타수 9안타) 2홈런 5타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정호는 결국 개막 25인 참가자명단에 진입했고 시즌을 거듭하면서 점점 메이저리그에 적응해가면서 성공적인 첫해를 보냈다. 구단이 자신들의 선수를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따라 선수의 심리상태와 잠재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김현수를 압박하는 볼티모어의 비정상적인 태도다.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통하여 김현수가 정말 팀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차라리 위약금을 주고 방출을 하거나 트레이드라도 시키면 된다. 그런데 볼티모어는 사령탑과 프런트가 돌아가며 김현수를 점점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최근 불거진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과 국내 유턴설 등은 모두 볼티모어 구단의 의도적인 '언플'이라는 분석이 많다. 댄 듀켓 볼티모어 단장은 김현수와 경쟁자들의 이름을 언론에 실명으로 언급했고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벅 쇼월터 감독 또한 시범 경기 내내 김현수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하다가 최근에는 별다른 통보 없이 김현수를 전력에서 제외하는 등 노골적으로 박대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볼티모어가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을 위한 동의를 끌어내려는 포석이 있다고 분석한다. 김현수는 계약 당시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가지고 있어서 선수 본인의 동의 없이는 마이너리그에 내려보낼 수 없다. 이미 김현수를 개막 25인 로스터로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볼티모어는 이른바 망신주기식 압박을 통하여 김현수가 반강제로 마이너리그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설사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사용하더라도 출전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무언의 협박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직 보여준 게 없는 초짜인 김현수로서는 굳이 초반부터 구단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고집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악용한 과거 기억해야

윤석민 볼티모어 입단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둥지를 튼 윤석민(28)이 18일(현지시간) 낮 플로리다주 새라소타에 있는 구단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입단식에는 댄 듀켓 단장과 벅 쇼월터 감독이 동석했다. 쇼월터 감독은 윤석민에게 직접 유니폼을 입혀주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 윤석민 볼티모어 입단 미국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둥지를 틀었던 윤석민은 결국 국내로 복귀해야만 했다. 윤석민의 사례가 김현수에게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연합뉴스


물론 일각에서는 차라리 김현수가 마이너리그에서라도 미국야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고 타격감을 회복한 뒤에 메이저리그로 다시 올라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시각도 있다. 볼티모어 구단이 제시하는 명분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실정에 밝은 이들은 대부분 마이너행은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라고 지적한다.

마이너리그라고 해서 출전기회가 보장된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설사 마이너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고 해도 바로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한번 감독의 시야에서 벗어나 버린 선수가 다시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유망주도 아니고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20대 후반의 김현수가 기약 없는 마이너리그 생활에서 동기부여가 될지도 미지수다.

강정호 역시 지난 시즌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이너리그행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선수도 구단도 메이저리그에서 더 버티는 길을 택했고 백업 요원으로라도 꾸준한 기회를 잡으면서 적응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피츠버그와 달리, 현재 김현수를 대하는 볼티모어의 행태를 고려할 때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선뜻 마이너행을 수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볼티모어는 지난 2014년에도 한국인 투수 윤석민을 영입했으나 결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시키면서 국내로 다시 유턴해야 했다. 물론 윤석민의 경우, 김현수와 달리 1년의 세월을 두고 지켜봤음에도 마이너리그에서조차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2015년 윤석민의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악용하여 고의로 전력에서 배제하고 노골적인 홀대를 통하여 사실상 계약 해지를 유도하는 방식은 지금의 김현수와도 흡사하다. 아무리 메이저리그가 철저한 비즈니스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비열하고 치졸한 결별 방식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김현수나 윤석민이 단지 '우리나라 선수'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차원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볼티모어의 이런 행태가 반복될 경우 나중에 제2, 제3의 김현수-윤석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창 전성기를 달려야 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꿈을 안고 도전했거나 볼티모어 같은 구단의 전횡과 꼼수에 상처만 입고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한국야구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김현수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단지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국내 야구팬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버린 김현수에게는 과연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사실 메이저리그에 남든 마이너로 내려가든 이래저래 입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진퇴양난이다. 선수가 구단과 맞선다는 모양새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볼티모어의 의도적인 장단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차라리 국내 유턴 같은 마지막 상황까지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냥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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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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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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