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더 이상 대중문화의 변방이 아니다. 지난 4년간 엠넷(Mnet)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 SHOW ME THE MONEY(쇼미더머니) >(아래 <쇼미>)는 흥했고, 음원 순위 상위권에 래퍼들의 곡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쇼미>에 지원한 래퍼들도 매 시즌 꾸준히 증가했다(약 1000→2000→3000→7000명). 지난 3월 12·13일 서울 올림픽공원 <쇼미5> 예선에는 역대 최다 지원자인 9000명이 몰려들 정도였다. 혹자들은 지금을 '힙합 르네상스'라고까지 말한다.

<쇼미>는 분명 힙합을 향한 대중의 관심을 견인했다. 다만 겉보기의 화려함에 비해 '진정한 성장'을 견인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래퍼들의 사행성 경쟁을 부추기고, 대중관심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해 힙합 생태계의 다양성을 해치지는 않을까. 지난 4년 동안 <쇼미> 지원자는 약 1만3000명에 달했지만, 막상 본선 경연에서 주목 받은 래퍼는 0.5%도 안 되는 극소수(60명 미만)에 그쳤다. 물론 이들의 소회가 모두 같지는 않다. 

<쇼미> 무렵 벌어들인 부(富)를 미디어를 통해 공공연히 자랑하는 래퍼, 기회주의적 낙관론을 유지하는 래퍼, 거대 자본에 의한 대중문화의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대안을 찾아보자는 래퍼 등 다양하다. 5년의 세월은 정치로 따지자면 한 정권의 집권 기간이다. 집권 5년 차에 접어든 쇼미 신의 어제와 오늘을 결산해보자.

이것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 1.0'

 메타는 나찰과 함께 힙합 듀오 '가리온' 소속이다. <쇼미1> 때는 메타와 나찰이 가리온으로 함께 출연했지만, <쇼미2> 때는 나찰은 빠지고 메타만 출연했다. 편의상 대표로 메타만 포함시켜 55명의 래퍼들의 관계망을 분석했지만, 나찰도 상당히 중요한 래퍼임을 주지하자.

메타는 나찰과 함께 힙합 듀오 '가리온' 소속이다. <쇼미1> 때는 메타와 나찰이 가리온으로 함께 출연했지만, <쇼미2> 때는 나찰은 빠지고 메타만 출연했다. 편의상 대표로 메타만 포함시켜 55명의 래퍼들의 관계망을 분석했지만, 나찰도 상당히 중요한 래퍼임을 주지하자. ⓒ 하지율


<쇼미>는 힙합 장르 안에서도 '랩'의 요소가 특히 강조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예선과 본선이 나뉘고 극소수 래퍼만 본선 경연 무대에 선다. 시즌1부터 4까지 총 56명의 래퍼가(심사위원·프로듀서·진행 MC 포함, 외부 피쳐링·프로듀싱 제외) 본선 경연 무대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이 중 55명의 관계망을 노드 엑셀이라는 툴로 분석했다.

가령 버벌진트와 산이가 공동 프로듀서로 블랙넛의 무대에 관여하면, 버벌진트와 산이 사이에 양방향 화살표가(↔) 1씩 굵어진다. 블랙넛과 버벌진트, 블랙넛과 산이 사이에도 양방향 화살표(↔) 1씩 굵어진다. 버벌진트와 산이가 블랙넛에게 피쳐링까지 하면, 둘로부터 블랙넛으로 단방향(→) 화살표가 1씩 굵어지지만 둘 사이 화살표 굵기 추가는 없다. 화살표가 여러 방향으로 굵게 뻗어 나가는 래퍼가 관계망 내에서 '랩적인' 영향력이 큰 셈.

데이터는 단순히 <쇼미> 뿐 아니라, 2016년 3월 24일 기준으로 '음원 피처링(프로듀싱 제외)' 사례까지 수집했다. 그래프 출력 버튼을 클릭하자 <쇼미> 래퍼들의 관계망이 소용돌이처럼 펼쳐졌다. 이 관계망에 '연결고리 1.0'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파란색 점은 시즌1부터 4까지 실제 우승자이며, 빨간색은 관계망 내 '장악력 톱4' 연두색은 '자유로움 톱4' 래퍼다. 이 관계망의 의미와 '장악력' '자유로움'의 기준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본다.

힙합 신을 향한 타블로의 '낙관론' vs. 메타의 '대안론'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 분석 결과.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 분석 결과. ⓒ 하지율


'장악력'은 컴퓨터가 계산한 '매개 중심성'을 뜻한다. 이 값이 높은 래퍼는 래퍼들의 관계망 내에서 일종의 매개자 역할을 할 능력이 있다. 매개자는 정보와 자원 흐름의 장악력이 크므로 '책임감'이 요구된다. 매개자가 마음만 나쁘게 먹으면 길목에서 흐름을 왜곡하고 방해해 힙합 신 전체의 건강과 균형 있는 자원 배분을 망칠 수도 있다. 분석 결과, 타블로(539.593)·메타(483.997)·이현도(335.005)·버벌진트(250.806)가 톱4였다.

이들은 <쇼미>에서 심사위원(프로듀서) 활동을 하며 래퍼들과 관계를 강화했다. 물론 심사위원이라고 꼭 장악력이 있는 건 아니다. 가령 후니훈(0.000)은 장악력이 전혀 없었는데, 평소 래퍼들과 얼마나 피처링을 주고받는지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쇼미> 우승자 중 더블K(107.402)·로꼬(105.428) 정도를 제외하고 평균(60.800)을 넘는 래퍼는 없었다. 우승이 반드시 장악력과 직결되지는 않는 셈이다.

타블로는 지난해 7월 30일 서강대 소극장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쇼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힙합 신을 알고 보면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쇼미>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어도, 힙합 신은 <쇼미>만큼 거대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쇼미>에 대한 가치판단을 피할 명분을 쌓으면서도 힙합 신에 대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반면에 메타는 지난해 8월 <뉴스타파>와 함께, 한국 힙합 신과 <쇼미>의 문제점을 디스한 '쇼미더힙합'을 발표했다(관련 영상: 쇼미더힙합). 또한 <경향신문>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등 언론을 통해서도 소신을 밝혔는데, 뼈대만 추려보면 이렇다.

우선 힙합 신의 실상은 극소수의 화려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래퍼들과 그 이면의 여전히 무대에 설 기회조차 없는 대다수의 래퍼로 나뉜다. 무대도 경제력이 있어야 빌릴 수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을 차지한 딥플로우조차 빠듯하게 음악을 할 정도니, 음악성으로 먹고살기가 힘들다. 더 많은 신인의 등용문, 그리고 힙합의 고유함을 대중에게 충분히 이해시킬 기회라는 두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2012년 엠넷이 메타에게 <쇼미> 심사위원으로 참가해달라고 제안을 했고, 메타는 엠넷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조건을 충족시켜줄 것 같아 <쇼미1>과 <쇼미2>에 참가했다. 문제는 자신과 엠넷이 이해하는 힙합이 너무 다르다는 걸 점점 느끼며 고민이 쌓였다는 것. 메타가 꼽은 문제는 '선정성'과 '획일성'이다. <쇼미>가 래퍼들을 불러놓고 가장 먼저 시키는 건, 수천 명이 줄을 서서 음악도 없이 짤막한 랩을 하는 거다. 극히 선정적인 모습(디스·욕설·자기과시·사회적 약자 멸시 등)으로만 순간적 이목을 끌게끔 조장될 가능성이 크다.

메타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쇼미>는 공정한 평가와 다양성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아닐뿐더러, 힙합 장르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메타의 목표가 <쇼미>와 싸우는 건 아니다. 그는 차라리, 등용문이 마땅치 않아 <쇼미>와 같은 방송 하나에 쉽게 휘둘리며 몰려드는 힙합 신의 허약한 기반을 건강하게 바꾸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6개월마다 '모두의 마이크'라는 경연을 주최 중이다. 이런 산들이 더 많아져 래퍼가 자신의 다양성을 살릴 수 있고 공연비·작업비도 지원받을 수 있는 '함께 사는' 힙합 신을 메타는 원한다.

자유롭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울까?

 아이겐벡터 중심성(Eigenvector centrality) 분석 결과. 참고로 다양한 랩퍼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순위 중복을 피해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YG 하이그라운드 수장 타블로(0.049)도 이 수치가 높았다. 이는 도끼(0.047)보다도 높은 수치다.

아이겐벡터 중심성(Eigenvector centrality) 분석 결과. 참고로 다양한 랩퍼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순위 중복을 피해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YG 하이그라운드 수장 타블로(0.049)도 이 수치가 높았다. 이는 도끼(0.047)보다도 높은 수치다. ⓒ 하지율


'자유로움'은 컴퓨터가 계산한 '아이겐벡터 중심성'을 뜻한다. 이 값이 1에 가까운 래퍼는, 다른 래퍼들과 다양하고 두꺼운 음악적 교류를 하는 래퍼다. 교류 상대자도 영향력 있는 래퍼라면 더욱 1에 가까워진다. 이런 래퍼들은 교류의 폭이 넓은 만큼 선택의 폭도 자유로워 다른 래퍼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의존해도 되므로 관계망에서 큰 영향력이 있다.

분석 결과, 일리네어 레코즈 공동 수장 더 콰이엇(0.054)과 도끼(0.047) 그리고 저스트뮤직 수장 스윙스(0.047)와 중견 멤버 바스코(0.052)가 높게 나왔다. 더 콰이엇과 도끼의 음악적 관계가 두텁다는 사실은 힙합 신에서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고, 실제로 <쇼미3> 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둘 다 평소에 다양한 래퍼와 피처링 관계를 두텁게 쌓아왔다. 

흥미로운 건 도끼가 SNS 등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SNS에 통장 잔액이나 값비싼 시계 사진을 찍어 올리는 등외 자주 '돈 자랑'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중의 속물성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 '자수성가한 걸 자랑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 등 옹호와 비판의 논란이 동시에 따라다녔다. 이후 도끼는 엠넷 <4가지쇼>에 출연해 69평 주택과 진열대에 쌓인 5만 원권 뭉치 등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돈은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사실 돈을 잘 쓰지 않으며, 나는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연인즉슨 어릴 때 컨테이너에서 살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음악으로 떳떳하게 성공했다는 거다. 돈 자랑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도끼도 (떳떳하게)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끼 자신은 이렇게 돈뭉치를 일종의 '부하'거느리듯 하는 걸 자랑한다. 마침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해소하는 걸까? 물론 도끼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이런 행동이 대중에게 섣부른 '노오력 판타지'를 심어, 불과 0.5%의 희박한 수의 래퍼만 성공하는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보는 눈을 멀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특히 도끼는 5월 <쇼미5>에도 더 콰이엇과 함께 다시 프로듀서로 참여할 예정이다. 힙합 신에서 그의 영향력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도끼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다. '구조적으로' 극소수만이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쇼미 신은, 과연 '진정으로' 자유로운 힙합 신일까.

덧붙이는 글 이번 분석은 쇼미 신의 랩적인 면에 초점을 둔 조사이므로, 힙합 신 전체의 음악적 교류나 개인적 친밀감과 일치하지는 않는 한계가 있다. 가령 모두 <쇼미>에 출연한 바 있는 MC스나이퍼와 아웃사이더는 과거 같은 소속사였고 음악적 교류를 해서 관계망이 두터운 결과가 나왔지만, 둘 사이에 소송전이 비화돼 현재는 거의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관계 단절 상태다. 앞으로 더 많은 뮤지션들을 작사&작곡 관계까지 데이터로 반영하면, 더 풍부한 관계망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쇼미더머니 메타 도끼 스윙스 타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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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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