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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바닷물을 수돗물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급할 예정입니다.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11km 떨어진 곳에서 취수한 바닷물로 만드는 수돗물이 안전한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기장읍·장안읍·일광면' 등 일부 지역에만 공급하기로 일방적으로 발표한 부산시와 기장군에 우리 주민들은 분노합니다.
▲ 고리원자력발전소 부산시가 바닷물을 수돗물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급할 예정입니다.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11km 떨어진 곳에서 취수한 바닷물로 만드는 수돗물이 안전한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기장읍·장안읍·일광면' 등 일부 지역에만 공급하기로 일방적으로 발표한 부산시와 기장군에 우리 주민들은 분노합니다.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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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0일 20시 정각…. '기장 해수담수 공급 찬반 주민투표'가 막을 내렸습니다. 자원봉사 나온 기장의 엄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움과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며 탄식합니다. 3개월이 넘는 동안의 온갖 과정들과 수고들,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휘몰아칩니다.

2014년 11월 어느 날 '부산 기장에 해수담수시설이 완공되어, 다음 달부터 각 가정에 그 물이 수돗물로 공급될 예정이다'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장엔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습니다. 시운전 중인 신3호기를 포함해 현재 7기까지 가동되고 있는 대규모 원전 밀집 지역이죠. 원전에서 방사성 액체 폐기물을 바다로 배출하는데 거기서 불과 11킬로미터 떨어진 바닷물을 취수하여 담수화하여 수돗물로 공급한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절로 인상이 굳어집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거 같네요. 방사능 물이라니….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주민들이 문제 제기와 반대 서명운동을 계속해서 연기되긴 했지만, 부산상수도사업본부는 급기야 2015년 12월 7일 강제 통수를 통보했습니다. 이때부터입니다. 많은 주민이 격분하여 군청과 시청을 찾아가고, 기장의 3개 초등학교는 등교 거부까지 했습니다. 이 일련의 일의 중심에는 바로 저 같은 아이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틀에 걸친 주민투표가 마감되자 울음이 북받친 엄마들이 얼싸안고 울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투표 중간중간에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지팡이 짚고 오시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에, '고생 많지' 하며 손잡아 주는 이웃의 온기에, 지나가는 투표 독려 차량의 노랫소리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 울음 터뜨린 엄마들 이틀에 걸친 주민투표가 마감되자 울음이 북받친 엄마들이 얼싸안고 울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투표 중간중간에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지팡이 짚고 오시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에, '고생 많지' 하며 손잡아 주는 이웃의 온기에, 지나가는 투표 독려 차량의 노랫소리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 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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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잉태한 순간부터 엄마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시는 분을 보면 돌아가고, 채소·과일을 세척할 때 농약이 남아있을까 더 신경을 씁니다. 그 좋아하는 커피도 줄이고, 입덧에 갈증이 나도 끌리는 맥주 한 모금을 못할 정도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든 모유가 잘 나오게 하려고 더 챙겨 먹고 수유를 하며, 젖 빠는 아이의 입이 너무 사랑스러워 눈을 못 떼고 행복해합니다. 비싼 유기농 채소도 과감히 사서 이유식도 만들어 먹이고 했지요.

기막힙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낳고 키우기 위해 애쓰고 정성을 쏟은 우리 아이들에게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을 수도 있는 물을 먹이라네요. 그 물로 음료수를 끓여 마시고, 국으로 요리해 먹고, 채소며 과일 씻고, 매일 갈아입는 옷도 빨고, 하루라도 안 씻으면 땀내 나는 몸도 씻으라네요. 11km 떨어진 인근 원전에선 방사성물질을 바다로 쏟아내 오염 범벅이 되는데, 그 바닷물로 우리 아이들 먹고 마시고 씻고 물장난 치면 세포 변이 일으켜 암도 생기고, 유전자 변이해 나중에 기형아를 낳을 수도 있다는데….

전 너무 무섭습니다. 당장 문제가 안 생기고 5년 뒤, 10년 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이 더 두렵습니다. 물 마시고 바로 배탈이라도 나면 그 물 안 마시면 되지요.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그럭저럭 살아가다 언젠가 비극의 날이 왔을 땐 늦어도 너무 늦지요. 우리 아이들 몸은 이미 방사성 물질에 절어 있을 테니까요.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는 이러한 엄마들, 주민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무시하고 일방적인 해수담수 홍보며 통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5조에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대법원이 '국민이 수돗물의 질을 의심하여 수돗물을 마시기를 꺼린다면 국가로서는 수돗물의 질을 개선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와 같은 의심이 제거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만일 수돗물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나 의심이 단시일 내에 해소되기 어렵다면 국민으로 하여금 다른 음료수를 선택하여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다'라고 판결한 바 있음에도 행정은 개의치 않습니다(대법원 1994.3.8, 선고, 92누1728, 판결).

3월 20일 투표 이튿날, 수질검증연합위원회에서 기장제3투표소 10여m 앞에 현수막을 달자 엄마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현수막엔 "효력 없는 주민투표 왜 부추기는가!"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현수막은 결국 투표소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큰길가에 달렸습니다.
▲ 주민투표 '디스' 현수막 3월 20일 투표 이튿날, 수질검증연합위원회에서 기장제3투표소 10여m 앞에 현수막을 달자 엄마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현수막엔 "효력 없는 주민투표 왜 부추기는가!"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현수막은 결국 투표소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큰길가에 달렸습니다.
ⓒ 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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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투표 이튿날, 수질검증연합위원회에서 기장제3투표소 10여m 앞에 현수막을 달자 엄마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현수막엔 "효력 없는 주민투표 왜 부추기는가!"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현수막은 결국 투표소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큰길가에 달렸습니다.
▲ 현수막 vs 현수막 3월 20일 투표 이튿날, 수질검증연합위원회에서 기장제3투표소 10여m 앞에 현수막을 달자 엄마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현수막엔 "효력 없는 주민투표 왜 부추기는가!"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현수막은 결국 투표소에서 200m 이상 떨어진 큰길가에 달렸습니다.
ⓒ 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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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목 터져라 해수담수 반대한다고 소리치고, 한겨울에 거리로 나가 추워서 동동거리며 피켓 들고 선전전을 하고, 촛불집회하며 눈물로 호소해도 일부 주민들의 기우라고만 싸잡아 버립니다. 우리를 지역 갈등 일으키고 혹세무민하는 문제아 취급을 하네요.

우린 더 이상 우리의 우려와 주장을 일부 주민의 것이라고 묵살하는 당국의 독단을 좌시할 수 없어서 '주민투표'라는 의사표시를 하겠노라 결정했습니다. 기장군의회 의원들도 지난해 12월 18일 만장일치로 주민투표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2월 22일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발족했으나 부산시와 기장군이 주민투표를 거부해서 행정의 어떠한 지원과 협력도 없이 우리 엄마들,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주민투표 준비를 합니다.

먼저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인명부 작성 작업에 들어갑니다. 군에서 전혀 협력이 없는 민간 주도 주민투표이다 보니 선거인 명부가 없습니다. 인명부를 확보하기 위해 엄마들이 낮이고 밤이고 가가호호 방문하기도 하고, 아파트 입구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서명대 테이블을 펼치고 오가는 분들께 인명부 작성 동의 서명을 받습니다.

먼저 왜 주민투표가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해수담수 계획을 미처 모르시는 분은 일련의 과정까지 알려 드리며 설득하고 인적 사항을 적습니다. 요즘처럼 개인정보 노출이 문제시되는 세상에 기꺼이 적어 주시는 분이 드뭅니다.

'나쁜 년' 소리에도 멈출 수 없다

때로는 해수담수를 찬성하시는 분의 노여움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기도 합니다. 그분들 우리 면전에 '나쁜 년' 소리며 험한 욕도 마구 하시고,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며 협박도 합니다. '국책 사업이다, 주민투표 해 봐야 소용없다, 괜한 일에 사서 고생한다'고 한심하듯 보시며 혀를 차는 분도 있습니다. 돈 받고 수당 받고 아르바이트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살면서 이렇게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취급을 당해 본 적이 없습니다.

수당 받고 하는 일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아끼고 아껴 살림 살면서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홍보 조끼며 전단지를 맞추고 피켓·홍보물품도 직접 제작하여 활동합니다. 모욕적인 언사에 눈물을 삼키고, 엘리베이터 없이 5~6층 단지를 오르내리면 다리가 퉁퉁 붓고 허리가 뻐근합니다. 손발은 꽁꽁 얼고, 계속되는 설명에 목은 갈라지고 입은 바짝바짝 마릅니다. 그래도 계속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주민투표 참여하여 우리 목소리를 키워야 하니까요. 그래야만 우리 아이에게 위험한 물 못 먹게 막아 건강한 몸과 미래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들이 뛰는 그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TV만 보고 있기도 합니다. 책 읽어 주던 엄마가 집밖에 나가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고 있거든요. 따뜻한 밥과 국 대신에 빵이나 주전부리로 끼니를 때우기도 합니다. 맛있는 요리 해서 밥상 차려 주던 엄마가 그 시간 서명 받으러 밤길을 돌아다니거든요.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하는 일 때문에 지금은 옆에 있어 주지 못하는 얄궂은 현실에 기가 막히고 한숨이 나옵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해수담수 꼭 막아 주세요. 동생이랑 우리끼리 있을 수 있어요." 그 말에 또 옷깃을 여미고 맘을 다잡습니다.

투표소 설치가 끝나고 투표를 하루 남긴 날에도 기장군은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내 투표소를 강제 철거하겠다고 했습니다다. 투표소로 쓰일 천막을 투표 전날인 3월 18일 늦은 밤까지 엄마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전깃불이 없는 천막이 많았습니다.
▲ 투표소를 지키는 엄마들 투표소 설치가 끝나고 투표를 하루 남긴 날에도 기장군은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내 투표소를 강제 철거하겠다고 했습니다다. 투표소로 쓰일 천막을 투표 전날인 3월 18일 늦은 밤까지 엄마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전깃불이 없는 천막이 많았습니다.
ⓒ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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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장의 온 지역을 돌며 거주자들의 서명을 받아 인명부작성을 하니 또 다른 일이 기다립니다. 각 세대에 투표 안내문을 발송해야 하네요. 약 3만 2,000부의 우편물 봉인·발송 작업을 이틀 만에 처리하고 온 기장 거리의 벽과 전봇대에 투표 안내 전단지를 붙입니다. 아파트나 빌라 입구에 주민투표 공고문을 붙이고, 각 집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습니다. 어촌마을도 찾아가서 바닷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전단지 붙이고 설명해 드립니다. 때론 시장에서 마이크 잡고 주민투표 참여하자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엄마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참 한정적입니다. 어느 분은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오후에 일 하러 가기 전 몇 시간을 활용합니다. 또 어떤 분은 온종일 일하시니 저녁 시간을 이용하십니다. 그렇게 업무 분담해 가며, 한 명 아파 누워 있으면 다른 한 명이 좀 더 부담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합니다. 같은 엄마의 마음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겠지요.

투표 장소를 정하는 데도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섭외하여 투표 장소로 공고까지 나간 학교들이 갑자기 취소하여 부랴부랴 다른 곳을 물색합니다. 어디에선가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급기야 투표 하루를 앞두고 군청에서 계고장이 날아옵니다. 공원에 설치한 투표 현수막을 철거하랍니다. 엄마들은 비오는 날 난로와 전깃불도 없이 투표소로 설치한 천막을 지킵니다. 삼삼오오 모여 추위에 벌벌 떨며 서러움과 분노에 퀭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핍니다. 밤이 되면 아빠들이 그 임무를 넘겨받습니다. 온 가족 모여 앉아 따뜻한 밥 먹기도 힘들 만큼 상황이 힘들게 돌아갑니다.

하루하루 주민투표 날짜가 다가옵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네요. 제 40년 평생 이토록 가슴 떨리는 투표가 있었나 싶습니다. 아, 투표 날 전날 밤. 잠이 안 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가서 하루 온종일 투표 자원 봉사를 해야 하는데, 푹 자둬야 하는데 잠이 안 옵니다. 하루 종일 투표소 지키느라 동분서주해서 몸은 너무 피곤한데 정신은 말똥말똥합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겠지요.

3월 19일 7시 주민투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엄마들과 각처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투표사무원과 안내원을 맡았습니다. 사진은 투표소 개소 전 공정한 선거 운영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 투표 선서 3월 19일 7시 주민투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엄마들과 각처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투표사무원과 안내원을 맡았습니다. 사진은 투표소 개소 전 공정한 선거 운영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 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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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7시 주민투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엄마들과 각처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투표사무원과 안내원을 맡았습니다. 사진은 투표소 개소 전 공정한 선거 운영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 기장읍제3투표소 3월 19일 7시 주민투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엄마들과 각처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투표사무원과 안내원을 맡았습니다. 사진은 투표소 개소 전 공정한 선거 운영을 다짐하는 선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 정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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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결과, 군민의 압도적 '반대'

2016년 3월 19일 아침 7시, 드디어 주민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19일 20일, 이날만을 기다렸던 엄마들은 또다시 소리칩니다. "어르신, 주민투표 하셨습니까?", "주민투표 참여해 주세요!" 투표소 주위를 그냥 지나치는 분이 안타까워 일일이 여쭈어 봅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 투표하러 저기서 오시면 너무나 고마워 쫓아가서 부축해 드리고 짐을 들어 드리며 모시고 옵니다. 투표소를 잘못 알고 오시는 분들이 투표를 못하실까 봐 직접 운전하여 차량으로 해당 투표소로 모셔다 드립니다. 신분증 안 가져 오신 분들이 귀찮아서 다시 안 오실까 염려되어 역시 차량으로 모셔다 드립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갑니다.

2016년 3월 20일 20시. 주민투표는 끝이 나고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엄마들의 눈물을 또 다른 엄마가 닦아 줍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과정이 끝이 나네요. 아이 엄마라는 큰 축복에 따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를 기꺼이 다 껴안고 이끌어 온 시간이었습니다.

투표를 끝내고 나니 효력이 없다고들 합니다. 투표율이 33.3%가 안 되어서 그렇다고요? 투표율이 50%가 된다고 한들 국가 사무다, 불법이다, 이런저런 논리로 무효라고 할 겁니다. 중요한 건, 이번에 주민의 뜻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총 투표자 16,014명, 총 유권자 59,931명 대비 26.7%의 투표율에, 반대가 89.3%(14,308명), 찬성이 10.2%(1,636명)였습니다. 해수담수 공급 반대가 압도적입니다. 행정의 협조 없이 진행했는데 이런 투표율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대표 수는 현 지역일꾼이 받은 득표수에 맞먹습니다.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3곳에서 오규석 기장군수가 얻은 표가 16,954표, 서병수 부산시장이 얻은 표가 17,645표, 하태경 국회의원이 얻은 표가 13,051표입니다. 엄마들은 나름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에 후회 없습니다. 부산시와 기장군이 주민의 뜻을 결과를 수용하길 바랄 뿐입니다.

21일 오전 12시 24분 최종 개표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엄마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 두 손 모은 엄마들 21일 오전 12시 24분 최종 개표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엄마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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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3월 21일 오전 12시 30분경, 주민투표 개표가 끝난 뒤 기장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여 찰칵. 함께 울고 웃고 서로의 등 두드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민투표는 고난이자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 기장의 영웅, 엄마 자정을 넘긴 3월 21일 오전 12시 30분경, 주민투표 개표가 끝난 뒤 기장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여 찰칵. 함께 울고 웃고 서로의 등 두드리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민투표는 고난이자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 기장해수담수공급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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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한 삶에서 이웃과의 연대로

너무 힘들었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성장하고 깨우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힘만으론 해낼 수 없던 것을, 집행부 식구들과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 500여 분 덕분에 해내면서 길게는 몇 달, 짧게는 이틀을 함께 보내며 그들이 내밀어 준 손에 용기를 얻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희망이었습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와 내 가정만을 알고 살아온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투표 후 우리 기장 엄마들이 나눈 얘기로 글을 마칩니다.

"우리도 연대해요. 다른 지역에 일 생기면 이웃 손 잡으러 달려가요."

덧붙이는 글 | 3월 19~20일 열렸던 기장 해수담수 공급 찬반 주민투표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기장읍제3투표소에서 투표사무원으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거기서 이틀 내내 만난 어머니들의 눈물과 외침을 보았습니다. 엄마들이 투표의 주역이었고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한 글은 없었습니다. 해서 한 어머니께 글쓰기를 요청했고 받은 것이 이 글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람이 희망임을 발견한 이번 투표의 엄마의 마음이 잘 전달되길 희망합니다.



태그:#주민투표, #해수담수, #고리원전, #부산,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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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밥하고 매일 빨래하는,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 생명이 존중받는 지속 가능한 세상을 꿈꾸며 화성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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