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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된 정청래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7일째 열리고 있는 '정청래 컷오프 철회와 구명을 위한 무기한 국민 필리버스터'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탈당하지 않고 백의종군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백의종군 선언한 정청래 "힘 합쳐 당 재건하겠다" 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된 정청래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7일째 열리고 있는 '정청래 컷오프 철회와 구명을 위한 무기한 국민 필리버스터'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탈당하지 않고 백의종군 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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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가 나에게 왜 새누리당은 항상 승리하는데 반해, 왜 민주당은 항상 패배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당을 우선하고 존중하는데 반해, 민주당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에 대한 경멸을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야당 정치인이 정치적 성공을 위해 야당 혐오를 이용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야당에 대한 공격을 통해 야당에서의 입지를 얻으려는 사람들, 정치 혐오를 정치적 성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자신이 소속된 정당을 공격함으로써 권력의지를 다지는 사람들, 그런 야당 정치인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정치 행태가 야당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경멸의 대상'이 된 야당에서 볼 수 없었던 선당후사

그러나 이번에 정청래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였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 침묵해 오던 정청래 의원은 3월 16일 저녁 "당을 지키겠습니다. 당을 살리겠습니다. 우리 당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겠습니다"라며 당 잔류 및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다.

나아가 정청래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지지자들에게 당부했다. "우리는 지금 총선 전쟁 중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이 분을 모신 것도 우리의 책임이고 잘났든 못났든 현재는 우리의 당대표입니다. 당대표에 대한 비판은 일단 멈춰주시고 총선승리를 위해 뛰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정청래 의원은 근래 야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모습이었다.

나는 평소 지금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경멸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지금 야당은 언론과 여당뿐만 아니라 소속 국회의원으로부터도 경멸당하고 있다. 소속 국회의원들이 당을 경멸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키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야당이 처한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정청래 의원은 달랐다. 자신을 공천배제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정청래 의원의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야당이 보여준 병폐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이요, 오랜 야당의 병폐를 극복하는 모범이 되는 것이어서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야당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든 3명의 주역, 그들의 무기는 탈당과 분당!

왜 지금 야당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나? 그것은 그동안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해서 신당을 만들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합당을 해온 역사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역사적 장면을 떠올려보자.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인기는 추락할 대로 추락해 정권 재창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택한 전략은 더욱 최악이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들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에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다시 한 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와 분당이 그것이다.

특히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던 사람일수록 노무현 대통령과 차별화하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는 이렇게 회고했다.

"가장 아픈 건 여당 의원들이 보여 준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 …… 대통령과 같이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핵심의 사람들이 더 심하게 했다. 대통령으로선 인간적으로 굉장히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상처가 더 깊었다." (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2011, 363).

민주당의 분당과 지구당 폐지를 주도했던 천정배 의원은 2007년 1월 28일, 임종인·이계안·최재천 의원에 이어 4번째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4명의 의원들은 모두 천정배계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이다. 이어 2월 6일에는 김한길 의원 등 23명의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을 집단 탈당했는데, 이 가운데 다수는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5월 7일 김한길 의원을 당대표로 하는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

이처럼 천정배, 김한길, 정동영 등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들은 이후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걸핏하면 '새 정치' 또는 '통합'을 내걸고 탈당과 분당을 반복했다. 그 결과 이후 민주당은 민주·진보의 중심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민주당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 그 누구도 민주당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민주당의 중심성은 해체되고, 당은 무력화되었으며, 민주 진보 진영의 분열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은 해보나마나였다.

반면, 보수 진영은 서러운 야당 생활 10년 동안 온갖 정치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한나라당이라는 단일 정당을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군사독재의 시녀에 불과했던 부끄럽고 형편없는 역사를 가진 한나라당을 보수의 중심으로 확고히 세웠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이명박은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었다.

정청래 백의종군의 의미 : 정권교체 위해 믿을 것은 정당밖에 없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공동대표, 정동영 전 의원, 천정배 공동대표, 김한길 의원이 회의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공동대표, 정동영 전 의원, 천정배 공동대표, 김한길 의원이 회의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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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라고 했던가? 2016년 탈당과 분당이 재현되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2007년으로부터 9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3명의 정치인이었다. 천정배 의원, 정동영 전 의원, 김한길 의원,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3명에 더해서 이번에는 안철수 의원이 함께했다.

이들은 탈당 후 호남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호남의 한을 풀어드리겠다"고 하고, 정동영 전 의원은 "고향 전주는 친노 패권주의에 저항하다가 실패하고 좌절해 만신창이가 된 저를 따뜻하게 맞아줬다"고 노골적으로 호남을 호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호남을 호명하는 방식은 잘못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진보, 평화의 가치를 호남 사람들과 결합시켰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겨준 민주ㆍ진보ㆍ평화의 가치는 훼손시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겨진 육신과도 같은 민주당을 분열시키면서, 단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호남 유권자만을 탐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했던 잘못된 역사에 의해 지금 야당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 주역은 2003년 이후 15년 가까이 항상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 그리고 김한길 의원 등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온갖 명분과 핑계를 내걸었지만 그들이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했던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멸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들은 정치적 이득을 얻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남는 것은 결국 야당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멸의 대상, 믿을 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야당으로 정권교체를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강한 야당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야당 혐오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정당은 결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청래 의원이 보여준 태도, 특히 자신을 공천배제한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행위는 그동안 야당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감동적인 자세다. 또한 야당의 오랜 병폐를 극복하는 모범이 될 수 있는 숭고한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유창오 기자는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정치의 귀환 : 야당, 갈등을 지배하라!>(폴리테이아)라는 책을 냈습니다.



태그:#정청래, #김종인, #백의종군,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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