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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구자들은 자신들이 마련한 돈으로 매장을 시작하는 모범을 세웠다.
2. 가장 순정한 식료품을 공급한다.
3. 물품의 양이나 무게를 속이지 않는다.
4. 시가로 판매한다. 즉, 상인보다 싸게 팔거나 상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5. 외상은 없다. 노동자가 빚을 지게 하지 않는다.
6. 이윤은 이용액에 비례하여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이윤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7. 조합원들에게 조합의 이윤 은행에 저축하도록 하고, 그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친다.
8. 출자금에 대한 이자는 5%로 고정한다.
9. 공장에서는 이윤생산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임금에 비례하여 이윤을 배당한다.
10. 이윤의 2.5%를 교육에 쓴다.
11. 모든 선거나 제안을 할 때 조합원 모두 민주적 투표권(1인1표)를 갖는다. 여성들도 미혼, 기혼을 불문하고 투표권과 저축할 권리를 갖는다.
12. 범죄와 경쟁이 없는 산업도시를 만들어 협동조합의 상공업을 발전시킨다.
13. 도매구매조합의 중요성을 인지한다.
14. 조합은 자조의 정신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덕과 능력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의 기초조직으로 존재한다.(328) 

이상은 지금으로부터 172년 전인 1844년, 영국 북동부 랭커셔 주의 중심도시, 로치데일에서 출범한 협동조합의 14가지 주요 특징을 소개한 것이다. 이 조합의 공식 명칭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이다.

외상을 금지하라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표지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표지
ⓒ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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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로치데일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돈도 땅도 없는 이들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더욱이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먹을거리마저 동이 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뜻밖에도 자신들이 직접 자본가이자 상인이며 소비자가 되기로 작정한다. 매주 2펜스씩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플란넬 공장 직공들이었던 이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운동에 실패한 상태였다.

이들이 공정선구자협동조합을 개업하면서 처음 시도한 것은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었다. 최초의 조합원들은 외상거래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외상거래를 없애면 상거래는 보다 단순하고 공정해질 뿐더러 사회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배웠고, 이를 신념으로 삼았기"(67) 때문에 우선적으로 외상을 근절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의 신용카드 또한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양질의 경제생활을 위해서 경제전문가들이 직불카드 사용을 권하는 이유다. 수입으로 외상값을 갚고 다시 외상을 지면서 사는 것은 자주적 삶에 위배된다. 외상, 즉 신용카드는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고 원금에 이자까지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1844년 최초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시작한 공정선구자협동조합은 순정한 품질, 적정한 양, 정직한 눈금, 공정한 취급, 정직한 판매 등의 모토를 기반으로 이윤보다는 거래를 도덕적으로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조합은 제분소(밀가루공장) 설립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때 위기를 맞는다.

순정한 밀가루, 즉 그해 수확한 밀만을 원료로 한 밀가루는 '누런'색을 띠게 되는데, 화학적 공정을 거친 흰색 밀가루에 익숙해져 있던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됐던 것이다. 설상가상, 구매를 맡은 조합원이 거리가 더 멀고 가격도 비싼 밀을 구입하는 비리를 저지른 사건도 발생한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약이 됐고, 도덕적인 거래와 순정한 원료 사용은 조합이 추구하는 공정성에 부합하는 것이었기에 결국, 시간은 조합의 편이 돼 주었다.  

교육의 위대한 힘, 노동자를 혁명가로!

로치데일협동조합의 명예를 높인 것은 순 이윤의 2.5%를 조합원 교육에 투자한 것이다. 조합의 매장에 도서관을 만들어 독서와 신문 열람을 가능하게 했다. 무지와 가난은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쌍두마차였기 때문이다. 지식과 양식을 늘려 지혜를 확보한다면 저축의 힘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또, 굳건한 협동과 인내가 밝은 미래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교육을 통한 끊임없는 기록, 높은 도덕성, 공정성,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고양된 로치데일협동조합원들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면화생산을 못하게 되자 면화수입이 어려워진 랭커셔의 공장 가동이 어려워지게 된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실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교육을 통해 현명해진 노동자들은 전쟁의 원인이었던 노예제 폐지에 공감하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조합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

또한 조합원들은 조직의 내부에서 발생한 오류, 허위 그리고 편견으로 가득찬 아웃사이더들과 거짓 선전을 일삼은 외부의 자본가, 상인 또는 언론인들의 조합 붕괴 책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힘을 갖게 됐다고 한다. 눈여겨 볼 점은 당시 영국의 노동자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위정자들은 노동자들이 무지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선거권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악(惡)의 순환이다.

170여 년 전 자는 시간을 뺀 전부를 노동에 헌신했던 산업혁명기의 노동자들은 객관적으로 희망없는 삶의 주인공들이었다. 결정된 사회에서 주는 것만 받고 시키는 일을 하며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치데일노동자들은 '이건 아니다'라며 들고 일어섰다. 스스로 자신들의 소비와 소비를 위한 생산을 책임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됐다. 2년도 채 안 된 2014년 9월 현재, 전국에 56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다고 한다. 협동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려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왠지 책 속의 172년 전 영국노동자들의 삶과 겹쳐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조지제이콥 홀리요크 지음, 정광민 옮김, 그물코, 2014년 6월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 역사와 사람들

조지 제이콥 홀리요크 지음, 정광민 옮김, 그물코(2013)


태그:#협동조합, #로치데일공정선구자, #외상, #현금거래,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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