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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것. 요즘 들어 점점 '계속 존재하는 것'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뀌는 것이 많다 보니 어린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불과 몇 년전까지만에도 있었던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그때를 같이 보낸 사람들의 모습까지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우리에게 '망각'을 강요하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요즘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곳을 더 자주 찾게 됩니다.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과거의 시간이 다시 살아다가온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릅니다.

10여년의 추억이 담긴 포장마차. 우동 맛이 좋아요
 10여년의 추억이 담긴 포장마차. 우동 맛이 좋아요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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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먹고 생각하고 다시 써라'를 통해 소개된 이야기들도 어찌 보면 '계속 존재하는 곳'에 대한 기쁨이 담겨있습니다. 신촌에서 40년을 버티고 있는 '최루탄 해장라면'이 그랬고 종로 광장시장에 가면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 '이모님'을 보는 즐거움이 있죠.

30여 년을 버티고 있는 을지로 노가리집, 2년 전 칼럼 초창기에 소개한,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고 지금도 버티고 있는 석관동 숙성 노가리집 등은 여전히 존재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여기,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신촌 골목에 있는 포장마차입니다. 포장마차촌이 아닌, 골목에 딱 하나 있는 신촌의 포장마차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에도 여전히 술과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유혹합니다.

친구 손에 이끌려 온 지 벌써 10년...

10여년 전 친구와 먹은 오징어 데침과 국물
 10여년 전 친구와 먹은 오징어 데침과 국물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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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역 그랜드마트를 낀 골목으로 들어가면 포장마차 하나가 서 있습니다. 딱 우리가 알고 있는 '포장마차'의 모습입니다.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훈훈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10여 년 전, 저보다 더 술을 좋아하는 제 친구가 '잘 아는 곳이 있다'며 저를 데려간 곳이 이 포장마차입니다. 사장님과 잘 아는 사이라고 아주 거드름(?)을 피우더군요. 데친 오징어와 맛있는 국물 그리고 소주를 마셨던 게 이 포장마차와 저의 첫 만남입니다.

그리고 한 2~3년여간 그 포장마차는 저와 친구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제 막 기자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었고 그 친구 역시 언론밥을 먹고 있었지요. 하지만 막 신입이었던 저는 박봉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했고 그 친구는 활동비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되죠. 그때 전화가 옵니다. "신촌에서 보자." 포장마차에 가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포장마차는 항상 그 자리에 딱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땐 왜 그리 세상에 불만이 많았을까요? 그리고 왜 그 땐 서로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었을까요? 유쾌하게 시작하던 술자리는 간혹 심각한 토론이 되기도 했고 종내에는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서로 잘해보자는 식으로, 훈훈한(?) 마무리로 끝나곤 했죠.

얼핏 단출해 보이지만 국물의 맛이 정말 시원합니다
 얼핏 단출해 보이지만 국물의 맛이 정말 시원합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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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여유를 줬던 신촌의 포장마차.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신촌에 올 일이 드물어지면서 이곳을 오는 경우가 없어졌습니다. 어쩌다 신촌에 오는 날에는 포장마차가 설치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없어졌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겨울 그곳에 바로 그 포장마차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마치 죽은 친구가 다시 되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반갑다, 변함없이 신촌 골목에 있어줘서

친구 없이 저 혼자 들어간 포장마차,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싸우면서 먹었던 데친 오징어의 맛도, 국물의 맛도 그대로였습니다. 아니, 추억이 더해지니 맛이 더 좋아졌습니다.

이 포장마차에서 서비스로 주는 국물맛은 정말 일품입니다. 다른 포장마차와는 색다른 맛이 있었지요. 국물에 양념을 치고 김가루를 뿌려 내놓으면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속을 다스립니다. 안주가 나올 때까지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면서 국물을 먹는 맛이 좋지요.

바로 이 국물맛 때문에 이곳 우동이 잘 팔립니다. 술을 마신 이들은 안주를 다 먹어갈 때가 되면 속을 채우기 위해 우동을 말아달라고 주문합니다. 우동 한 그릇 말아먹으면 저절로 해장이 되지요. 그렇게 먹고 나가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냅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위치도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신촌 포장마차.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라는 구상 선생의 싯구처럼 그렇게 오랜 기간 변함없이 신촌 골목을 지켜줬다는 것 자체가 그저 반갑고 고맙고 기뻤습니다.

시원한 우동 한 그릇 말아먹는 맛이 이 포장마차의 즐거움입니다
 시원한 우동 한 그릇 말아먹는 맛이 이 포장마차의 즐거움입니다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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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도 많이 변했습니다. 한때 백화점이었던 그랜드마트 건물도 달라졌고 신촌시장 골목은 모두 없어진 채 길이 됐습니다. 포장마차 앞은 이제 '번쩍번쩍한' 새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종종 양념게장을 먹으러 갔던 식당이 있는 건물도 언제부터인가 뼈대만 남았습니다. 변해갑니다. 그렇게 변해갑니다.

그래서 더욱 그 포장마차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려야 했던 초보 기자 시절의 추억이 눈앞에 있으니까요. 오래오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포장마차, #신촌, #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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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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