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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뉴얼 시행 전후 개선되는 주요 내용 .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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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교육부는 미취학 아동과 무단결석 학생의 소재와 안전 확인, 학교 복귀 지원 등 체계적 관리를 위한 '미취학 및 무단결석 등 관리·대응 매뉴얼(아래 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초등학생인 아들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체를 훼손한 '부천 초등생 토막사건',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방치된 '부천 여중생 학대 사망' 사건, 어머니의 폭행으로 숨진 후 유기된 '용인 암매장 여아' 사건 등 최근 잇따르는 아동 학대와 무단결석 학생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동 학대의 80% 이상이 가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에서 교육 당국이 아동 보호에 한 걸음 더 나서겠다는 것이므로 교육부와 학교가 학생의 안전을 위해 관련 매뉴얼을 정비하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안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더욱 안전한 삶을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무단결석과 관련해 교육부가 뭘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단결석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조치의 선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응 매뉴얼에서 '무단결석 당일부터 매일 유선 연락을 하고 3일째부터는 학생의 소재나 안전을 확인할 수 없으면 즉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도록 했다. 이것이 좀 '웃픈' 대목이다.

정작 학교에선 '무단결석'이 처벌과 징계의 근거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자율과 협력 속에 새로운 교육의 가치와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유명한 학교들도 이것만큼은 다른 학교들과 다를 게 없다.
▲ 어느 혁신학교의 결석 관련 징계 규정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자율과 협력 속에 새로운 교육의 가치와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유명한 학교들도 이것만큼은 다른 학교들과 다를 게 없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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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무단결석은 학생의 보호와 치유 혹은 돌봄이나 배려가 필요한 원인 행위로 간주하지 않는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그런 학교는 한 곳도 없다. 이는 학교들의 아주 오래된 습성이며 규칙이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무단결석은 내신 성적 감점과 징계의 근거이다.

심지어 "정당한 이유없이 결석이 잦은 자"를 고등학교 과정에서 퇴학이라는 죄명으로 학교에서 내쫓을 수도 있도록 법률(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로 정해 놓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이므로 퇴학은 불가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의 징계를 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중고교들은 무단결석과 관련해 결석한 날짜에 따라 학생들을 단계적으로 징계·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훈계-학교 내 봉사-사회 봉사-특별교육이수-출석정지-퇴학'에 이르는 단계별로 징계를 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규정을 적용해 많은 학생들이 징계를 받았거나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자율과 협력 속에 새로운 교육의 가치와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유명한 학교들도 이것만큼은 다른 학교들과 다를 게 없다. 무단결석은 곧 징계의 다른 이름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기로 하자. 교육부가 제시한 대로 3일 이상 무단결석한 학생이 있다. 학생이 가출했다고 한 것은 부모의 말이고 가출한 학생은 연락이 안 닿는다. 그렇다면 3일을 기준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학생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소홀히 하면 사고가 생겼을 경우 세간의 비난과 책임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는 적극적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할 것이다.

경찰이 바로 학생을 찾았고 무사히 학생은 가정과 학교로 돌아왔다. 그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는데 현실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순한 가출로 인한 무단결석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돌아왔기 때문에 가출과 무단결석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규정이 그렇다.

무단결석 학생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내용을 담은 학교 규정 같은 건 아무 데도 없다. 가출과 무단결석의 원인이 된 학생의 마음을 살피거나 다른 상황을 돌아보고 안정적으로 가정과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따위는 없다.

그나마 마음 넓은 담임교사를 만난다면 가벼운 징계를 피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지만 다시 또 가출과 무단결석을 하면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엄포 아래 문제아 낙인과 함께 징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게 현실이다. 무단결석에 따른 출결 사항에서 내신 성적 불이익을 받는 이중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무단결석으로 대한민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실제상황이다.

결석생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규정 만들어야

아래는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11개월 여 동안 시체 상태로 방치됐던 부천 여중생 학대 사망 사건의 주인공도 만일 살아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학교로 돌아갔다면 “‘계속하여 15일 이상 무단결석한 자’에게 출석정지 징계를 명할 수 있다”는 그 학교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 한 중학교의 결석 관련 징계 기준표(위)와 부천 미라 여중생 사건 피해 학생의 학교 규정 아래는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11개월 여 동안 시체 상태로 방치됐던 부천 여중생 학대 사망 사건의 주인공도 만일 살아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학교로 돌아갔다면 “‘계속하여 15일 이상 무단결석한 자’에게 출석정지 징계를 명할 수 있다”는 그 학교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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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삼중으로 무단결석 학생을 징계하도록 해놓은 학교 규정은 그대로 둔 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무단결석 학생을 보호하겠다며 내놓은 교육부의 조치가 마뜩잖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학교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결석 행위를 문제행동으로만 다루고 결석한 학생을 문제아로 취급하는 시스템이 여전한 상태에서 교육부의 대응 매뉴얼은 일거리만 만드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무단결석을 징계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한 학교들의 규정부터 없애도록 하는 게 교육부가 먼저 할 일이다. 그 없앤 자리에 결석생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규정을 새로 만들어 넣도록 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무단결석은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수단으로서 학생을 통제·관리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다. 학교 안에서는 무단결석이 징계의 수단이 되고, 학교 밖에서는 돌봄과 관리의 대상이 되는 코미디가 반복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부천 여중생 학대사망 사건의 피해자 학생도, 만일 살아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학교로 돌아갔다면 "'계속하여 15일 이상 무단결석한 자'에게 출석정지 징계를 명할 수 있다"는 그 학교 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비극은 학교 안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때 더욱 처참하고 불행하다. 교육부가 진정으로 학생들의 안전과 학교 복귀 지원 등을 생각한다면 학교 안팎에서 따로 노는 이러한 규정들부터 당장 정비하기를 촉구한다.


태그:#아동학대, #무단결석, #매뉴얼, #교육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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