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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지난 두 달간의 정국, 군웅할거(群雄割據)

20대 총선이 이제 약 70일이 남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총선 직전의 정국은 혼란 그 자체이다. 특히나 야권 정국의 혼란은 아주 극심한 상황이다. 작년 중순만 해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20대 총선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대권 지지율 Top 5에 문-안-박이 항상 들어가 있었고, 안희정과 이재명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나 수도권에서는 새누리 전패론이 나올 정도로 정국이 좋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후속탈당한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 구상을 발표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안철수, 탈당파와 신당 창당 선언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후속탈당한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의원과 함께 신당 창당 구상을 발표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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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비주류 측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정당 지지율은 수직낙하 했으며,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에 한동안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으로 변경한 후 개혁적 인사 영입이 계속되었다. 지지율은 상승세로 돌아섰고 현재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을 오차 범위 내외로 이기고 있다.

내부적으로 쟁투가 있다고 할지라도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견고하다. 또한 서울-수도권에서는 1~2% 내외의 싸움이기 때문에 더민주 입장에서 국민의당 후보 존재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의당 의원들의 주장과는 다르지만,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선거연대는 없을 것이라 공언한 상황이다.

여기에 정의당 변수까지 더해진다면, 정국은 총체적으로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양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II. 2016년 더민주의 행보 그리고 1996년 신한국당의 행보

혼란한 정국 속에서 더민주의 행보는 15대 총선의 신한국당과 닮아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많은 비판이 존재할 것이다. 첫째, 신한국당은 민주자유당계 정당이며, 더민주는 민주당계 정당이다.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둘째, 당시 신한국당은 여당이었지만 더민주는 야당이다. 셋째,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승리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민주의 승리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15대 총선의 신한국당과 20대 총선에서의 더민주의 상황을 고찰한다면 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1. 당내 분열과 분당, 다가온 위기

현재 대한민국 정국의 기반을 이루는 3당 합당은 YS의 통일민주당이 소수파로 합류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은 박정희-전두환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당이며, JP의 신민주공화당 역시 이들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S는 특유의 카리스마 정치를 통해 5공 황태자 박철언을 축출하고 대권을 쥐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1월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1990년 7월 당사에 출근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과 손을 맞잡은 모습.
▲ 김영삼, 김종필, 박태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1월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1990년 7월 당사에 출근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김종필, 박태준 최고위원과 손을 맞잡은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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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YS는 JP 축출을 시도한다. JP는 구태정치인으로 몰렸으며, 결국 민자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내각제를 천명하며 1995년 2월 9명의 현직의원들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이들은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의 후신인 신민당과 통합하여 22명의 국회의원이 소속된 제2야당의 지위를 차지한다. 또한 JP의 자민련과 DJ의 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는 공조체제를 구축한다.

1995년 제1회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DJP 연합의 위력이 입증된다. 당시 민자당은 15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5석, 230개 기초단치단체장 중 70석을 얻는 참패를 겪는다. 반면 민주당과 자민련은 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나 민주당은 서울에서 시장과 23개의 구청장, 122명의 시의원을 배출하는 대승을 거둔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었다.

더민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당에 이르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 분열과 갈등 양상은 극심한 상황이었고 재보궐 선거에서 연전 연패를 거듭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수도권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의석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참담한 패배가 예상되고 있었다.

2. 분당 이후 체제정비와 혁신적 영입. 역전의 발판

자민련과의 분당과 1회 지선에서의 패배는 오히려 YS의 리더십 공고화로 이어진다. 자신의 발목을 잡던 정적들이 대개 당 밖으로 나간 상태가 된 것이다. YS는 특유의 정면돌파 전략을 취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자금 문제로 구속했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천명하고 3당 합당의 잔재를 털어내겠다며 당명은 '신한국당'으로 변경한다.

또한 적극적인 영입행보를 보인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해진 홍준표, 진보정치 계의 거목인 이재오와 김문수를 영입했다. 또한 부친의 후광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젊은 정치세대로 주목받던 86세대로 분류되는 남경필, 자신의 계보로 볼 수 있는 김무성에게 공천을 준다. 특히나 이회창 전 의원의 경우 YS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신한국당의 공천은 노태우-YS로 이어지던 군부-보수정권에 대한 불만을 완화시키고, DJ의 정계복귀와 DJP 공조를 통한 야권의 열풍을 약화시키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분당 이후 리더십 공고화와 영입이 불리했던 정국을 타개한 것이다.

최재성 총무본부장,박범계 대전시당위원장,박병석,이상민 의원,시·구의원,구청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사,당원들과 함께 30일 대전 서구 둔산동 누보스타컨벤션에서 열린 더불어 콘서트 '사람의 힘' 행사에 참석해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최재성 총무본부장,박범계 대전시당위원장,박병석,이상민 의원,시·구의원,구청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사,당원들과 함께 30일 대전 서구 둔산동 누보스타컨벤션에서 열린 더불어 콘서트 '사람의 힘' 행사에 참석해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 더불어민주당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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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더민주의 행보 역이 다르지 않다. 안철수 의원을 시작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들은 호남을 중심으로 해서 위협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내부적 균열의 대상이 당 밖으로 나가자 문재인 대표 체제는 오히려 공고해졌다. 이후 문재인 대표 체제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하고, 신선한 인물들을 대거 영입했다.

최근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더민주는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민의당과 격차를 점점 벌리는 추세이다. 더민주는 분열과 분당이 만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것이다.

III. 15대 총선 결과, 20대 총선 결과, 그리고 '대선'

1. 신한국당과 더민주, '위기를 기회로'

15대 총선 결과는 신한국당 139석, 국민회의 79석, 자민련 50석, 민주당 15석이었다. 야권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신한국당의 승리였다. 선거결과에 큰 격차가 없었지만 무소속 의원 12명과 민주당 일부를 흡수하여 신한국당은 과반 의석을 사수했다. 특히나 DJ가 초강세를 보이던 서울에서 신한국당은 47석 중 27석을 획득한다. 당시 국민회의는 18석만을 차지했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현재 더민주의 기세가 좋다고 할지라도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가 과반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보는 유권자는 거의 전무하다. 또한 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영남에서의 절대적 신한국당 지지세는 2016년의 더민주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즉, 15대 총선의 신한국당과 20대 총선에서의 더민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존재한 여지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비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차이점이 만들어 낼 다른 결과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이제부터 주목해야 할 부분은 15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서의 차이점이 만들어 낼 총선 이후의 '대선'이다.

2. 총선이 대권에 남긴 것, '주연' 경력

신한국당은 총선 이후 이회창 대권 체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있듯이 1997년 15대 대선에서 이회창은 DJ에게 패배한다. 물론 YS가 사실상 DJ를 지원했으며, 이인제 당시 후보의 여권 분열이 존재했다는 점이 주요했다. 그러나 이회창 당시 후보가 무언가가 부족했다는 사실이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YS의 눈치를 보지 않던 모습과 청렴한 모습으로 국민적 신망은 얻었지만 국민들을 휘어잡을 '무언가'가 없었다.

대권에서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비범함, 즉 카리스마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회창에게는 그 카리스마가 없었다. 15대 총선에서 당을 개혁하고, 국민을 감동시킨 주연은 YS였다. 당명 개정과 혁신 영입 및 공천도 모두 YS의 작품으로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이회창은 조연 중 역할이 큰, 주조연에 불과했다.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무현이라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휘광을 얻고는 있었지만, 자체적 카리스마를 구축하지 못했었다(관련 기사 : '문재인 대권론의 '로도스'가 될 4월 총선'). 결국 한국 정치의 양대 카리스마인 박정희-노무현 카리스마의 후계자들은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결에서, 자체적 카리스마를 추가적으로 형성한 박근혜가 승리하게 된 것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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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간 더민주의 혁신 행보의 주연은 문재인이었다.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성공의 주연은 YS였지만, YS는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조연이였던 이회창이 대권 주자가 된 것이었다. 반면 더민주의 혁신 행보 주연은 문재인이다. 그리고 그는 대선 출마가 가능한 잠룡이다. 과거 그에게 부재했던 카리스마 입증의 기회가 이번 20대 총선이었으며, 현재까지는 꽤나 성공적이다.

결과적으로 더민주의 분열-분당-체제정비-혁신-영입&공천 과정에서의 지지율 회복은 15대의 신한국당과 분명 닮아있다. 그러나 15대 총선에서의 신한국당만큼 더민주가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은 지나친 낙관주의이다. 정국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96년의 신한국당과 2016년의 더민주의 차이점은 총선 이후의 정국에서의 차이점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이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가 될 것은 매우 자명한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심지연의 '한국 정당정치사'와 한국 선거학회의 '선거 60년. 이론과 실제'의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태그:#15대총선, #20대총선, #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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