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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제대로 된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다. 옷가게, 신발가게, 커피전문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나 버는 게 고작이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언제까지 부모님께 생활을 의지해야 할까, 죄송스럽지만 다른 방도가 없는 게 현실이다.

막막함이 날로 커지는 그때 생활정보지의 '텔레마케터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입사는 어렵지 않았다. 종일 서서 손님을 응대하는 일보다 몸이 편했다. 하지만 일 년을 못 채우고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매일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며 통신상품을 판매하는 일은 6개월이 넘어가니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적어도 다른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콜센터로 옮겨갔다. 노동조합이 있어 근무환경이 더 나을 거라는, 선배의 귀띔 덕이었다.

지난 2009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20다산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20다산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전화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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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책상엔 김밥 한 줄이 놓인다. 점심식사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 콜을 받아야 한다. 5개의 하도급 업체가 들어와 있는 센터다 보니 업체 간 경쟁이 장난이 아니다. 최대한 많은 콜을 받기 위해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수화기를 든다.

민원이다. 욕부터 날아든다. 내가 잘못해서 나에게 욕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 직원으로 앉아있으니 욕을 들어 마땅하단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 나에게 욕을 하는 게 당연하다니, 알 수 없는 논리다. 20여 분에 걸친 진땀 나는 통화를 끝내고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또다시 수화기를 든다. 이번에도 민원이다. 낭패다. 하루 90~110개의 콜을 채우려면 한 시간에 10~12콜은 받아야 하는데 연달아 민원전화라니, 버리는 날이다. '죄송합니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겠다.

벌써 9년이다. 오래 근무했다고 해서 절대 편해질 리 없는 일이다. 뱃속의 둘째와 지난해 집을 장만하면서 받은 대출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300여 명의 직원 중 5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고작 20명. 그간 수많은 동료가 '비전이 안 보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근속수당은 7년이 넘어가면 더는 오르지 않는다. 욕심 좀 부리면 강사도 될 수 있겠지만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이른 출근 시간과 잦은 야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한 후 힘든 시간을 보낼 즈음, 매체에서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도 정신과 의사를 초빙해 '힐링'을 주제로 상담을 진행했다. 내가 1호 상담자가 되었다. 돌아오는 이야기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 '운동을 해라' 등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빤한 것들이었다. 상담프로그램은 얼마 가지 못해 막을 내렸다.

대외기관 평가가 시작되었다. 이 평가에 따라 센터 전체의 등급이 달라지다 보니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교육강사와 센터장은 '야광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며 평가 콜이 들어오면 '깃발'을 올린다. 10초 이상 대기해서도, 잡음이 나서도, 버벅거려서도 안 된다. 깃발이 올라가면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해진다.

평가지침은 때때로 달라진다. 어느 때는 1분 안에 '네'를 5번 이상 말해야 하고, 또 어느 때는 한 콜에 '우리 고객님'을 2번 이상 말해야 한다. 최근에는 고객의 이야기가 끝나면 '아, 그러세요'를 꼭 붙여야 한다. 혹시라도 깜박하면 바로 감점이다.

사물 존칭을 해서도 안 된다. 국어 문법과 관련된 지침은 특히나 어렵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카드번호가 어떻게 되세요?'와 같이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너무나 익숙하지만 문법적으로는 부적절한 문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평가 기준을 누가, 무슨 근거로 만드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평가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꼬이는 것도 감점 기준이라니,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완벽한 100점을 요구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현대사회의 단면 '감정노동'

지난 2015년 10월 13일,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730개 직업 종사자 2만5천550명의 감정노동 강도를 비교·분석한 결과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직업이 '텔레마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기분에 맞추거나 기업에서 요구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해야 하는 근로 행위를 말한다.

'감정노동'이란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캘리포니아 주립대)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1983년 발간한 <관리된 심장 : 인간 감정의 상품화>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감정노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1세기에 들어 시작되었다.

고용정보원은 직업별 감정노동 강도를 알아보기 위해 ▲ 전화·대면·전자메일 등 대인 접촉 빈도 ▲ 외부 고객 또는 민원인 대응의 중요도 ▲ 불쾌하거나 화난 사람을 대하는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분석 결과 텔레마케터에 이어 호텔관리자, 네일아티스트, 중독치료사, 창업컨설턴트, 주유원, 항공권 발권 사무원, 노점·이동판매원 등이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고용정보원 박상현 연구위원은 "서비스 관련 직업군의 비중이 커지면서 '고객 만족'이라는 문화가 만들어 낸 그늘이 감정노동"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웃는 낯으로 고객을 대해야만 하는 감정노동 직업인을 위한 관심과 배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콜센터 산업의 메카 대전, 상담사 74.4%가 비정규직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14년 2월 5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다산콜센터 인권개선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문 위원장은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근본원인은 민간위탁에 있다"며 시에 직접고용을 권고했다.
▲ 다산콜 상담사 인권보호대책 권고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014년 2월 5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다산콜센터 인권개선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문 위원장은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근본원인은 민간위탁에 있다"며 시에 직접고용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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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대전의 경우,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2006년부터 콜센터 유치에 주력, 2010년 중 지방으로 이전한 전체 콜센터 31개 가운데 16개(전체의 51.7%)를 유치했다. 또한 2008년에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상담사 1만 명을 돌파했다.

2015년 9월까지 대전시에는 130여 개의 콜센터가 자리 잡고, 1만7천여 명의 상담사가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는 콜센터 유치를 위한 비교우위의 입지여건으로 수도권 본사와의 지리적 접근성, 저렴한 임대료 및 관리비, 우수한 인적·기술적 자원 등을 꼽았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유치활동 등으로 대전시의 콜센터 산업이 2006년 이후 급격히 성장했으나 문제점도 많아 보인다. 업체 규모의 영세성과 상담사의 높은 이직률,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부족, 콜센터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이다. 대전지역 콜센터 근로자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계약직과 아웃소싱 형태로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74.4%를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고, 주로 본사가 아닌 하도급 업체의 소속으로 근무하다 보니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보호받을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폭언과 욕설은 물론 성희롱 피해까지 빈번하게 발생한다.

최근 대전시는 콜센터 근로자의 인권 침해 피해를 예방하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대전시는 콜센터 상담사의 권익 향상을 위해 법률, 노무, 의료, 경영, 인권 등 분야의 전문가 23명으로 자문단을 구성·운영하고, 상담사 사회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다큐 '사랑합니다 고객님' 제작에 나서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전고용노동청과 대전지역 콜센터 10개사는 지난 2015년 7월 '감정근로자 근무여건 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감정근로자의 직무만족도를 높이고 나아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자 마련되었다. 대전고용노동청과 지역 콜센터는 감정근로자의 스트레스 예방을 위해 협업하고 소비자의 인식개선 활동을 병행하여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실제 콜센터 상담사들이 필요로 하는 건 뭘까. 대전의 한 통신사에서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는 김아무개(여, 37세)씨는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보았다.

"하루에 20~30번씩 전화하는 고객들이 있어요. 신음소리, 바람 소리 내며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마치 음란전화처럼요. 우리에게도 작게 천천히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죠. 또 수시로 전화해서 요금 조회하는 고객도 있어요. 세부 항목별로 일일이 요금 물어보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꼬투리 잡히는 거예요. 그때부터 큰 소리와 욕이 시작돼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우리는 전화를 끊을 수 없는 입장이니까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줘야 하는 거죠. 속상한 건 회사 측에서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나서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김씨는 '콜센터를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하도급 업체에 용역을 주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속해있는 건 하도급 업체고 업체는 인원만 채워서 본사에 보고하고 도급비 받으면 끝나요. 우리의 근무환경이나 근속 등을 신경 쓸 이유가 없죠. 사실 상담의 질을 생각하면 오래 근무한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신입 교육도 할 수 있고요. 교육강사들이 다 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신입 들어오면 오래 근무한 사람 뒤에서 그 콜을 들으며 교육받고, 장기근속자가 신입의 콜 들으며 조언해주기도 하고,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직률이 높은 건 분명 문제가 되죠. 그래도 도급업체는 아쉽지 않겠죠. 직원이야 새로 뽑으면 되니까."

그녀가 일하는 콜센터는 3년 전인 2012년에 노동조합이 생긴 후로 근무 여건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45분이던 점심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으며, 콜이 많아 점심시간이 단축되는 날에는 추가 휴식시간이나 '조기퇴근 쿠폰'을 받을 수 있다. 퇴근 후 교육시간에 대한 수당도 생겼다.

"너무도 당연한 우리의 권리인데 그동안에는 바보같이 참고만 있었어요. 입바른 소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게 힘들잖아요. 뒤로 숨게 되고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그래도 노조가 생기고 나서는 우리 편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감정노동자의 우울증, 누구 책임일까

"노동자에게도 인권과 감정이 있습니다"
 "노동자에게도 인권과 감정이 있습니다"
ⓒ 정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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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통신사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해 온 A씨는 2012년 휴대전화를 분실한 고객 B씨에게 임대전화를 개통해 주었다. A씨는 기존 번호로 임대전화를 개통할 경우 분실한 휴대전화로는 수신되지 않는다는 점을 B씨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 그날 오후 B씨의 동생 C씨는 "임대전화 개통으로 언니의 전화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2차례 불만을 접수했다. A씨는 C씨에게 사전에 충분히 안내했음을 설명했으나 돌아온 건 폭언과 고성이었다. C씨는 고객센터 게시판에 "A씨의 징계를 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A씨가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고객에게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C씨에게는 'A씨에게 페널티를 부과하고 친절교육을 하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억울함을 느낀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고, 사직서의 건의사항란에는 "서비스직일지라도 직원들의 인격은 지켜줘야 함이 당연하다"는 글을 남겼다. A씨는 다음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에서는 '회사업무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면, 집중력 저하, 분노 등이 있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과 함께 우울증으로 진단했다. A씨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관련 기사 : 자살시도한 상담원... 뜻밖의 결과).

이는 법원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의의나 정의가 쟁점이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1심에서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 이른바 감정노동"이라고 규정한 후 회사의 보호의무 위반행위에 대해 70% 과실을 인정했다(서울남부지법 2012가단25092).

고객의 입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근로자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사실관계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A씨에게 무력감과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었고, 이는 사용자로서 당연히 부담하는 보호의무 내지 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법원은 회사에 A씨에게 우울증을 발병 내지 악화시킨 데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치료비와 위자료를 합한 7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회사 측은 이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에서는 원심과 달리 사업주가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서울남부지법 2013나8125 판결). 법원은 A씨가 '감정노동자'로서 평소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경험칙 상 인정될 수 있지만,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발병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회사 측이 고객만족도를 성과급에 일부 반영하거나 고객의 클레임이 있을 경우 사실관계 확인 후 직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점 등은 인정했으나 이것이 근로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A씨가 상고를 하지 않아 사건은 확정되었다.

5년 이상 장기근속하며 업무처리 건수나 상담처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인정받아온 A씨. 그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개인적인 책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나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 것은 아닐까.

전화 끊을 수 없는 상담사 "우리도 인권과 감정 있다"

지난 2012년 9월 18일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 출범기자회견이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9월 18일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 출범기자회견이 서울 광화문 KT사옥 앞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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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감정노동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6백만~1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수많은 감정노동자가 직무 상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겪고 있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감정노동자, 콜센터 상담원에게 '고객은 왕'이라고 강요한다. 사업주 역시 철저하게 고객의 편이다.

유럽은 감정노동이 고령화나 고용불안 등과 함께 미래 사회의 10대 심리적 위험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산업재해 승인 범위를 '사고 중심'에서 '질병 중심'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차별 행위로 간주하고 법을 통해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월 부산청년유니온(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 13일 창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이다. 만 15세부터 만 39세 이하의 비정규직·정규직·구직자·일시적 실업자 등 청년 노동자가 구성원이다)은 '콜센터 상담원 노동환경 실태발표 및 처우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여한 한명숙 전 의원 비서관 김명섭씨는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사회에 더 확대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한 "감정노동자를 제도적, 사회·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감정노동자 관련 법안 입법의 핵심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대규모로 실태조사를 진행했고요. 의원들이 직접 사업장을 방문하거나, 국회에서 사진전을 하거나,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며 여론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콜센터에서 진상 고객들의 폭언·욕설·성희롱이 담긴 녹취록을 제출받아 10초 정도 짧게 국정감사장에서 틀었어요, 고용노동부 장관과 다른 의원님들 들어보시라고요. 국감장이 난리가 났습니다. 000당 남성 의원들이 어디 신성한 국감장에서 이런 욕설 파일을 트느냐고요. 저 역시 그 10초가 10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일반인이 그런 폭언을 겪게 되면 1초 만에 끊게 됩니다. 그런데 10초라는 시간도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원본은 짧게는 3분, 길게는 15분입니다. 그 시간 동안 콜센터 직원들은 그 욕설을 계속 들어야 되는 거죠. 이것은 신체적, 물리적 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놓여있는데, 끊으면 책임이 고객 응대를 제대로 못 한 본인 책임이라 끊지도 못하는 거죠." (<성찰과 전망> 17호, 부산 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주의 사회연구소 발행)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의 김재남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콜센터의 위탁관리 시스템을 지적했다. 공공부문과 사기업의 콜센터 모두 직접고용보다 관리가 효율적인 하도급 체제를 선호하는데 70~80%가 1차 하도급을, 심한 경우 2차 하도급까지 준다는 내용이다. 그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아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공부문부터 하도급 용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전화를 끊을 권리, 휴식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5년 5월 15일,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5인은 '감정노동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국가 및 사업주의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감정노동 종사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법안 상정을 앞두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입법 공청회를 열었다. 권미경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공공부문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권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교육시간에는 그래요, 악성민원이나 업무를 방해할 정도의 장난전화가 발생할 경우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책을 펴야 한다고. 하지만 회사가 나서서 우리를 보호해줄 리가 있나요, 고객이 떨어져 나갈 텐데요.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 유치를 위해 우리를 더 힘들게 할지언정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매체에서 감정노동, 감정노동 떠드니까 고객들은 그래요, '너희 감정노동 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고객 감정 상하게 하면 되겠느냐'고. 9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매일 수화기 드는 게 두려워요. 갈수록 힘들어져요. 무슨 협약이든 법이든 먼 나라 이야기 같아요."


태그:#감정노동, #콜센터,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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