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대호> 정보 <대호>의 스틸컷에 영화 정보 삽입

▲ 영화<대호> 정보 <대호>의 스틸컷에 영화 정보 삽입 ⓒ 이지혜


<명량>의 최민식,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 제작비 140억 원... <대호>의 출발은 화려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낀 연말 대목, 흥행성적은 초라하다. 개봉 첫 주말에 <히말라야>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 얻어맞고, 그 다음 주말엔 어린이 애니메이션 <몬스터 호텔2>에 박스오피스 3위까지 내줬다.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과 <셜록: 유령신부>까지 의외의 흥행세를 보이는 가운데 <대호>는 더욱 위태로워 보인다. 손익분기점은 600만. 하지만 지금까지도 200만을 넘지 못하는 <대호>가 이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영화의 흥행성적과 작품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단언컨대 <대호>는 한국 영화사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극중 천만덕을 연기한 최민식의 연기도 연기지만, 박훈정 감독의 연출력은 대단하다. 억지스런 악역 없이 긴장감을 주는 구조나 여러가지 상징성을 담은 시퀀스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연출이다. 특히 영화 속 '한국의 맛'은 압권이다.

[<대호> 속 한국의 맛 ①] 반일이나 애국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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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호>스틸컷 <대호>스틸컷 ⓒ 이지혜


그간 '한국적인 정서'는 종종 반일 정서 혹은 애국심 등으로만 해석돼 왔다. 한국사에 다시 없을 영웅, 이순신을 그린 영화 <명량>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필견!'이라는 공식이 생겨 역대 흥행성적 1위를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다. 그간 한국적이라고 불렸던 것은 한복을 입고 있거나, 제왕사거나, 혹은 한국사의 영웅을 담을 때 주로 사용돼왔다. 이런 시류는 점점 한국적인 정서라는 말이 반일, 애국심의 뉘앙스를 띠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대호>는 다르다. 등장인물 누구도 "산군을 잡는 건 왜놈의 압잡이나 할 짓이오"라며 호랑이 사냥을 만류하지 않는다. 극중 도경수는 물론이거니와 마에조노의의 부하가 된 조선인 류도 일제에 적극 가담한다. 천만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일제를 돕지 않는 건 단순히 포수로서의 신념 때문일 뿐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천만덕의 아들 석이는 가난이 싫다며 일제의 포수대에 합류하기 위해 뛰쳐나간다. 영화는 이런 갈등들이 항일, 반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갈등으로 비춰지도록 그려낸다.

[<대호> 속 한국의 맛 ②] 영물로서의 대호

 영화 <대호>에 등장하는 호랑이.

영화 <대호>에 등장하는 호랑이. ⓒ NEW


오히려 영화 속 한국 정서는 호랑이, 그리고 호랑이를 대하는 구한말 민중의 심리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산군'이란 말, 호랑이를 바라보며 웅성대는 주민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는데요" 하는 엔딩신에서 칠구의 대사는 일제에 의해 단절된 조선 민중의 정서를 담아낸다.

일제에 단절된 조선의 얼, 그것은 영물로서의 대호로 형상화된다. 예로부터 우리네 조상들은 호랑이를 가리켜 산군(山君)이라 불렀다. 감히 짐승의 몸으로, 호랑이는 임금의 칭호를 받은 것이다. 호랑이에 대한 조상들의 사랑도 각별해서 호랑이는 민담, 설화, 노래, 그림 속에서 여러가지 상징물로 묘사됐다. 힘만 세고 지혜가 모자라는 멍청이로 그려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호랑이는 덕과 힘을 가진 영물로 자리했다. 예컨대 호랑이나 나무꾼의 꾀에 넘어가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나무꾼의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전래동화는 유명하다. 더불어 호랑이는 호환마마로 역병과 함께 묶일 만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앙으로도 여겨졌다. 즉,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에 대해 경외심을 품어왔다는 것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와 현대 한국인은 아직도 한반도가 하늘을 향해 몸을 일으킨 호랑이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억지스러운 끼워맞추기란 걸 알면서도 모두가 쉬쉬한다!)

<대호>는 그런 조선의 호랑이를 담아낸다. 지리산 산군은 재앙처럼 강인해서 일본군이 아무리 몰려와도 모조리 물어 죽인다. 또한 제아무리 다쳐도, 살의를 품지 않은 인간은 물지 않는다.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도 알아, 천만덕의 아들 석이를 늑대의 틈에서 구출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호랑이는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바로 부성애다. 대호의 부성애는 대호를 인간의 마음을 지닌 동물로 승격시켜 영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천만덕과 동일시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천만덕도, 대호도, 일제와 인간의 욕심에 자식을 잃은 아비로 묘사되어 부성애를 공유하는 두 아비의 모습으로 겹쳐지는 것이다.

[<대호> 속 한국의 맛 ③] 자연주의

"올무에는 눈깔이 없다. 잡을 것만 잡는 게 산에 대한 예의여."

천만덕이 아들 석이에게 한 대사다. 천만덕은 산에 대한 예의, 짐승과 영물에 대한 예를 아는 포수다. 그래서 호랑이를 잡더라도 어미가 아닌 숫놈을 잡으려 하고, 부득이 어미를 잡더라도 새끼는 놓아주려 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 대호는 그 덕에 목숨을 건진 호랑이다.

③-1 자연주의: 영화가 항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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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호> 스틸컷 <대호> 스틸컷 ⓒ 이지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진실로 행하고, 무력을 쓰지 않고 물리친다."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영화가 일제를 물리치는 방식을 요약한다. 즉, 누구도 '일제에 가담하지 말라'고 저항하지 않지만, 영화는 결과적으로 일제의 탐욕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바로 자연주의의 정서를 통해서다.

앞서 말했듯 천만덕은 자연을 존경할 줄 아는, 자연에 예를 갖출 줄 아는 포수다. 그는 자연 속 영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순응한다. 덕분에 대호는 설화로 남을 수 있었다. 일제에 대호의 죽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대호가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는 천만덕의 노력 덕에 이 둘은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호가 천만덕을 찾아와 죽음을 받아들이고, 천만덕이 대호와 함께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장면은 총포에 대호를 죽이는 게 아니라, 대호를 일제의 손에 내주지 않고 조선 민중의 인식 속에 신화로 돌아갔다는 결말을 만듦으로써 영화의 자연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한다.

더불어 이는 영화가 아주 독특하게 항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제의 야욕에 호랑이들이 희생당하고, 그 호랑이들 중 최후의 보루가 지리산 산군 대호이며, 그를 노리는 일제의 압박이 시시각각 강해진다는 것은 일제가 조선에 품었던 침탈 야욕과 조선의 상황을 은유한다. 즉 조선은 대호로 대변된다는 것이다. 이때 천만덕과 함께 절벽으로 뛰어내려, 혹은 하늘로 솟아 설화가 됐다는 결말은 조선의 위기, 그럼에도 일제의 야욕이 좌절된 상황 등을 은유해 은근한 항일 정신을 내포하는 메타포가 된다.

③-2 자연주의: 어쩌면 not 항일, but 반 근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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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호>스틸컷 <대호>스틸컷 ⓒ 이지혜


영화의 결말, 호랑이의 상징성, 천만덕의 자연주의 - 이를 가리켜 혹자는 자연주의 대 근대화의 구도로 읽기도 한다. 이때 근대화는 기계화나 산업화뿐만 아니라 자연의 신비주의를 미신으로 매도하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신과 태도 일반을 가리킨다.

이같은 구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2003)를 상기시킨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사슴신과 자연을 파괴했듯, <대호> 역시 인간의 욕망이 영물 대호를 죽이며 자연의 신비주의를 뿌리 뽑았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많은 이들이 '자연주의 영화'라 부르는 이유다.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처럼 신비로운 분위기의 배경음악,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스크린에 산을 담은 오프닝.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영화임을 <대호>는 오프닝에서부터 보여준다. 비록 흥행성적은 초라했지만, 영화의 작품성만큼은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것도 '근대화된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신선, 산군을 소재로 한 가장 한국적인 동화, <대호>는 그런 영화다.

대호 최민식 정만식 박훈정 성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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