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레진코믹스의 인기웹툰 <소년이여>는 일진과 복수를 주제로 하는 학원만화다. 연재 기간 내내 레진코믹스의 액션만화 중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 레진코믹스의 인기 웹툰 <소년이여> 레진코믹스의 인기웹툰 <소년이여>는 일진과 복수를 주제로 하는 학원만화다. 연재 기간 내내 레진코믹스의 액션만화 중 1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 레진코믹스

관련사진보기


<소년이여>는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학원만화다. 이 만화는 '일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글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섬뜩한 폭력을 드러내는 일진 만화는 대중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다음에서 연재된 <일진의 크기>나 레진코믹스의 <유쾌한 왕따>와 같이 일진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여왕의 시간>과 같은 웹툰은 여고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살얼음 같은 관계를 묘사하기도 한다.

<소년이여>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복수'인데, 눈여겨 볼 지점은 복수의 방향이다. 예를 들어 <일진의 크기>에서 주인공 최장신은 원래 일진이었다가 희귀병으로 키가 작아진 이후 일진들의 표적이 되어 빵셔틀로 몰락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소외된 아이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아이들과 힘을 모아 일진들을 몰아내 학교의 평화를 되찾는다. 최장신은 스스로가 하고 있는 일을 '정의'라고 표현하진 않지만, 복수의 방향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평화나 이익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의'를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이여>에서는 다르다.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일진의 표적이 되어버린 이용주는 폭력에 시달려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보며 분노한 주인공 이용진는 동생을 폭행한 일진들에게 복수를 한다. 경호원 출신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경쾌한 액션과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섬뜩함이 이 작업의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폭력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이죽거리기까지 한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는, 자신들의 밥그릇에 위기가 닥쳐 올 때 뿐이다.
▲ 방관하는 교사 학교는 학생들의 폭력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이죽거리기까지 한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는, 자신들의 밥그릇에 위기가 닥쳐 올 때 뿐이다.
ⓒ 레진코믹스

관련사진보기


"그 새끼들이 왜 너한테 그랬는지 알려줄까? 그냥. 그냥 그런 거야. 이유 같은 건 없어. 네 눈빛이 맘에 안 들었거나 한순간 눈에 띈 게 너였거나, 그 새끼들한테 이유나 동기 같은 건 필요 없어. 어차피 자기 아래에 있는 존재들이니까. 누구든 상관없는 거지."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용진이 일진의 우두머리인 최진철과 그 무리들에게 복수를 해나가는, 다소 단순한 내용이다. 눈여겨 볼 만한 것은 '복수'를 대하는 캐릭터, 혹은 캐릭터를 통해 작가가 '복수'를 다루는 태도다.

"저, 저기요... 얼굴을 보이기 꺼려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그 말만 하고 갈게요. 고마워요. 제가 그토록 하고 싶지만, 힘이 없어서 못한 걸 해주셨잖아요. 덕분에 더욱 더 확신이 생겼어요. 악은 결국 처벌 받는다는 거. 지금 이렇게 당해도..."

"지랄한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하면서 대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겠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이 틀렸어...(중략)...오늘 일은 네가 생각하는 권선징악 같은 게 아니다. 세상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실을 살아라."

이용진이 일진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소년을 우연히 구한 후 나눈 대화다. 이용진은 자신의 복수가 선의 실현 따위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는 그저 현실을 사는 것일 뿐이다.

"형. 그만해. 지금 이게 대체 뭐하고 있는거야."
"길게 이야기할 것 없다. 네 복수를 하고 있는 거야."
"됐어. 형 마음은 충분히 알았어. 하지만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야. 아무런 의미 없어. 그만해 형."
"..(중략)...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고? 아니... 어설픈 정의가 무책임한 악을 낳는다. 이건 정의가 아냐. 그저 사는 거다. 너랑 내가 사는 거야 용주야. 이렇게 해야 이렇게라도 사는 거다."

타인의 폭력을 '복수'라는 형태로 막는 것. 이를 위해 이용진은 직장마저 그만두고, 감옥에 갈 가능성을 마다 않는다. 지금 순간만큼은 일진들을 짓이기는 복수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모든 사회제도의 근간으로 삼는 근대법의 정신에서 사람은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폭력이 발생했다 해도, 개인의 폭력으로 되갚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 폭력에 대한 모든 권한(심지어 폭력을 막기 위한 폭력의 권한까지)은 유일하게 국가에게만 있다. 근대 시민권 개념을 정립한 홉스의 통찰처럼,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막기 위해 오직 국가에게 유일하게 폭력에 대한 정당한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소년이여>에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국가의 대리인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선생들은 교육부 감사 등의 이슈에 눈치를 보며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폭력을 무마하려 한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옥상에서 떨어진 용주에 대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이 만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학교 붕괴는 한 사람의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이 몰락하고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소년이여>에서 복수는 고립된 개인이 선택한 최소한의 생존전략이다.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타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다시 타인을 벌레로 호칭한다. 우리는 지금 벌레들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 벌레와 죄책감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타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다시 타인을 벌레로 호칭한다. 우리는 지금 벌레들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 레진코믹스

관련사진보기


"괘... 괜찮겠어?!! 날 죽여도... 죄책감은?!! 제대로 살 수 있겠냐고?!!"
"... 병신. 넌 벌레 새끼 하나 죽이는데 일일이 죄책감을 갖나?"

벌레가 된 인간. 벌레 취급하는 인간을 다시 벌레로 취급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옳지 않다는 것은 우리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옳지 않다고 해서,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며 세상을 바꾸자 말하기에 그 구호가 너무 낯설고 듣는 사람에게 '어리석다' (그러니까 위의 대사처럼 '병신')는 말을 듣기 딱 좋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총체적인 방향을 잃어버린 현실에서 이 웹툰은 '복수'라는 이름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개인을 그린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복수를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서는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일가친척의 복수를 명분으로 살인을 한 경우에 형벌을 크게 낮추는 일이 흔했다. 시스템에 의한 개인의 통제가 약할 때, 복수는 폭력을 억제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2016년의 한국은 근대 사회로 깊게 이행해 그나마 갖고 있던 과거의 공동체마저 모두 붕괴된 세상이다. 복수는 질서유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이 웹툰은 최근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에서 왜 '한국'이 아닌 '조선'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 '조선' 앞에 '헬'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를 알려준다. <소년이여>에 담긴 복수극은 우울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태그:#소년이여, #웹툰비평, #소년이여 비평, #레진코믹스 소년이여, #학원폭력 만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와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로써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