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 일본군위안부 소녀상(평화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 일본군위안부 소녀상(평화비).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연관 분야를 전공했고 앞으로도 공부할 예정인 학생이기에, 아는 선에서 생각을 몇 자 끄적여보고자 한다. 앞에서 '위안부'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넣은 것은,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저 단어에 많은 반감을 갖고 있으며,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이 더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래에서는 쓸 일이 있다면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겠다.

협상에 대해 고민하기에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위안부 문제 논의, 한-일 장관회담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기시다 외상의 방한이 있고 합의가 이뤄졌지만, 어차피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외상이 짧은 시간 합의를 도출한 것이 절대 아님은 모두가 알 것이다. 수년간 물밑협상이 있었을 것이고 이미 최고위급에서 실무진을 통한 의사교환 이후 합의의 윤곽이 도출되었기 때문에 기시다 외상의 전격적 방한이 결정된 것이다.

기자회견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실무 조율은 두 사람이 했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이전의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확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지려면 최근 한두 달을 볼 것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모든 것을 따져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건 아직 속단하긴 이르고, 좀 더 천천히 두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두 가지가 이례적이었던 협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오후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한 이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위안부 문제 합의' 소식에 의견 밝히는 아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오후 윤병세 한국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한 이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일단 공동 합의문이 없다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양측 모두 이것이 성문화됨으로 인하여 지게 될 부담을 피하고 싶어 했다는 뜻인 것 같다. 상당히 첨예한 사안에 대하여 외교를 할 때 협정문을 모호하게 작성하는 방식의 '그레이존'을 남기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이 더 이례적인 것은, 아마도 관련 문제에서 단어 하나하나조차 첨예하게 갈리는지라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 '적절히 애매한' 문구가 없기 때문에 아예 성문화하지 않고 기자회견 형식으로 대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은 가라앉지만, 말은 증발하니까. 이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해결'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니었는가 싶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창의적 해법'을 모색한다고 했던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또 관심을 끄는 단어, '비가역적(일본측 표현으로는 不可逆的. Irreversible)'이라는 부분은 논란이 많은 것 같다. 이 부분은 일본 측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이 문제가 귀찮으므로 치워버리려는 취지라고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번 협상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Agreement Between Japan and the Republic of Korea Concerning the Settlement of Problems in Regard to Property and Claims and Economic Cooperation)의 연장 선상에서 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와 얽혀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들도 해당 협정의 문구들을 고려해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라면 비가역적이라는 단어가 (전·현직 외교관들에게) 이례적인 문구라는 평을 받고 있음에도 채택된 이유를 알 수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 2조 1항의 문구는 아래와 같다. 국문본 일문본 영문본의 세가지로 작성되었으나, 국제법상 해석으로는 영문본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영문본을 가져오겠다.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confirm that the problems concerning property, rights, and interests of the two High Contracting Parties and their peoples (including juridical persons) and the claims between the High Contracting Parties and between their peoples, including those stipulated in Article IV(a) of the Peace Treaty with Japan signed at the city of San Francisco on September 8, 1951, have been settled completely and finally."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맨 마지막 줄의 'completely and finally'이다. 따라서 이번 합의와 비슷한 형태의 협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문구는 'finally'이므로 'irreversible'은 극히 이례적임이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965년에 'finally'라고 명시되었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추가적으로 협상한 것이 되었으므로, 이번의 기자회견에서는 비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기자회견의 내용을 협정문 형태로 바꾸자면 completely and finally에서 finally and irreversibly로 한층 더 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이었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 한일 청구권 협정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왼쪽부터 정일권 총리, 박 대통령,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왼쪽부터 정일권 총리, 박 대통령,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주일대사.

외교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국제법 수업을 들으면서 해당 문제에 관하여 새롭게 배웠던 것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우리가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언론에서야 국제사회가 우리의 편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고, 기타 여러 '인터넷 글'들에도 이 문제는 1965년에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므로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배운 선에서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것은 이미 1965년에 사실상 일본의 책임이 소멸되었다고 국제법상으로는 판정될 것이다.

계약 변경이 가능하려면 계약 전에는 몰랐던, 그리고 내용에 변경이 필요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위안부 문제는 그 요건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 신문에서 연재되었던(그리고 90년대 드라마화 되어 더욱 유명해진) 소설 '여명의 눈동자'에도 여주인공은 종군위안부였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당시 보도통제를 감안한다면, 그런 내용의 소설이 쓰였고 정부에서 허가되었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읽혔다는 것은 최소한 1970년대에는 이미 상당수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설정 자체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국 그런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몰랐다'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알면서도 외면하던 불편한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뒤늦게 알았다'라며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사실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설혹 1965년까지는 귀신같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만행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가 간의 조약을 바꿔야 할 만큼 중대한 사정의 변경이 있다고 인정받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된 문제로 다시 일본의 책임을 묻겠다며 ICJ와 같은 곳으로 간다고 해도 백이면 백 우리가 패소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우리 편을 들어줄 국가는 몇 곳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하여 외신들의 보도를 봐도 (한미일 삼국의 공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면)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하기로 결정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서 국제사회가 '우리 편'인 이유는, 그런 법적인 배상과 책임의 문제를 떠나서 이것이 중대한 인권의 침해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하여 국제사회가 일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구권'과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도의적인 책임의 영역에 대한 문제 제기일 뿐이고, 막상 우리가 '법적 배상'의 문제로 따지고 들면, '법'적으로 봤을 때, 많은 나라들은 우리에게 심정적으로는 공감해줄지언정 논리적으로는 일본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분하지만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을 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왜 지금이었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박 대통령 발언 경청하는 오바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이 문제를 계속 남겨놓는 것은 어떨까? 단견으로는, 장기적으로는 이 문제는 일본에 유리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문제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여론이 있었던 것은 피해자들이 아직 생존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난다면?

더 이상 그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할 사람도 없고, 한 맺힌 증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그 생생한 분노와 울분의 감정을 표현할 사람도 없다. 이 문제에 관한 기록은 문서로만 남을 것이다. 물론 그 기록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고 일부는 분노하겠지만, 잉크는 마르기에, 글로 남은 기록물 또한 마음을 건조하게 만들 뿐이다. 피해자들이 살아있고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해당 만행에 대한 격양된 감정은 고조되겠지만, 마지막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점점 사그라들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이 불리하지만, '피크'를 넘기면 시간이 갈수록 일본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강력한 패를 쥐고 있을 때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 일단 그런 이익과 힘의 측면을 떠나서,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도리에도 맞고 할머니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는 시간을 끌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찌 보면 그런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결국 이번에 합의가 발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그런 시기적인 고려 때문에 합의에 이른 것인가? 사실 시기적으로 그것이 '좋다'라는 것일 뿐이지 이것이 일국을 움직일 만큼의 큰 동인은 되지 않는다. 결국 움직이게 된 이유는 미국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쁘면 미국에게는 좋을 것이 전혀 없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편을 결집해야 하는데 한·일이 반목하면 안되니까.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다, 일본이 위치상으로 훨씬 더 중요한 국가이기도 하고,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이니까. 그렇다고 일본의 편을 들기는 또 어렵다. 한국은 미국에겐 큰 도움을 줄 만큼의 강력한 국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편에 붙으면 엄청 골치아플 정도의 힘을 가진 국가이기는 하다. 미국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이런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그렇게 강력하게 뒤에서 압박하려고 했을까? 여기서부터는 추측의 영역이므로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2000년대 이후 중동 쪽에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후방'을 튼튼하게 해두고 싶은 생각은 컸을 것 같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더욱이 미국은 최근 IS 격퇴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힘을 분산시키기가 어렵다.

IS 격퇴에 힘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것이 (미국 정책결정과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제1순위였던) 유럽의 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신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다. 혹시 보도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해보는 또 다른 추측은 '북한 변수'도 의사결정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북핵개발이야 오랜 이슈이지만, 최근에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이 SLBM 개발에 성공한다는 것은 미국으로선 아주 중대하고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북한에 대하여 갖고 있는 핵 억지력이 무력화되는 사건이기도 하고. 따라서 북한을 거세게 밀어붙이기 위해서 일단 '같은 편'이어야 할 한국과 일본을 화해시키려는 생각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정권이 바뀌기 전 오바마 행정부가 '업적'을 남기려는 것도 일부 작용했을 것 같다.

그러면 일본은 왜 위안부 합의에 나섰을까?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의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이, 이 문제에 관하여 양국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비난하지 않겠다는 부분이 합의에 포함된 것 때문이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국가들의 반대이며, 그 선봉장에 중국과 한국이 있다. 이번 합의가 도출된다고 한국이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도덕적 이유로 반대하지는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본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동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이 코너에 몰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협상하는 것이 일본 측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영·프·독 등의 주요 언론에서 가끔 보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좋지 않다. 심지어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서는 대놓고 비판하는 사설까지 쓸 정도니까.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기존 방침을 마냥 고수하며 버티는 것은 여론전에 있어서 한참 불리하다는 것을 간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미국이 계속 푸시하는 마당에 '이왕 해야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전격적으로 협상에 나섰으리라 보인다.

어쩌면 미국에서 당근을 같이 제시했을 수도 있다. 연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양적완화의 출구전략이라면, 일본의 통화팽창 유지로 인한 엔화 약세를 묵인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실 버틸 명분이 별로 없다. 여론이 좋지 않은데 버티면 더 곱지 않게 바라볼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본 측에 명분만 줄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한국이 고집을 피워 무산되었다'와 같은 형식으로. 그뿐만 아니라 위에서 이야기했듯 우리 처지에서도 계속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것도 없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강경히 버티고는 있지만 어차피 그건 국내 정치 때문이지 고위 의사결정자들은 아마 국제법적으로는 불리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박근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단한 지지층이 있고, 야당이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는 마당이므로 이것을 타결한다고 해서 국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도 '박근혜'이기 때문에 추진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65년은 3공화국 시절이고, 마침 올해는 한일청구권 협정으로부터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상당히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에 더하여, 어쩌면 KF-X사업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잠깐 든다. 화해를 대가로 기술이전에 미국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준다거나. 이것은 추후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행된 협상, 결과 그리고 남은 것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 위안부 문제 논의, 한-일 장관회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번 협상은 누가 승리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양측 모두 챙길 것은 챙겼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법대로' 하면 불리할 상황에서 어쨌든 다시 한번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을 얻어냈고, 일본은 그토록 피하고 싶어하던 '법적 책임'을 비껴갔으며 청구권 협정이 무효화 된 것은 아님을 재확인했다.

어느 한쪽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양측 모두 양보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책임자 처벌'과 같은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을 포기했으며, 앞으로도 이 문제로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 셈이 되었다. 일본은 '내각 총리대신'의 직함으로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sorry'라는 표현('유감'보다 한층 더 높은 책임인정의 표현이다)을 다시 한 번 명시했다. 이는 법적 책임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 정부에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기존 담화의 재반복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 상황에서 많이 인용되는 '무라야마 담화'는 비록 식민지배에 대한 겸허하고 적극적인 사과였지만, 위안부 문제를 특정한 사과는 아니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를 특정하기는 했으나 이는 관방장관의 명의로 발표된 것으로 일본 정부를 대표하여 내각총리대신이 사과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어떤 차이인가 하면, 세월호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것과 청와대 대변인이 사과한 것의 차이라고 봐도 되는 수준이다.

둘 다 어차피 정부의 입장이긴 하지만, 정부의 대변인이 하는 사과와 정부의 수반이 하는 사과는 분명 다른 의미이긴 하다. 국제관계에서 각국을 대표할 수 있는 행위자인 '빅3(국가원수, 행정수반, 외무부장관)'에 관방장관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는 분명히 중대한 진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간의 위안부 논의에서 너무 우리 측의 입맛대로만 평가됐던 감이 없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싼 가격과 적은 책임부담으로 가장 골치 아팠던 문제를 잘 해결'했으니 만족스러울 것 같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마음 같아서는 더 털어버리고 싶지만 힘도 없고 주변 분위기도 안 좋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많이 얻어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솔직히 무게추는 일본 쪽에 더 기운다는 생각이다.

다만 여러 여건들을 감안해봤을 때 '우리가 이것 이상으로 강하게 나가서 얻을 것이 있었는가'라고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오히려 더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결과는 한국에 매우 아쉽지만, 현실 앞에서 분루를 삼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마음을 누르는 묵직한 무언가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회 및 제12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회 및 제12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물론 이것은 한국 정부와 일반 대중으로서의 입장이고, 피해자들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다. 할머니들에게 이번 결과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불만족스러운 협상일 것이고, 할머니와 뜻을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일반대중들에게도, 이성적으로는 협상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나의 경우에도 협상 결과를 보며, 결국 해결된 부분은 잘 되었구나 싶으면서도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속상했다. 그래서 부족한 생각으로는, 이번 협상은 '맞는' 방향과 결과이지만, '바른' 방향과 결과는 아닌 것 같다.

협상 타결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계속 드는 생각은,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상은 언제나 저 멀리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때로는 이상끼리도 충돌하는 경우가 생긴다. 정의(正義)와 대의(大義)가 특히 그러하다. 더 맞고 바람직한 목표를 위해 때로는 올바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올바름을 고수하기 위하여 품고 있는 뜻을 접어야 하는가.

대의에 기댔다가 그것까지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정도를 지키다가 그것마저 지킬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의를 지키면서 대의를 달성하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것 같다. 시대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 둘은 양립불가능한 가치인건지.


태그:#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댓글5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