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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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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분양가 상한제 폐지하면 얼마가 됐건 집값이 올라요. 근데 이제 '약발'이 떨어진 셈인 거지."

지난 14일 서울시 강남구의 한 아파트 상가. 15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이상기(가명)씨는 손님을 가장한 기자에게 "부동산 상식이니 알아두라"며 부드럽게 핀잔을 줬다. 그가 주로 취급하고 있는 이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초와 비교하면 조건에 따라 8~12% 정도 올랐다.

최근 1년간 견고한 상승세를 보이던 강남지역 아파트들은 최근 추세가 다시 주춤해졌다. "더 오를 가능성은 없느냐"고 묻자 이씨는 "집값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매수세는 줄었다"면서 "나라면 지금 집 사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분양가 상한제 폐지안이 통과된 이후 서울과 수도권 지역 아파트 대부분의 가격이 뛰었다. <오마이뉴스>는 그중 주목도가 높은 27개 아파트의 가격 추이를 조사했다.

이 기간 국내경기나 고용상황은 특별히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아파트는 특수한 사정에 놓인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난해 1월에 비해 적게는 3%, 많게는 30%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분양가 상한제 폐지안 통과 전에는 가격이 정체되어 있거나 하락세를 보였던 곳들이었다. 27개 아파트의 가격 자료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제공받았다.



평당 1000만 원대 아파트, 1년 새 1400만 원대로 올라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용인시 수지구의 신정마을 주공아파트 1단지였다. 2014년 평(3.3㎡)당 1088만 원이었던 이 아파트는 올해 9월에는 평당 1431만 원으로 31.53% 올랐다. 안양시의 평촌 초원부영아파트 7단지는 1140만 원에서 1398만 원으로 평단가가 22.6% 올랐다.

학군 탓에 꾸준한 수요가 있는 양천구 목동 7단지 아파트는 평당 2389만 원에서 2747만 원으로 15% 올랐다. 이 아파트가 가장 비쌌던 2007년 시세인 평당 2867만 원에 거의 육박한 수준이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도 10.2% 가격이 뛰면서 2012년 수준을 회복했다.

기존 아파트들의 가격이 대부분 오른 것은 정부의 분양가 폐지 정책으로 올해 분양된 아파트들의 분양가가 대폭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 포털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5년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2002만 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5.7% 올랐다. 특히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서 분양한 재건축 단지의 평당 분양가는 4002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850만 원 비싸졌다.

통상 아파트 시장의 가격 책정은 주거 지역별로 이뤄지기 때문에 신축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면 기존 아파트의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최근 평당 분양가가 4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완판'되며 화제가 된 서초구 일대의 가격 추이를 보면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평당 평균이 3873만 원이었던 서초구 반포동의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는 올해 들어 가격이 13.9% 올랐다. 평단가 4410만 원으로 이 아파트가 지어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10월 같은 동네에서 분양한 '반포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이 분양가를 4040만 원으로 책정했음에도 21.1대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반포 지역의 심리적 제한선이던 평당 4000만 원 분양가가 깨졌으니 가격이 추가로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강남구 대치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올해 8월 분양된 대치동 '대치 SK뷰'는 평당 분양가가 3902만 원이었지만 50.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2014년 평당 3550만 원선이던 '대치 동부 센트레빌'은 올해 평당 3902만 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분양가 상한제 다시 안 만들면 아파트값 더 오를 것"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 1단지 모습.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 1단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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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오름세를 유지하던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일단 올 12월 들어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미국발 금리 인상, 가계대출 급증으로 인한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공급과잉 우려 등이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3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강남구는 12월 들어 2주 연속 집값이 떨어졌다. 각각 0.01%씩 매우 소폭 하락했지만, 강남구의 집값 하락은 지난해 11월 말 이후 51주 만에 처음이다. 강동구(-0.03%), 중구(-0.02%), 서대문구(-0.03%) 등 4개 자치구도 집값 하락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직은 하락 폭이 미미한 수준이다.

향후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11월부터 평당 4240만 원에 분양을 시도했던 반포 래미안 아이파크는 정당계약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계약률 73%를 기록했다. '완판'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각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 전에 없던 평당 분양가 4240만 원짜리 고가 아파트가 초기 계약에서 총 물량의 2/3나 팔렸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은 "지금 오른 아파트 가격의 원흉은 박근혜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라며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만들지 않으면 지금보다 아파트값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셋값이 매매가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 등 수도권 주거 불안이 이미 현실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들은 아파트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기 쉽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은 "이런 식의 인위적인 집값 부양은 전반적인 주거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면서 "소수의 집주인에게만 이득이고 대부분의 세입자, 미래 세대들에게는 손해를 안기는 '헬조선' 유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민이라면 나라 경제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갑자기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사게 된 건지, 이게 합당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헬조선, #아파트, #경실련, #김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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