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은 지난 2004년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없는 한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야 하는데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위 발언은 이후 크게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단체들은 그가 북한을 찬양했으니 서울 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 논리에 동조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현재, 그보다 더 가혹한 잣대가 이윤석에게 쏟아졌다. 이윤석은 야당을 두고 "야당은 전라도당이나 친노당이라는 느낌이 있다, 저처럼 정치에 별로 관심 없던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이 싫다"는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그러자 "뚜렷한 근거 없이 '전라도당', '친노당'으로 규정하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는 이유로 그의 <강적들> 하차를 요청하는 의견이 일부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나왔다. 소속사를 통한 이윤석의 사과까지 나오는 등 이 발언은 요 며칠 큰 화제가 됐다.

친일파 관련 발언, '친일파 옹호'로 보는 건 비약

 <강적들>에 출연해 '친일파', '친노당' 발언으로 사과까지 해야 했던 이윤석

<강적들>에 출연해 '친일파', '친노당' 발언으로 사과까지 해야 했던 이윤석 ⓒ TV조선


새누리당이 경상도를 텃밭으로 한만큼, 새정치민주연합도 전라도를 표밭으로 하는 정당이라는 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몇몇 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스스로 그렇게 칭하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도당'이라고 지칭했다는 이유로, 이 발언이 야당을 일방적으로 비난했다고 엮는 건 피해의식이다.

기존정치인들이 여당·야당 할 것 없이 그저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데만 급급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은 이런 지역감정도 한몫했다. 단순히 야당을 비판하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해서, 이런 폭력적인 시선의 도화선이 된 건 이해하기 힘들다.

처음에는 '친노당', '전라도당'이라는 발언으로 문제로 삼던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비난의 근거가 부족했는지 나중에는 이윤석의 과거 발언까지 끌어들였다. '이윤석이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논리로 이윤석을 비판하며 <역사저널 그날>의 하차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윤석은 당시 방송에서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며 "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까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이윤석은 '친일파 청산 실패는 안타까운 일'이라는 전제를 두고, 현재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친일파 세력을 무조건 청산하기보다는 상처가 남지 않는 범위에서 힘을 합치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폈다. 이 발언을 두고 '친일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은 박원순 시장의 발언을 두고 '친북이다'라고 규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말에 동조할 수 없고 불쾌하다고 하더라도, 그 발언을 아예 못하게 막으려 하는 것은 폭력이다. 이 정도의 발언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야당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자신들의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그런 논리에 동조한다. 그러나 어떤 발언은 해도 되고, 어떤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스스로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는 셈이다.

발언 자체를 못 하게 막을 수는 없다

 친일파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더 겪은 이윤석

친일파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더 겪은 이윤석 ⓒ TV조선


우리나라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많은 정치인과 유수의 유지들 조상이 친일파였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들의 재산을 전부 몰수하고 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한다면, 그 과정에서 사회적 파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윤석은 그런 파장을 우려하는 뉘앙스로 말했을 뿐, '친일을 허용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한 적이 없다.

물론 그 말에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안티가 될 수도 있다. 그 역시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말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입을 틀어막으려 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자신들은 얼마든지 상대를 비판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비판할 수 없다는 논리. 개인의 정치적 소신마저 가지면 안 된다는 논리는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정권이 했던 짓과도 닮아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이 바로 그런 시선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던가. 남들을 그렇게 똑같은 시선으로 보면서 자신들은 그런 시선을 끔찍하게 경계하는 것은 편협한 이중성에 불과하다. 거칠고 날카로운 것은 언제나 부드럽고 포근한 것을 이기지 못한다. 그들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질 때, 비로소 야당에 쏟아지는 인식과 시선 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들을 인정할 줄도 모르면서 자신들이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미성숙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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