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스피드 배구 '신형 엔진'... 정지석 선수

대한항공 스피드 배구 '신형 엔진'... 정지석 선수 ⓒ 박진철


"우리가 현대캐피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김종민 대한항공 감독이 스피드 배구를 선언했다.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을 위해서다.

김 감독은 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한항공은 시즌 전 훈련할 때부터 스피드 배구를 추구했다"며 "저희 팀이 더 좋아지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한 쪽으로 공격이 몰려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팀은 한선수 세터가 국가대표에서 스피드 배구를 했었고, 리시브도 괜찮기 때문에 스피드 배구를 하면 오히려 현대캐피탈보다 더 좋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센터 공격력이 약하다, 그 부분만 더 완벽해지면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일 삼성화재를 꺾으면서 스피드 배구에 대한 의지는 더욱 커졌다. 이날 대한항공은 7연승을 달리며 파죽지세로 선두 탈환을 노리던 삼성화재를 외국인 선수 없이 국내 선수만으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했다.

삼성화재 선수들의 컨디션이 하락한 측면도 있었지만, 대한항공 선수들의 경기력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한선수·황승빈 두 세터가 공격수 전원을 빠르고 다양하게 활용했고, 공격수들도 각자 자기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면서 남미·유럽형 스피드 배구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다.

남미·유럽형 스피드 배구는 리시브가 잘 안될 경우에도 세터와 공격수 전원이 평소 연습하고 약속된 시스템대로 발 빠르게 움직여서 상대의 블로킹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게 하거나 따라오더라도 빠른 공격을 통해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전술이다. 리시브의 수준을 공격 라인까지 띄워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대신 세터의 민첩한 토스워크와 공격수 전원의 공격력을 키워서 나쁜 볼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시스템 배구와 토털 배구를 구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달 28일 최하위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완패를 당하기도 했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스피드 배구의 약점들이 드러나면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스피드 배구의 명과 암을 잘 보여준 것이다.

대한항공 스피드 배구의 핵 '정지석'

대한항공이 스피드 배구를 할 수 있는 조건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다. 정지석(21·194cm·레프트)이다.

스피드 배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터의 역할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중이 큰 포지션이 레프트 공격수다. 브라질 스피드 배구의 상징적인 선수는 단연 지바(Giba·192cm)였다. 이는 공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레프트가 스피드 배구의 핵심이라는 걸 의미한다.

정지석이 삼성화재에 승리를 거둘 때 공·수에서 보여준 역할은 압권이었다. 그로저의 무시무시한 서브를 받고 바로 뛰어들어가 빠르게 사이드 공격을 성공시키고, 후위에서는 수시로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을 퍼부었다.

또한 정지석은 대한항공 공격수 중에서 가장 많은 리시브를 받는 등 수비 비중이 큰 선수이다. 그러면서도 전위와 후위를 가리지 않고 순도 높은 공격력을 발휘했다. 스피드 배구에서 레프트 공격수가 갖추어야 할 전형을 잘 보여준 셈이다.

이는 V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비형 레프트'와 차원이 다르다. 국내 프로팀 상당수는 레프드 2명 중 1명을 수비에 전념하도록 하고 공격 가담이 적은, 사실상 수비 전문 선수나 다름없는 수비형 레프트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정지석은 2013년 8월 열린 2013~2014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송림고 3학년 신분으로 참가해, 대한항공으로부터 2라운드 6순위로 지명 받았다. 프로 경력은 벌써 3년차이지만, 나이로 따지면 대학교 2학년 선수에 불과하다.

최근 국가대표팀을 스피드 배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대한배구협회도 정지석의 성장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대한배구협회는 '제2의 전광인'을 발굴하고 키워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공격과 수비력을 갖춘 레프트가 많이 나와야 남미·유럽형 스피드 배구를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선발하는 총괄책임자인 김찬호 경기력향상위원장은 "공격만 잘하거나 수비만 잘하는 선수는 앞으로 국가대표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스피드 배구 특별훈련을 통해 현 고교·대학 선수 중에 프로 선수를 능가하는 전광인급 레프트를 최소한 2~3명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0월 국가대표로 선발된 고교·대학 선수 14명의 신체 조건과 잠재력으로 볼 때 충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피드 배구 맞수 '진검승부'... 팬들 벌써 흥분

대한항공은 세터와 공격수 등 선수 구성이 V리그 7개 팀 중 스피드 배구를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이 부임하면서 선수 개개인과 팀 운영 시스템을 스피드 배구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뜯어고친 '창조형 스피드 배구'라고 할 수 있다.

스피드 배구로 무장한 두 팀은 13일 오후 2시 17분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정면 승부를 펼친다. 현재 현대캐피탈은 2위, 대한항공은 3위를 달리며 1위 OK저축은행을 바짝 뒤쫓고 있다. 두 팀 간 승점 차이도 3점에 불과하다.

스타일도 비슷하다. 스피드 배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빠르고 다양한 플레이를 펼친다. 스피드 배구의 꽃인 파이프 공격의 향연이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특히 대한항공은 새 외국인 선수인 파벨 모로즈(29·205cm)가 첫선을 보인다. 부상중인 산체스는 구단 측의 배려로 손등 치료를 한 뒤 다음 주 쿠바로 떠날 예정이다.

모로즈는 러시아 국가대표 출신의 라이트 공격수다. 10일 한선수와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며 훈련을 시작했다. 김종민 감독은 "힘과 공격 파워는 그로저보다 센 것 같다, 다만 타점이 낮다"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우리 팀에는 딱 맞는 외국인 선수"라며 "파이팅이 좋고 친화성이 있어서 선수들과 융합이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한항공은 외국인 선수에게 집중하지 않고 스피드 배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모로즈가 자기 몫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부담감 갖지 말고 본인 실력을 잘 발휘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두 팀의 경기는 지상파(KBS 1TV)에서 생중계한다. 이래저래 볼거리와 흥미요소가 가득한 3라운드 최대 빅매치가 됐다.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천만다행'... 조기 복귀할 듯

 이재영-이다영(오른쪽)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오른쪽) 쌍둥이 자매 ⓒ 박진철


여자부도 남자부 못지않게 1위부터 5위까지 치열한 순위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최근 경기에서 똑같이 발목 부상을 당했다. 소속 팀 관계자와 팬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잔뜩 긴장했다. 이재영의 부상 장면 동영상은 조회수가 23만 명을 넘겼다.

두 선수의 소속팀인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은 현재 1위와 2위를 달리고 있다. 승점 차이도 2점에 불과하다. 한 경기 결과에 따라 1위가 바뀔 수 있다. 살얼음판 상황에서 장기간 결장은 팀에 큰 타격이 우려됐다.

다행히 두 선수 모두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언니 이재영(흥국생명·179cm·레프트)은 정밀 진단 결과 발목 인대가 손상되거나 파열되지 않았다. 흥국생명 이영하 사무국장은 "인대가 약간 늘어난 상태로 1~2주 정도면 완쾌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회복이 빠르면 1~2경기 후에는 출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동생 이다영(현대건설·179cm·세터)은 발목 인대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약간의 통증만 있는 상태다. 양철호 감독도 "다음 경기인 12일 인삼공사 전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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