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가도 편안한 음악과 맛좋은 커피가 기다리고 있는 거기.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는 사람은 드문 거기. '먼지도 콘셉트'라는 주인장의 말이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거기. 사흘이 멀다고 찾은 거기는 카페 사흘(아래 사흘)이다.

 사흘의 한가로운 오후 4시 풍경
 사흘의 한가로운 오후 4시 풍경
ⓒ 박소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그 분위기를 사랑해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자릴 잡고 앉는다. 나뭇결 옹이마저 그대로 살린 테이블은 지난 시간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갤 드니 천장 곳곳에 콘크리트가 벗겨졌다. 애써 덧대지도 매끄럽게 다듬지도 않은 그 모습에 시선이 머문다. 그즈음 진한 커피향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비라도 오는 날엔 입보다 코가 먼저 기억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눈과 코에 질세라 귀를 간질이는 어쿠스틱 기타의 맑고 부드러운 선율은 마음 한 귀퉁이에 빈 자리를 만든다. 낮과 달리 밤에는 장조보다는 단조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현악기의 울림은 더욱 깊어간다. 그러나 사흘의 음악을 클래식과 연주곡으로 단정할 순 없다. 그야말로 그때그때 다른 까닭이다.

가령 햇살 좋은 오전에는 가벼운 연주곡, 비 내리는 오후에는 단조 계열의 클래식, 주말 저녁에는 추억의 가요가 흐른다(고 썼지만 이 또한 그때그때 다르다). 믿기 어렵겠지만, 국적과 장르를 넘나드는 이 모든 음악들은 따로 또 같이 사흘의 풍경이 된다.

 사흘의 트리플 콘파냐
 사흘의 트리플 콘파냐
ⓒ 박소연

관련사진보기


빌어먹을, 사흘의 트리플 콘파냐

주머니 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점점 더 여의치 않다. 결국 상황은 밥이냐, 커피냐의 양자택일을 요한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 터, 인생(까지 운운하긴 거창해도 사실이라)은 짧기에 순간의 즐거움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진다.

나의 주말이 온통 '남'의 주말이 돼버린 비통한 금요일 밤에는 이름부터 달달한 카페 스위츠(sweets)를 주문한다. 보통 라떼 보다 진하고 달콤해 화나거나 우울한 기분을 저 멀리 날려버리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결과는 아니나 임상경험을 통해 효험을 확인한 바 있다.

아직도 반(밖에?)과 벌써 반(이나!) 사이에서 맞는 무념무상 수요일 오후에는 트리플 콘파냐를 주문한다. 사흘의 콘파냐는 참 심술궂다. '용용 죽겠지'라는 표정으로 어서 먹어보라는 듯 부추기는 몹쓸 비주얼이라니.

그 배경에는 하루 두 번 손으로 직접 쳐내 적당히 찰진 '빌어먹을(은 심했나하면서도 바꿀 의향은 제로)'을 부르는 크림이 있다. 미안하지만, 바로 내린 뜨거운 에스프레소 위에 냉장고에서 갓 꺼내 올린 차가운 크림이 묘하게 어우러져 입술에 닿는 찰나, 그때 느끼는 행복감은 백문이 불여일미(味).

 까만 밤 그리고 블루문
 까만 밤 그리고 블루문
ⓒ 박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는 가끔 마냥 우두커니가 된다

해 저물어 땅거미 질 무렵 촛불 밝히는 사흘. 촛불 하나가 두 개에서 세 개, 세 개에서 네 개로 늘어갈수록 사흘의 온도는 1도씩 올라간다. 밤이 깊어갈수록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수가 많아진다. 소곤소곤 무에 그리 좋은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젊은 연인은 수제 브라우니와 (새콤한 레몬과 매콤한 생강에 감기가 뚝 떨어진다는) 감기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창가 테이블에 홀로 앉은 여자는 블루문 한 병을 마시며 책을 읽고 있다. 벽에 기대어 노트북에 뭔가를 썼다 지우길 반복하는 남자는 내일은 없는 오늘의 커피 말라위 팜왐바를 홀짝인다. 사흘은 이렇듯 혼자와도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혼자일 때 생각나는 곳이다. 이는 주인장의 바람인 '누구든 있는 동안은 행복하게'와 맞닿아있기도 하다. 덕분에 우리는 가끔 마음 놓고 우두커니가 된다.

 사흘의 코앞 풍경
 사흘의 코앞 풍경
ⓒ 김진리

관련사진보기


추신

'작심사흘'의 첫 공간으로 사흘을 정하고 이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뜩이나 기온과 손님 수가 반비례하는 사흘이 입소문을 타고 (지금보다 배는) 유명해져 더 이상 '우두커니'가 될 수 없는 곳이 되면 어쩌나 하는(쓸데없지만 그게 꼭 쓸데없지만은 않은) 걱정이 앞섰다. 이에 미봉책이나마 사흘 주소와 전화번호는 공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왕 말이 나왔으니... 어쩌다 선돌극장 주변을 살피다 번듯한 간판 없이도 마뜩한 곳이 눈에 들어오면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가라. 거기가 사흘일 거다. 그런데 선돌극장을 모른다? 인심 쓰는 김에 조금 더 쓴다. 게릴라극장도 그 근처다.

번외 추신

이미 눈치 챈 이들이 있겠다. 뭐 눈치 못 챘다면 이제 알면 된다. 위 글의 소제목들은 '사흘'에서 읽은 시집에서 차용했다.(사흘에'서' 읽은 시집이지 사흘에 있는 시집은 아니다.) 거기에서 난 한쪽에 앉아 편편이 읽어가며 새어나오는 웃음도, 흐르는 눈물도 부러 참지 않았다. 유난히 길고 긴 이번 마감이 덜 고되고 퍽 외로운 데는 이들의 공이 실로 혁혁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마운 마음은 신세 진 세 권의 시집들을 호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천양희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