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고등학교 때 친구를 통해 비틀즈를 처음 만났다. 당시는 전축 가게와 레코드 판 가게들이 행인들에게 음악을 선사(?)하던 시기였으니 분명 길거리에서 비틀즈의 노래를 들어봤겠지만, 제대로 들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게 "비틀즈를 아느냐"면서 테이프를 하나 빌려주던 그 친구가 떠오르는 책, <노래가 위로다>를 읽었다.

1990년 11월 1일, 가수 김현식이 사망했다. 사후 나온 그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는 겨울 내내 전국 어디를 가나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세상을 떠난 김현식을 애도했다기보다 대중가요 한 곡이 이렇게까지 유행할 수도 있다는 데 관심이 쏠렸다. 사실 같은 해 초에는 변진섭의 2집 앨범이 내방 전축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숙녀에게> <로라> <너에게로 또다시> 등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던 내 방의 우울한 기운을 기억한다. 실연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가사가 와 닿았던지.

대중가요로 보는 사회사

 <노래가 위로다> 표지
 <노래가 위로다> 표지
ⓒ 시사인북

관련사진보기

31년 2개월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는 저자 김철웅은 정년퇴직을 하고 출근할 곳이 없던 때에 운명처럼 트로트 가사가 자신의 귀로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라는 가사에 감정이입하게 됐다고. 밤전차는 저자 자신을, 그리고 종점은 정년퇴직을 은유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대중가요는 어쩐지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을 연상케 한다. 그만큼 통속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사랑, 이별, 회한 등에 관한 가사가 대중가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선입견도 작용했을 것 같다. 그런데 <노래가 위로다>를 읽으면서 다양한 주제와 소재가 대중가요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1963년 발표된 노래, <월급 올려주세요>는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이것 참 미안하지만 월급을 올려주세요 박 사장'이란 가사로 시작된다. '물가도 오르고 자식들은 커져서' 살기 힘들다는 설명도 들어있다. 이 노래는 박정희 정권 최초의 금지곡이 됐다고 한다. 레코드사 대표는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지만 곧 얼굴이 굳어지는 것은 1962년 발족한 방송심의 윤리위원회가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1953년 발표된 <굳세어라 금순아>란 노래에는 북한의 흥남부두와 남한의 국제시장이 등장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당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9035명 중 생존자는 7만2491명으로, 생존자 가운데 이름이 '금순'인 북의 어머니나 누이를 찾는 신청자는 무려 1250명에 이르렀다."(본문 110쪽) 그 많은 금순이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살아는 있을까? 한국전쟁의 비극이 만들어낸 슬픈 에피소드다.

대중가요 속 참여가요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  / 남쪽지방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렸네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 이파리에 묻은 피와 뿌리에 고인 피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 검은 몸뚱이가 남풍을 받아 건들거리네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  / 이상한 열매가 포플러에 매달렸네"(본문 257쪽)

1939년 미국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노래,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의 가사다. 인디애나 주에서 살인 및 강간 혐의로 체포된 흑인 청년 두 명을 성난 백인들이 폭행하고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고 한다. 당시 백인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에이벨 미어로폴이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고 한다.

<이매진>으로 유명한 존 레논은 반전과 평화운동에 앞장섰다. 28살 청춘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구소련의 빅토르최 역시 반전과 사회개혁을 노래했다. 우리나라에도 마왕이자 논객으로도 불린 신해철이 있다. "<100분 토론>에서 신해철씨를 다섯 번 만났다. 그때마다 논란의 한 가운데 섰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였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해서 논쟁할 수 있는 논객이기도 했다."(본문 266쪽) 이것은 언론인 손석희의 술회라고 한다.

저자는 10여 년 전부터 가요계에 불어닥친 복고열풍 그리고 현실참여적인 노래의 작품성 등에 관한 논쟁도 이끌어 낸다. 또, 정태춘, 송창식, 김수철 등이 추구한 한국인만 만들 수 있는 우리만의 음악과 신중현이 이룩한 한국적 록의 완성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 일부가 매우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내게 비틀즈를 소개했던 고등학교 친구는 고시공부를 하다 그만두고 회사에서 중역으로 활동 중이다. 아직도 순수하고 맑은 친구다. 그가 고등학교 때 내게 건넨 테이프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예스터데이>나 <렛잇비>가 아닌 <올 마이 러빙>이란 곡이다. 가사는 말 그대로 내 모든 사랑을 너에게 준다는 내용이다. 진심으로.

덧붙이는 글 | <노래가 위로다> 김철웅 지음, 시사인북, 2015년 11월 11일



노래가 위로다 - 갈 곳 없는 이들을 사로잡는 대중가요의 사회사

김철웅 지음, 시사IN북(201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