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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내렸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듯 기온도 영하로 곤두박질치고 만물이 겨울 품 속으로 들어갔다. 농부에게 포근한 휴식기인 이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농사는 흔히들 벼와 고추 농사 빼고는 다 안 됐다고 한다. 풍년이 든 농사는 가격 하락으로 한숨 짓고 이상기후로 망한 농사는 내년 농사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농촌의 기류는 을씨년스럽다 못해 한숨과 포기, 분노로 뒤범벅됐다. 포도농사는 고온 피해로 수확량의 감소로 이어졌고, 상주 지역의 겨울철 대표 농사인 곶감은 가을 장마, 고온, 습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나 역시 귀농 후 겨울철 농사로 곶감을 택했고 기업처럼 수십, 수백 동이 아니라 한 동(백접, 약 1만 개) 조금 넘는 양을 수 년 전부터 해왔다. 처음에는 감나무에 올라가 직접 감을 따기도 했으나 고소공포증에 낙상의 위험을 겪고 난 후 근래에는 이웃집에서 딴 감을 바로 사서 곶감 농사를 지어 왔다.

올해도 한 동이 조금 넘는 감을 이웃집에서 직매해 아내와 함께 꼬박 일주일 동안 깎아 매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 타래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지으며 겨울 채비를 했다.

곶감 잔혹사의 정점을 찍다

일주일에 걸쳐 감을 깎아 매단 후 아내가 뒷정리를 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올해 곶감농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 곶감을 매단 직후 일주일에 걸쳐 감을 깎아 매단 후 아내가 뒷정리를 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올해 곶감농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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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9년째, 별로 많지도 않은 곶감이지만 돌이켜 보니 곶감 농사 지으면서 어느 한 해도 날씨 덕을 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감나무를 1년 임대해서 거름 주고 약 치고 가꿨지만 감을 따야 될 무렵 갑자기 닥친 한파로 감이 나무에서 얼어버린 일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사람을 써서 감을 따고 깎았지만 이미 얼어버린 감은 곶감으로 쓸 수도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전량 버렸던 아픈 기억이 있다.

3년 전엔 감을 깎고 달아 놓자 고온의 날씨가 계속 돼 매일같이 감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참상(?)을 겪어야 했다. 대량으로 곶감 농사를 짓던 농부가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작년엔 감이 너무 많이 달려 감나무 농부들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가격에 감을 넘겨야 했고, 곶감 하는 농부들은 싼 값에 감을 살 수 있어 나 역시 두 동이 넘는 곶감을 깎았다. 그러나 한겨울 몰아닥친 강풍과 눈보라에 곶감의 30%가 습기와 곰팡이로 얼룩져 버려야 했었다.

알코올은 동이 나고 유황도 불티나게 팔려

올해는 제발 날씨 좀 도와달라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웬 걸. 그야말로 곶감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는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감을 매달고 약 1주일부터 홍시가 되면서 바람과 추위가 더해져야 곶감이 되는데, 유례없는 가을 장마가 시작된 것. 습기와 고온으로 곶감 전체에 곰팡이가 피고 낙과 현상이 속출했다.

감각 빠른 농부들은 일찌감치 감을 건조기에 넣어서 화를 면했다. 뒤늦게 건조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기계가 바닥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선풍기를 돌리고 연탄을 피우고 온풍기를 돌리고,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비닐로 곶감을 에워싸는 등 곶감 농부들의 처절한 노력이 계속 되었지만, 습한 날씨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처음 달았을 때 가득찼던 곶감들은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꼭지만 남아있는 감타래 풍경.
▲ 그 많던 곶감은 어디로 가고.. 처음 달았을 때 가득찼던 곶감들은 거의 떨어지고 앙상한 꼭지만 남아있는 감타래 풍경.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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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장마가 시작되면서 습기에 늘어진 곶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백개씩..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떨어지는 곶감 가을 장마가 시작되면서 습기에 늘어진 곶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백개씩..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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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집도 천재에서 비켜가기는 힘들었다. 매일 아침 바닥에 떨어져 퍼져버린 홍시 같은 수백 개의 곶감들. 치우는 게 속상한 일과가 됐다. '퍽, 퍽' 감 떨어지는 소리는 듣기에도 고통이었다. 곰팡이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감은 매일 수백 개씩 떨어졌다. 아내는 깨끗이 포기하고 감을 정리하자고 했다.

팔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에 집에서 먹을 거라도 건지고 싶은 마음에 골라서 감을 정리하기로 했다. 하나하나 깎아 땀 흘려 매달은 곶감을 내 손으로 떼내는 마음은 정말 착잡했다. '전량 폐기'라는 단어가 가슴에 들어오면서 논밭을 갈아엎는 농부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하는 동병상련이 진하게 밀려왔다.

국민을 IS에 비유하는 대통령, 그만 좀 하시라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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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보다 더 농부를 힘들게 하는 정부의 농정, 총체적 국정의 난맥들이 국민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정부의 농사 정책을 따라하면 망한다는 농부들의 말은 소중한 격언이 된 지 오래다. '전량 폐기'라는 네 글자가 아프게 다가오는데 갈수록 태산, 점입가경, 무슨 말을 갖다 붙이기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대한민국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국가 권력의 정점에 앉아 국민들을 향해, 아니 정확히 말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복면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는 독기 서린 말을 뱉어냈다. 안 들었으면 모를까. 심산유곡에 숨어사는 사람도 아니고 가슴 속에 '헉' 하는 응어리가 생기는 것 같다.

<초한지>에 나오는 고사 하나를 소개한다. 패권을 잡은 항우가 진나라 3세 황제 자영을 죽이자 수도 함양의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이에 격분한 항우가 함양 백성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자 신하인 범증이 '백성 없는 나라는 없다'며 백성을 죽이려면 나부터 죽이라고 목숨을 걸고 반대하여 항우의 뜻을 꺾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자기 뜻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불법 폭력집단, 테러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사실상 다 잡아들이겠다는 대통령 앞에서 국민들은 테러주의자가 아니라고 충언할 신하가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주권자로서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공직자들에게 부디 당부하니 제발 힘들게 좀 하지 마시라. 먹고 사는 거 내 힘으로 살 테니, 농사 조금 안 되고 곶감 '퍽, 퍽' 떨어져도 소박한 밥상 놓고 막걸리 한 잔 마시며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제발 목소리 좀 달리 낸다고 국민을 IS에 비유하는, 독침은 놓지 말아달란 말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지역 인터넷신문 상주의소리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곶감,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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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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