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방영된 KBS2 <안녕하세요> '114 콜센터' 특집의 장면 갈무리. 맛집 정보를 검색하는 것과 직업 정신은 대체 무슨 관계일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8월에 방영된 KBS2 <안녕하세요> '114 콜센터' 특집의 장면 갈무리. 맛집 정보를 검색하는 것과 직업 정신은 대체 무슨 관계일까.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 KBS2


대한민국은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다. 하루하루 '안녕'하며 살기란, 그날 꼭 해야 하는 숙제를 하는 심정만큼 어렵다. 월요일 밤, 힘겨운 하루를 마감하고 눈을 붙이려는 찰나, TV에서 안녕하냐고 묻는다. 문득, 지난여름 눈에 띌만한 아이템으로 방송했던 KBS 2TV의 <안녕하세요>가 생각났다.

대국민 토크쇼라는 수식어와 "전 국민의 고민을 해결해 줍니다"라는 타이틀로 시작하는 <안녕하세요>는 매주 월요일 밤 11시 10분에서 60분 동안 방송한다. 지난 8월 31일 월요일에 방송된 240회에서는, 특별히 '콜센터 상담사 고민특집'으로 114 상담원들의 애환을 다루었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콜센터 상담사라는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눈여겨보았다.

상담사의 고민 신청,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첫 번째 고민 신청을 한 상담사는, 직업 정신이 너무 투철한 동료 상담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서비스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 맛집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자고 자기에게 권하는 동료였다.

고민 신청자와 함께 맛집을 찾아간 동료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할 때마다 일일이 기록하여 파일까지 만들어 놓는다. 하루에 채워야 하는 기본 상담 건수가 있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하지만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맛집 정보에 답하려면 이 정도 사전준비는 필수라는 게 동료의 생각이다. 업무 매뉴얼에도 없는 이 일을 즐겁게(?) 하는 모습에 감동 아닌 감동을 하여 따라나서지만, 맛집을 다니다 보면 당연히 음식 맛을 보느라 자주 먹다 보니 살이 찐다.

이 심각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퇴근 후 무언의 표정으로 동행을 권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석처럼 당기는 힘이 있다.

 영화 <더 콜>의 포스터, 911 콜센터 직원이 겪는 애환이 긴박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 잘 풀어졌다.

영화 <더 콜>의 포스터, 911 콜센터 직원이 겪는 애환이 긴박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 잘 풀어졌다. ⓒ NEW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더 콜>은 미국의 911 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요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율 있고 현장감 넘치는 이 영화에서, 베테랑 요원 조던은 자기에게 도움을 요청한 소녀가 한 번의 실수로 살해되는 일을 겪는다. 그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 조던은 일선에서 물러나 교육팀장으로 일하지만, 또 다른 소녀 납치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상담사로 복귀한다.

영화는 1초당 3건의 벨 소리가 울리는 911 센터의 요원들이 얼마나 민첩하게, 조용히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끊겨도, 끊어도, 들켜서도 안 된다"는 아슬아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엄청난 고통과 트라우마는 현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화의 반은 응급상황이 아니에요, 커피숍 가는 길이나 고기 굽는 법을 묻죠"라는 대사에서도 보여주듯이, 한국의 '진상 고객'은 114 전화상담실 상담사에게 맛집 정보를 묻고 있었다.

114 콜센터는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은 상담원들에게 맛집 정보를 물어보는 '진상 고객'들 앞에서 무참히 깨지고 만다. 번지수를 못 찾는 이런 고객들에게 성심껏 맛집 정보를 찾아서 알려주는 상담사는 정말 직업 정신이 투철한 걸까? 근무 내용과 관계없는 사항을 알려달라는 고객에게 사리에 맞게 거절하지 못하는 상담사의 처지는 안타깝기만 하다.

고객의 부당한 요구조차 거절하지 못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한계, 주인공은 이 한계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공감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능이라는 장르에서 거기까지 보여주는 것은 무례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시청자가 예능에서마저 심각성을 느낄 필요는 없으니까.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는 그들, 고민 함께 나눠야...

 지난 8월 방영된 KBS2 <안녕하세요>의 방송 장면 갈무리. 감정 노동에 대한 위로가 다소 값싸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모두가 '안녕'할 날을 꿈꾼다는 <안녕하세요>의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과연 이런 식의 접근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8월 방영된 KBS2 <안녕하세요>의 방송 장면 갈무리. 감정 노동에 대한 위로가 다소 값싸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모두가 '안녕'할 날을 꿈꾼다는 <안녕하세요>의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과연 이런 식의 접근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 KBS2


두 번째 사례는 상담사 엄마를 둔 초등학교 6년생의 고민이다. 엄마는 직장에서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친절한 상담사다. 하지만 집에 오면 모든 것을 명령 투로 말한다. 고운 말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까칠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가족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에 상처받는다. 딸과 남편, 시어머니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방청석에 나왔다. 딸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따르라고 하는 엄마의 독불장군 같은 태도에 불만이 가득하다.

심지어 학교 성적이 전교 2등이 나왔는데도 칭찬은커녕 1등을 못 했다고 잔소리한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반찬 맛에 대해 살짝만 얘기해도 "그냥 먹어"라고 일관하며, 시어머니에게도 꼬박꼬박 말 대꾸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며느리다.

카메라는 여기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엄마에 대한 불만을 들고나온 딸의 입장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아니면 가족에게 그토록 까칠하게 구는 엄마는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딸의 고민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대단히 피곤한 일을 하고 있다. 결국, 마이크를 넘겨받은 엄마는 말한다. "온종일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고 집에 오면 입도 뻥끗하기 싫다"고.

당연한 말이다. 딸아이는 엄마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하면서, 이제는 엄마가 왜 집에만 오면 까칠하게 구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누적된 피로가 가족에게 고스란히 표출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했다. 집에만 돌아오면 일터에서의 피로 때문에 만사 귀찮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이 '엄마'라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도 착잡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이 녹록지 않다. 일터에서는 언제 잘릴지 몰라서 늘 전전긍긍하고 그곳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를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친절하게 대해야 할 가족에게는 온종일 일터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 바쁘다. 개인은 지쳐 가고 사회는 나 몰라라 하는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게 장하다. 이러한 현실은 콜센터 상담사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열악한 노동현장이 많다. 그 열악한 현장에서 꿋꿋이 자기 일을 해내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사회가 굴러간다. 직무의 40% 이상을 자신의 감정은 감추고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노동자를 우리는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 30개 중, 텔레마케터는 12위에 이른다. 1위는 항공기 객실 승무원, 2위는 홍보 도우미와 판매원이다.(한상근 외 4인, <한국의 직업지표연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12)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 2500만 명 중 약 552만 명이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38%는 중증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답했으며 80%가 인격 무시 발언, 욕설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젤이, <웃음 뒤에 숨겨진 우울, '감정노동자'>, 바로 가기)

감정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억누르게 되면 우울증, 불면증, 만성피로, 소화불량, 가슴 두근거림 등의 질환이 생기게 된다. 특히 우울증이 심해지면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이 높아지며,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고통을 남몰래 겪는 감정노동자들은 겉으로는 누구보다 밝게 웃으며 친절을 베풀고 있다. 감정노동자들도 대한민국을 유지, 발전시키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제도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안부를 묻는 것 그 이상을 꿈꿔 본다

<안녕하세요>는 고민을 안고 나온 주인공의 사연을 '진짜' 고민인지, 아닌지를 청중에게 묻는다. 주인공의 고민에 더 많이 공감하는 표를 받으면 살아남고, 나의 고민이 먼저 나온 사람의 고민보다 표를 덜 받으면 탈락하는 것이다. 고민을 안고 나온 사람은 모두 내 고민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공감하는 사람 수가 적으면 마치 '그건 고민도 아니야'라는 비웃음을 당하듯이 무대에서 퇴장한다.

개개인의 고민은 경중을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한 두 개의 고민쯤은 껴안은 채 사는 나약한 인간이니까. 이 절박한 사연에 더 많은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문자 투표밖에 없을까?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마음 먹고 공개한 내 고민은 인생 최대의 고민이다. 그 중차대한 일을 마치 '고민대회'(?)를 하듯 문자투표로 순위를 정하라니, 충분히 자존심 상한다.

시청자들은 어떤가. 주말을 자유롭게 보내고 월요병이 도진 밤, 내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남의 고민까지 들어 줘야 하는 수고로움은 오락이 아니라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가 타인의 고민에도 귀 기울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참여 대상을 전 국민으로 하고 남녀노소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점도 바람직하다. 특히, 지난 특집 편에서 다룬 '114 전화상담실 상담원'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전화로만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을 <안녕하세요>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드러낸 것 자체가 참신했다. 게다가 고민을 말하는 주인공부터 청중들까지, 모두 전화상담실 상담사로 채웠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여주기에 바쁜 여느 예능프로그램들에 비하면 <안녕하세요>는 가뭄에 단비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렇게 참신한 주제의식에 비해 게스트로 나온 연예인들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주인공의 고민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려면 심리전문가 또는 고민해결사(?) 같은 게스트도 함께 출연시켜 '너의 고민이 정말 심각 하구나'라는 무게감 있는 위로를 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비로소 주인공들도 '말하길 잘했어'라며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멘트는 "전 국민이 '안녕'하는 그 날까지~"다. 단 하루도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나의 안녕을 맡기고 살아가는 일이란, 국민의 권리 중 하나인 집회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맞고 의식불명이 되는 무시무시한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안녕하세요"는 단순한 안부를 묻는 게 아니다. 진지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비는 염원이다. 이 간절한 소망이 한순간의 즐거움으로 끝나는 오락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안녕하세요>가 책임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는 길뿐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주최한 '좋은방송을 위한 시민비평' 공모전에 참여했던 글을 일부 수정한 내용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방송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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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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