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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는 지구'라는 말이 있다. 지구는 내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빌려쓰고 있으니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자는 뜻이다. 그런데 셋집을 전전하면서 이 '빌려쓰자'는 말에 학을 뗄 때가 많았다. 빌려쓰는 집이라 그런지 단열재도, 고기밀 창호도, 절수형 양변기도 꿈꿀 수 없었고 벽에 못을 박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제발이지 내 것이라고 찜할 수 없는, '빌려쓰는' 팔자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게 다 뭔 소리인고 하니, 지난 5월부터 9월에 걸쳐 서울 시내 학교 6곳(초등5, 중학교1)을 돌아다니며 유해물질을 조사하면서 학교도 '빌려쓰는' 공간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학교 공간이 어린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안전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집장사가 셋집 짓듯 싸고 찾기 쉬운 자재와 물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번 조사는 2015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XRF 기계로 교실의 보관함을 찍고 있는 모습
 XRF 기계로 교실의 보관함을 찍고 있는 모습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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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손바닥 한 뼘즈음의 크기지만 5000만 원이나 하는 XRF라는 기계로 학교 공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이 기계는 원하는 곳에 대고 찍기만 하면 납, 카드뮴, 브롬, 수은 등의 유해 중금속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1분 안에 알려주는 기특한 장치다. 이 기계로 도서관, 체육관, 강당, 교실, 돌봄교실, 학습준비물실, 과학교구실 등 어린이들이 숨 쉬고 만지고 뛰어노는 학교 공간을 찍어 보았다.

사라져야 할 PVC 플라스틱, 학교에서는 너무 흔해

우리 여성환경연대는 <물건 이야기>라는 책에서 지상에서 가장 시급히 사라져야 하는 나쁜 물건으로 지목된 PVC 플라스틱이 얼마나 사용되는지, 납과 카드뮴 등의 유해 중금속이 어느 정도 들어 있는 조사했다.

플라스틱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중 PVC 플라스틱은 생산과 폐기 시 유독한 염소 오염을 일으키고 재활용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유해 중금속과 프탈레이트라는 환경호르몬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납은 아이들 아이큐를 떨어뜨리는 신경독성 물질이자 국제암연구소가 인정한 발암물질(2B)이고, 카드뮴은 생식계통에 유해하고 어린이 발달을 저해하는 1급 발암물질이다. 브롬은 가전제품, 옷, 매트리스나 소파의 우레탄 폼에 사용되어 불에 타지 않도록 하는 브롬화 난연제와 관련된다. 일부 브롬화 난연제는 생식독성 때문에 전자제품 등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국내외 규제와 건강영향을 고려해 납과 카드뮴의 경우 100ppm, 그리고 브롬의 경우 1000ppm 수준을 초과하는 경우를 '위험'으로, 40~70ppm은 '주의'로, 40ppm이하는 '안전'으로 기준을 정했다. 6개 학교에서 창틀, 문, 책상, 학습준비물과 과학교구 자재, 체육자재, 칠판, 커튼 등을 깨알같이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 위험 / 주의 / 안전으로 나온 자재와 물품 퍼센트
▲ 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 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 위험 / 주의 / 안전으로 나온 자재와 물품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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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 중 유해 중금속 기준 초과 퍼센트
▲ 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1 학교 유해물질 조사결과 중 유해 중금속 기준 초과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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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상의 50% 이상이 PVC 플라스틱이었고, 납 기준을 초과한 경우도 35%였다. 학교 조사대상 중 약 38.8% 정도만 안전했고, 나머지 60%는 주의와 위험 판정을 받았다. 어린이 제품의 경우 유해물질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학교 공간은 왜 이럴까?

특히 학생들이 직접 만지고 사용하는 문구류와 바둑알, 찰흙, 악기, 공, 나침반, 지질모형, 줄넘기 등은 유해 중금속 기준을 초과하는 물건이 많았다. 심지어 과학자료실을 조사한 결과, 안전한 조사 대상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대량으로 구입하는 문구류와 체육, 미술, 과학 교구에 대한 규제가 허술하고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납이 검출된 학교 공간 물건들의 예
 납이 검출된 학교 공간 물건들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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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어떤 공간과 물건에서 납과 카드뮴이 많이 나왔을까?

놀랍게도 칠판에서 35500ppm의 납이 검출되었는데, 칠판의 3.5%가 납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시트지도 문제다. 시트지(인테리어 필름지)가 붙어 있는 문이나 창틀에서는 예외 없이 중금속이 검출됐다. 또 같은 배구공인데도 공인구과 비공인구의 중금속 수치가 달랐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공인구에서는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비공인구에서는 중금속이 높게 검출됐다.

카드뮴이 검출된 학교 공간 물건들의 예
 카드뮴이 검출된 학교 공간 물건들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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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뮴의 경우 칼로 자를 때 책상에 대는 커팅 고무매트마다 높게 검출됐고 악기에 그려진 무늬, 줄넘기줄 등 악기와 체육용품에서도 검출됐다. 이번에도 문에 붙여진 시트지에서 예외 없이 카드뮴이 나왔다.

납과 카드뮴 둘다 높게 나온 물품은 문방구용품, 체육용품, 미술용품이었다. 요즘 교실 뒷편에 자리한 알림판의 경우, 부직포를 사용하다가 딱딱한 녹색 플라스틱 판으로 바뀌었는데, 여기에서 높은 함량의 유해 중금속이 검출됐다.

되도록 PVC 플라스틱을 피하고 천과 나무 등 천연 소재를 사용하고,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할수록 안전하다는 뻔한 상식이 조사결과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내년부터는 환경부에서 '어린이 활동공간 환경안전관리기준'이 시행된다. 그래서 환경안전기준을 조사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환경안전관리기준을 초과한 경우가 25%, 오래된 학교의 경우 30%로 드러났다. 납과 카드뮴으로만 따져서 기준을 초과한 경우이다.

5등급 냉장고, 왜 학교에서 쓸까

학교 조사를 나가 보았더니 학교 냉장고에 에너지 효율이 가장 낮은 5등급 라벨이 붙어 있었다. 신설학교라 냉장고도 거의 새 것이었는데 왜 1등급을 사지 않았을까 했더니,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우선해 구매하기 때문이란다. 이는 에너지 효율을 넘어 유해물질이 함유된 제품에도 해당된다. 학교나 공공기관 등은 50% 이상 '녹색제품'을 써야 하지만, 할당량을 채우고 나서는 무엇보다 가격이 우선시된다. 무엇보다 녹색제품에는 환경마크가 달린 안전한 제품뿐 아니라 자원을 재활용한 제품도 포함되기 때문에, 자원 재활용으로 녹색제품 50% 할당을 채우고 나면 안전하고 건강한 제품이 설 자리가 없다.

적어도 어린이들이 자라는 어린이집과 학교 등의 공간은 환경마크가 달린 안전한 제품이 사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들은 면역체계가 어른보다 덜 발달했고 체중량 대비 체면적이 넓고 호흡량이 많기 때문에 유해물질에 더욱 취약하다. 지금 당장 건강영향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체내 납 농도가 높은 어린이들의 아이큐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낮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납이 들어간 유연 휘발유에서 납을 뺀 무연 휘발유로 변경하자 아이들 체내 납 함량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유해물질 기준을 넘긴 어린이 제품이 문제로 불거지고 있지만, 학교 공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이들의 생활공간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녹색제품 구매제도의 개정과 친환경 구매를 위한 교육청 조례 등이 필요하다. 또한 문제를 이해한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시정을 요청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학용품 안전 구매 가이드를 참고하여 되도록 안전한 제품을 선택하고, 자주 손 씻고 환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학용품과 학습준비물의 유해물질과 대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안전구매가이드 학용품과 학습준비물의 유해물질과 대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여성환경연대, 일과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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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여성환경연대는 2015 서울시 녹색시민위원회 프로젝트로 이번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고금숙님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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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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