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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와 생삼겹이 어울린 주꾸미볶음입니다.
 주꾸미와 생삼겹이 어울린 주꾸미볶음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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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게 땡기는데, 오늘 번개 어때?"
"콜. 문수동서 6시에 보게요."

만나면 기분 좋은 유쾌, 상쾌, 통쾌한 사람이 있지요. 만나면 나도 모르게 긍정의 좋은 기운을 받데요. 궁합이 맞구나, 했지요. 이런 유형은 남을 배려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런 지인과 약속은 언제나 간단 명쾌하지요. 만남 또한 언제나 환영입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의 만남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필요 없습니다. 식성이나 취향 등이 비슷해 바로바로 정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몇 군데 집을 정해놓고 단골로 다니는 집을 찾아가는 터라, 그날 기분에 맞게 먹고 싶은 대로 움직이면 되지요. 보통 단골집은 육고기, 생선회, 탕, 면류로 나뉩니다. 그 중 선택만 하면 되지요.

음식 궁합도 바뀌더군요. 오십 이전에는 육류를 더 선호하고, 오십 이후에는 해물 쪽을 찾는 경향입니다. 왜 그럴까? 나이 드신 분들은 "고기 먹으면 더부룩해 부담스럽다"며 소화기 계통에 문제 있음을 하소연하데요. 이런 경우, 고기와 해산물을 섞는 중간 지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단골이 된 음식점이 바로 여수 문수동의 '수복갈비'입니다.

생삼겹과 주꾸미의 조화 '주꾸미볶음'

주꾸미볶음 한상차림입니다. 달콤하고 매콤한 게 스트레스 확 풀어줍니다.
 주꾸미볶음 한상차림입니다. 달콤하고 매콤한 게 스트레스 확 풀어줍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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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당은 꼭꼭 숨겨두고 소개하지 않았던 제 단골집입니다. 최초로 공개하는 이곳은 육류와 해물이 잘 어울립니다. 주인장 요리 경력은 25년째. 그도 처음에는 고기만을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여수가 바닷가라 손님들이 해물에 민감한 편입니다. 이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단골들에게 육류와 해물을 섞어 음식을 냈답니다. 그 결과 반응이 엄청 좋았다는군요. 이렇게 만들어진 메뉴가 생삼겹 해물삼합, 낙지볶음, 주꾸미볶음입니다.

손님이 꽤 있습니다. 주꾸미볶음을 시켰습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인 표정이 다른 날과 달리 살아 움직입니다. 거기엔 아쉬움까지 함께 들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뭔가 말할 듯 말 듯 합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이럴 땐 상대방이 스스로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자랑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배려지요.

"형님, 그간 별고 없지요?"
"있네. 우리 딸, 날 잡으려고. 동갑인 서울 남자를 사귄대. 딸이 좋다니 나도 좋네. 남자가 여유 있고, 배려할 줄 알고, 암튼 마음에 들어. 근데 내 기분이 좀 그래. 시원섭섭 하달까. 딸 가진 아빠 마음이 다 이렇겠지."

대박. 지인 딸, 나이 서른 둘. 요즘 늦게 결혼하는 추세라 늦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인연이 닿은 짝이 나타났나 봅니다. 둘 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닌답니다. 남자 집안 괜찮고, 생김새도 빠지지 않는다니 축하할 일이지요. 하지만 애써 키운 딸이 품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서운하겠죠.

이야기 도중, 밑반찬이 나왔습니다. 주꾸미볶음 밑반찬으로 소고기 육회, 선지, 문어, 다시마, 뼈 따귀 해장국에다, 묵은 김치, 물김치, 고구마, 양념된장, 기름장, 초장, 파프리카, 야채샐러드, 상추, 깻잎 등 푸짐합니다.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마시는 술안주로 육회와 선지, 문어 등은 제격이지요.

불판이 달궈지면 꿈틀꿈틀 움직이는 생물 '주꾸미'

주꾸미와 삼겹을 싸 한입 먹으면...
 주꾸미와 삼겹을 싸 한입 먹으면...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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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서울에서 전자 쪽 일을 7년 했어요. 하루는 이 일 해서 먹고 살겠냐 걱정되더라고요. 취미가 있던 요리 쪽을 알아봤더니 괜찮겠더라고요. 그 길로 고깃집에 들어가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밑바닥부터 5년간 죽어라고 일했어요. 서울서 150 받던 걸 이쪽에선 30만원 주대요. 돈이 아니라 음식 배우는 게 우선이었죠. 지금은 단골이 많아 먹고살 만해요. 고맙지요."

단골집 강윤식 사장의 회고담입니다. 그는 요리를 배우면서 "음식에 대한 고집(철학)까지 생겼다" 합니다. 그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재료는 신선한 걸 쓴다. 둘째, 해물은 무조건 살아 있는 생물을 쓴다. 셋째, 손님들에게 내는 모든 음식은 직접 만든다. 그의 아내, 김미순씨가 전하는 남편의 고집을 들어보면 믿음이 충만할 겁니다.

"누가 강씨 아니랄까봐 고집이 세요. 새조개는 파지를 써도 괜찮은데 꼭 좋은 것만 써요. 가격이 세 배나 차이 나는데. 이게 남편의 '내 돈 벌겠다고 남 등쳐먹으면 안 된다'는 고집이죠. 남들은 다 하는데. 어떨 땐 이런 남편이 너무 답답해요."

이런 마음을 알기에 단골이지요. 사실 겨울이 제철인 새조개는 정품과 파지 맛에 별 차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인장은 "새조개 파지를 쓰면 손님들이 껍질을 씹을 수 있다"며 "파지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꾸미는 "알이 찬 걸로만 콕 집어 골라 온다"네요. 손님들이 주꾸미를 찾는 건 알이 통통한 걸 먹고 싶은 마음이란 걸 알기에. 물론 가격은 더 쳐 준답니다.

드디어 주꾸미볶음이 나왔습니다. 처음 보면 이게 뭐지 싶습니다. 양배추, 대파, 양파, 고추 등에 가려 생삼겹과 주꾸미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판에 불을 켜고, 불판이 달궈지면 뭔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그게 바로 야채 밑에 숨어 있던 주꾸미입니다. 이걸 보면 말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생물 주꾸미를 재료로 쓴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주꾸미볶음의 끝판왕, 주꾸미 대가리 통째 먹기

주꾸미는 대가리를 먹어야 푸지게 먹은 것 같이 포만감이 들지요.
 주꾸미는 대가리를 먹어야 푸지게 먹은 것 같이 포만감이 들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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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볶음의 주재료인 주꾸미와 생삼겹이 의외로 잘 어울린 음식 궁합입니다. 고기 좋아하는 사람과 해물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절묘하게 버무린 거죠. 단골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이 입맛 살게 한다는 거. 음식의 깊은 맛은 아무나 못 내지요. 묘한 건, 매워서 땀이 나는데 요상하게 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꾸미는 알이 통통한 봄이 제철입니다. 하지만 잡는 건 일 년 내내 잡습니다. 주꾸미 잡는 방법은 봄과 가을이 다릅니다. 봄 주꾸미는 주로 통발 등을 사용하는 반면, 가을 주꾸미는 주로 주낙으로 잡습니다. 먹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먼저 주꾸미와 생삼겹을 따로 따로 먹어도 좋습니다. 또 주꾸미와 삼겹살을 같이 상추 등에 싸 먹어도 맛납니다.

제 경우, 양파 쌈을 즐깁니다. 양파를 달라 해서 주꾸미와 삼겹살을 같이 올려 싸 먹으면 알싸한 양파와 어울려 매콤함과 상큼한 맛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이걸 적당히 먹고 나면, 시금치와 당면이 나옵니다. 이건 꼭 리필처럼 공짜로 먹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주꾸미볶음의 끝판왕은 역시 대가리입니다. 머리는 잘라서 먹어도 되나, 제 경우 통째로 먹어야 푸지게 제대로 먹은 포만감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은 볶음밥입니다. 콩나물, 김 가루 등과 밥을 넣고 비벼 볶아 줍니다. 이건 조금 눌려 딱딱 긁어 먹어야 제 맛이지요. 땀 흘리며 함께 먹었던 지인의 한 마디가 뿌듯합니다.

"딸 결혼한다고 서운했던 마음이 주꾸미 덕에 속 시원하게 확 풀렸네."

주꾸미볶음밥을 비비는 중입니다.
 주꾸미볶음밥을 비비는 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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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주꾸미볶음, #주꾸미 대가리, #생삼겹, #여수맛집, #단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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