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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신 부모님께 바친 사랑비.
 돌아가신 부모님께 바친 사랑비.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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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일을 몇 십 년 히 왔는디 비석에 새긴 내용이 좀 특이해서 언제 자네랑 차 한 잔 헐라고 힜네. 뭔 비를 세우간디 고로케 특이허게 글을 새겼는가?"

"자식들 뒷똥구녘 대느라 날마다 맨발로 논밭을 뛰어다니며 손발이 소가죽이 되도록 고생한 부모님의 노고를 한시도 잊을 수 없어 이 비를 세우려고 아내 모르게 제가 용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허허! 그랬구만. 어쩐지 비에 새길 문구가 참으로 특이허다 싶었제. 요새 누가 그렇게 허간디. 어떡허면 부모님 재산 있는 것 좀 가져갈까 그런 생각들이나 허제. 참말로 효자고만. 자넨 복 받고 살 것이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나도 그 비에 보탤라네. 내가 벼라별 종류의 비석을 다 파봤지만 이러케 뜻있는 비를 파 본 적이 없네"

비용을 지불하려고 돈 봉투를 내밀었더니 주인은 봉투에서 만 원 권 다섯 장을 세더니 내 앞에 내놓았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에서.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 펴냄) 첫 글, '월곡댁과 월곡양반에게 사랑비를 바칩니다' 그 일부다. 저자 김도수는 <전라도닷컴>과 <오마이뉴스>에 그가 자란 전북 임실의 섬진강변 한 산골마을인 진뫼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기사들 일부에 좀 더 많은 글을 더해 책으로 묶은 것이다.

부모님 사랑비 세운 막내 아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책표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책표지.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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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자주 "이 다음에 취직이 되면 주말마다 술 한 병 사들고 진뫼마을로 달려오라"고 말씀하시곤 했단다. 아무래도 애잔할 수밖에 없는 막내아들 보고 싶은 그 마음을 그리 표현하신 것이다.

취직이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계셨다. 첫 월급을 타던 날, 평소 말씀하셨던 것이, 그러나 한 번도 그리 해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쳤단다. 그래서 어머니 몫의 통장 하나 따로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는 마음으로 속옷 값을 넣었다.

그 뒤로도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이건 술이예요", "어머니 이건 겨울외투예요", "이건 용돈 드리는 거예요"라며 통장에 돈을 넣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집과 가장 가까워 부모님이 그만큼 가장 많은 땀을 흘리셨던 집 앞 텃밭에 사랑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런 책이다 어찌어찌 쓰다가 아무래도 뭔가 미흡해 다시 쓰자'를 되풀이 하는 책이 있다. 저자를 잘 알고 있거나, 특별한 공감으로 읽었거나 등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설 때도 그렇다. 이 책도 그중 하나, 감동과 아쉬움, 부러움, 바람 이런 것들이 분분해 읽다가 놓았다가, 쓰다가 다시 쓰다가를 되풀이한 책이다.

가족이 많이 모여 좋지만 부산하기도 한 명절이나 이런 저런 날 말고, 좀 한갓진 날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반찬거리 몇 가지 사들고 가 밥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올해도 그리 하지 못하고 어느새 늦가을이다. 아니 오며 가며 하루로도 충분한 데 말이다.

시가(시댁)는 그리 멀지 않아 이래저래 자주 만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친정은 일부러 날짜를 잡아야 할 정도로 먼 거리라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덧 친정아버지가 팔순 중반에 접어들었다. 100세 시대라 하나 누가 봐도 마음 편한 나이는 결코 아니다.

이런지라 이미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비석에 새긴 그 사연으로 시작해 가족의 큰일들은 물론 소소한 일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이 책을 어찌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으랴.

 책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개발로 이제는 볼 수 없는 옛 시골마을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경과 정서, 그 이야기와 사진들이 풍성하다.
 책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개발로 이제는 볼 수 없는 옛 시골마을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경과 정서, 그 이야기와 사진들이 풍성하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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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에는 아마도 시골이 고향인 40대 중반 이상이라면 가끔 떠올리거나 추억하며 그리워할 그런 시골마을의 풍경들과 시골사람들만의 정서가 풋풋하다. 훈훈하고 생각만으로도 막연히 편안한 고향의 인정과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저자에겐 '고향을 징글징글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것들까지 책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한편으론 민망하기도 하나, 엄연한 우리의 삶인 그런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기도 했다. 먹어봐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시골밥상만의 질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들? 마을의 돌멩이 하나까지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고 기록한 듯한 그런 글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돌멩이 하나까지 허투루 하지 않은 기록

 저자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의 정성으로 치료를 받아 여름이면 풍성한 그늘을 다시 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마을의 정자나무가 제13회 풀꽃상을 받던 날 마을사람들이 둘레를 돌고 있다.
 저자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의 정성으로 치료를 받아 여름이면 풍성한 그늘을 다시 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마을의 정자나무가 제13회 풀꽃상을 받던 날 마을사람들이 둘레를 돌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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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저자와의 메일 인터뷰 일부.

- 고향마을과 고향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 책으로 쓸 생각을 했는가?
"1984년 봄, 제대한 후 한동안 어머니 따라 호미 들고 고추밭이며, 콩밭 등에 풀 매러 다녔다. 그 시절 시골 아이들이 예사로 그랬던 것처럼 농사일 어지간히 하며 자랐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안쓰러워하실 정도로 입대 직전까지 농사일을 엄청 하다 갔는데, 제대 후 그렇게 했던 농사일이 예전과 다르게 와 닿았다. 그래서 일거다. 품앗이하는 마을 어머니들과 한 고랑씩 밭을 매며, 뜨거워진 발바닥 옮겨가며 그분들에게 들었던 그 한많은 삶이 이후 많이 생각난 것은. 언젠가는 꼭 이렇게라도 기록하겠다는 생각까지 든 것은.

닥나무 사이에 심어진 콩. 한 톨이라도 더 건져야겠다는 마음에서 이 악물고 뙤약볕에서 올라오는 땅의 열기 식히려 함께 노래 부르고, 애달픈 콧노래 소리 흥얼거리며 하루 해가 저물던 그런 삶, 비록 번듯한 것은 아니나 함께 나눠 먹었던 것들, 우리 아버지처럼 집안일을 마이크 잡고 떠들어도 시끄럽다고 비난하기보다 허허 웃거나 함께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가난을 이기며 건너온 시골 민중의 이야기도 우리네 삶 그 한 역사 아니겠는가. 그래서 꼭 쓰고 싶었다. 제2, 제3 진뫼 마을 이야기들을 쓰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 주말마다 고향마을로 가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안다. 명절이나 휴가 등 어쩌다 가는 것과 달리 자주 가는 만큼 고향마을의 많은 것들이 보일 것 같다.
"떠들썩했던 강변마을은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늙으신 부모님 몇 분만이 헛기침 해대며 경사진 논밭은 묵정밭으로 변해가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계획하여 추진하기보다 마을 지키는데 힘을 보태 왔다. 지금까지 내가 고향마을에 가장 잘 한 게 있다면 주말마다 어린자식들 앞세워 '아이들 소리' 냈게 했던 것이다.

앞집 점순이네 어머니께서 "귀신 나올 집에 도수가 불 키고 들어와 내가 얼매나 좋은지 몰라"라고 하더라. 이웃에 '희망의 등'을 켠 일이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섬진강댐 아래 섬진강적성댐 건설을 하려고 해 마을 분들과 두 팔 걷고 나섰던 일이며, 시름시름 앓으며 아파하던 정자나무에게 치료를 받게 하여 제13회 풀꽃상을 안겨주기도 하고, 사라져간 징거다리를 다시 놓고, 훔쳐간 허락바위를 찾아와 제자리에 놓고, 마을 취수장에 양계장이 들어서려고 해 말리는데 앞장서서 늙으신 부모님만 사는 마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추석날 동네 한수 형님 집에서 고향에 온 사람들과 윷놀이를 하고 있다.
 추석날 동네 한수 형님 집에서 고향에 온 사람들과 윷놀이를 하고 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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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썰렁하다 못해 황량함마저 느껴져 아쉽고 슬픈 내 고향마을은 50여 가구가 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닌 1980년대 중반, 대부분의 집마다 서너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으니 얼핏 200여 명이 한 마을에서 잠들고, 하루를 열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큰 마을이니 날이면 날마다 많은 말들이 오가고, 시시콜콜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좀 많은 일들이 있었으랴. 그런 마을이 이젠 우리나라 여느 시골마을들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만 한 분 또는 두 분이 띄엄띄엄 외롭게 서 있는 집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동네 가운데로 국도 1번 신작로가 지난다. 조선시대 8대 장이었다는 옛 원평장터가 지척이다. 고향마을은 원평장의 연장선을 뜻하는 이름 '새장터(신장마을). 평소에는 과거시험 등으로 한양으로 가는 사람들이, 장날에는 장꾼들이 머무는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동학혁명군들이 패전하며 그 시신들을 묻어 생긴 공동묘지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데, 기록되지 못한 채 세월만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지라 언제부턴가 막연히, 옛 고향마을과 그 마을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록해두지 못했음이 아쉽고, 후회됐다. 우리들 대부분 이름조차 특별하게 기록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나 실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들이며, 민중의 역사 그 주인공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처럼 누군가 또 기록하고 기록해 많은 기록들이 모이면 소중한 민중생활사 또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고향 그 소중한 기록이 될 것 아닌가 싶어서다. 이 책을 계기로, 아니 힌트 삼아 이런 기록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김도수) | 전라도닷컴 | 2015-06-20 ㅣ15,000원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김도수 지음, 전라도닷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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