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JTBC 드라마 <송곳> 공식 포스터 ⓒ JTBC


"수고 많으십니다. 아무개입니다. 요즘 <송곳>이라는 노동 관련 드라마를 보다 엄미야님이 작년에 많이 도움 주시고 하던 생각이 나서 안부 차 연락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송곳> 대박~!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은 알겠네. 너의 삶을 응원한다."

사실 나는 드라마 송곳을 처음에 보지 않았다. 드라마는 물론 원작 만화도 보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찾자면 '불편함', '왠지 불편할 것 같을 선입견' 때문이었다.

<어셈블리>에서 불편했던 것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어셈블리>가 그랬다. 드라마를 보는 대다수의 사람은 조선소 해고자인 진상필이 국회의원이 되어 펼치는 드라마틱한 활약상에 환호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현실에서는 진상필이 국회를 바꿔낼 수도, 국회는커녕 당 내부조차도 바꿔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국회의원 진상필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해피엔딩이겠지만, 일종의 '운동권 표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린 <어셈블리>가 나는 영 불편했다.

대중매체가 접근하는 노동운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마치 노동운동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듯. 그런 생각이 대중에게 각인되도록 최면을 거는 게 대중매체의 역할이라는 듯. 늘 정의로운 정치인, 출세한 운동권, 소시민을 대신할 영웅을 앞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드러난 운동권 출신의 명망가들은 소수이고, 그들은 때로는 그들의 의지에 따라, 때로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현실정치로 깊이 빠져든다. 노동현장은 외면당한다. 오히려 노동현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그림자 같은 훨씬 더 많은 수의 노동운동가들이다. 이들이 아직도 길게는 십수 년, 짧게는 수십 년째 노동현장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다. 현장투신이라는 말이 지금도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현장으로 취업하기도 하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활동비를 받으며 노동조합 만드는 일을 조력하기도 한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소수의 정치인도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있으므로 노동문제에 대해 입법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힘은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사람,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을 조력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리라.

<송곳>에 감동하는 수많은 구고신과 이수인들

 '송곳' 지현우, 깔끔한 노동자편 과장님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드라마세트장에서 열린 JTBC 특별기획 <송곳> 현장공개에서 푸르미마트 과장 이수인 역의 배우 지현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송곳>은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부당해고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토, 일요일 밤 9시 40분 방송.

▲ '송곳' 지현우, 깔끔한 노동자편 과장님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드라마세트장에서 열린 JTBC 특별기획 <송곳> 현장공개에서 푸르미마트 과장 이수인 역의 배우 지현우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송곳>은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부당해고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토, 일요일 밤 9시 40분 방송. ⓒ 이정민


'송곳' 안내상, 장난꾸러기 노동상담소장님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드라마세트장에서 열린 JTBC 특별기획 <송곳> 현장공개에서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 역의 배우 안내상이 드라마 속 장면을 재연하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송곳>은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부당해고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토, 일요일 밤 9시 40분 방송.

▲ '송곳' 안내상, 장난꾸러기 노동상담소장님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드라마세트장에서 열린 JTBC 특별기획 <송곳> 현장공개에서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 역의 배우 안내상이 드라마 속 장면을 재연하며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요즘 우리 조합원들은 사업장마다 열심히 <송곳>을 보고 서로 감상을 밴드에서 공유한다. 대부분 조합원이 감동하는 부분은 "세상의 잉여 같던 우리 얘기가 드라마로 다뤄지다니"라는 점이다. 가족에게도 설명하기 어렵고, 친구들에게도 이해시키기 어려웠던 노동조합, 내가 하는 그 노동조합 이야기를 드라마로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격스럽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드라마 <송곳>을 보고 처음으로 떠올린 건 그들이었다. 아직도 현장에 있는 이들, 아직도 노동조합 하나 만드는 것에 목숨 거는 미련한 이들. 수많은 구고신들, 수많은 이수인들. 적어도 <송곳>은 헌신과 희생으로만 살아내던 그림자 같던 노동운동가들의 삶과 노동자들의 진짜 삶, 그리고 지금까지 금기어였던 '노동조합'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송곳>이 나 같은 꼰대가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해하는 의미도 있지만, 너와 같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울림이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14일에 민주노총이 뭔 일낼 것 같더구먼. 잘 되고 있는 거지? 파이팅~!"

정작 나는 잘 챙겨보지 않았던 드라마 <송곳>이 시작된 뒤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 안부와 응원 문자를 받았다. 노동조합 10개를 만들면 2~3개만이 겨우 살아남는 척박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1년 동안 조직을 잘 유지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런데 처음 상담한 기억을 떠올리며 누군가 보내준 "감사하다"는 문자에 내가 더 감사했다. 맨날 "너 아직도 그러고 사느냐"면서 "서울 오면 밥이나 살게"라던 선배,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것만 같던 그 꼰대 같던 선배가 보낸 "너의 삶을 응원한다"는 문자에 가슴이 훈훈해졌다. <송곳> 덕분에 요즘 이런 일을 경험하고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또 다른 <송곳>이 등장해, 조선소나 반도체 공장 같은 더 깊숙한 현장을 다루어주길 바라는 나의 욕심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송곳>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무너지고 "나도 한 번 노동조합을 해보자"는 시도들이 봇물 터지길 기대해본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엄미야 시민기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송곳 노동조합 노동운동 구고신 이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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