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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 큰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꽃섬길이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지면서 기암절벽과 다도해 풍광을 선사한다.
 하화도 큰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꽃섬길이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지면서 기암절벽과 다도해 풍광을 선사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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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 옥남, 유진. 길에서 운명처럼 만난 세 여자가 꽃섬을 찾아간다. 모든 슬픔을 잊게 해준다는 섬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꽃섬은 마음의 안식처요, 향기 넘실대는 낙원이었다. 10여 년 전, 송일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꽃섬>의 주인공들 이야기다. 이들은 섬으로 가는 길에 평안을 찾고,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그 연결고리가 섬여행이었다.

영화 속 세 여자가 찾아간 섬이 하화도(下花島)였다.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다. 임진왜란 때 안동 장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뗏목을 타고 피난을 가던 중 구절초 무더기를 보고 첫발을 디뎠다.

섬에 구절초와 동백꽃, 국화, 진달래꽃이 사철 많아서 꽃섬으로 불렸다. 항해하던 이순신 장군이 흐드러진 꽃을 보고 꽃섬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그 꽃섬을 찾아간다. 지난 10월 17일이었다.

몽돌해변에서 본 하화마을과 선착장. 몽돌해변은 꽃섬길에서 유일하게 바닷가를 따라가는 코스다.
 몽돌해변에서 본 하화마을과 선착장. 몽돌해변은 꽃섬길에서 유일하게 바닷가를 따라가는 코스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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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 마을회관 앞에서 개도댁이 가을 햇볕에 땅콩을 말리고 있다. 할머니는 간밤에 손전등을 들고 밭에 가서 캤다고 했다.
 하화도 마을회관 앞에서 개도댁이 가을 햇볕에 땅콩을 말리고 있다. 할머니는 간밤에 손전등을 들고 밭에 가서 캤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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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는 섬의 생김새가 여성의 굽 높은 구두(하이힐)를 닮았다. 복을 일구는 복조리와도 비슷하다. 언뜻 해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면적은 0.71㎢(21만5000평)로 크지 않다. 주민등록상 57명, 실제는 30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섬 출신으로 여수에서 3년 전 들어온 임광태(54)씨가 이장을 맡고 있다.

하화도는 70, 80년대에 근해에서 물고기와 개불, 해삼을 잡고 미역을 뜯으며 부자섬으로 살았다. 지금은 문어를 잡을 뿐이다. 일할 사람이 없다. 밭에는 부추를 심는다. 마을사람들은 소풀을 닮았다고 '소불'이라 부른다. 봄이 제철인 부추는 지금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고구마와 땅콩도 조금 재배한다.

선창에서 개도댁(78) 할머니가 가을햇살에 땅콩을 널고 있다. 간밤에 손전등을 들고 밭에 가서 캤단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 부추전과 라면, 막걸리를 팔고 있다. 낮에는 마을회관에서 함께 일을 한다. 이익금도 똑같이 나눈다. 밭일은 이른 아침이나 밤 시간을 이용해서 한다. 할머니가 밤중에 땅콩을 캔 이유다.

하화도 마을회관을 겸한 경로당 전경. 마을 할머니들이 여기서 부추전을 부치고 라면을 끓여준다.
 하화도 마을회관을 겸한 경로당 전경. 마을 할머니들이 여기서 부추전을 부치고 라면을 끓여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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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화도 꽃섬길에서 만나는 마을 담장벽화. 동백나무와 함께 길바닥에 동백꽃이 떨어진 모습까지도 그려져 있다.
 하화도 꽃섬길에서 만나는 마을 담장벽화. 동백나무와 함께 길바닥에 동백꽃이 떨어진 모습까지도 그려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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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의 해안 벼랑을 따라 도는 꽃섬길이 있다. 거리가 5.7㎞에 이른다. 뉘엿뉘엿 서너 시간 걸린다. 길은 마을이 있는 선창에서 시작된다. 현수막에 써서 담벼락에 내건 시 한 편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생진의 시 '서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다.

'편지 쓰고 싶다./ 아무에게나 쓰고 싶다./ 적어도 이만한 외로움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 쓰고 싶다./…(중간 생략)…/섬에는 산 것이 많다./ 물고기가 살아있고, 미역이 살아있고, 인정이 살아있고, 기도가 살아있다./ 나무뿌리가 살아있고 영혼이 살아 있다는 거, 즉 생명이 살아 있다는 거,/ (아래 생략)'

담벼락에 꽃그림도 그려져 있다. 동백나무 그림 밑에 낙화까지 그려놓았다. 담장의 크고 작은 돌덩이를 이용해 물고기도 그렸다. 재치가 묻어난다. 마을에 사는 주민이 직접 그렸다는 게 김영구(62) 하화교회 목사의 얘기다.

꽃섬길의 첫번째 휴게정자 주변에서 만난 풍경. 풍광도, 길도 다소곳하고 깔끔하다.
 꽃섬길의 첫번째 휴게정자 주변에서 만난 풍경. 풍광도, 길도 다소곳하고 깔끔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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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정자에서 내려다 본 하화마을 풍경. 그 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하늘하늘 걷고 있다.
 휴게정자에서 내려다 본 하화마을 풍경. 그 길을 따라 여행객들이 하늘하늘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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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은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서 해안을 따라 간다. 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걷는다. 바다 너머로 백야도와 제도, 개도가 떠 있다. 오른편은 숲이고 마을이다. 섬 지형의 여성 구두 굽 부분을 돌아서면 첫 번째 정자를 만난다. 마을에서 1.8㎞ 떨어진 지점이다. 목덜미를 적시는 땀을 닦으며 뒤돌아본 풍광이 절경이다.

길은 해안을 따라 두 번째 휴게정자를 거쳐 순넘밭넘 구절초공원으로 이어진다. '넘'은 작은 고개를 일컫는 섬말이다. '순넘밭넘'은 순이라는 사람의 밭이 있던 작은 고개를 가리킨다. 구절초공원이지만, 꽃은 지고 없다. 길섶에서 몇 송이씩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국내 처음 1995년에 들어선 태양광발전소도 마을에 들어앉아 있다. 지형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윗꽃섬 상화도(上花島)도 저만치 보인다. 하화도와 상화도가 다정한 연인 같다.

꽃섬길 풍경. 해안 벼랑을 따라가던 길이 숲길로 이어진다.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비교적 무난하게 걸을 수 있다.
 꽃섬길 풍경. 해안 벼랑을 따라가던 길이 숲길로 이어진다.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비교적 무난하게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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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에서 만나는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여행객들이 길가에 서서 쉬면서 해안과 공원의 풍광을 바라보고 있다.
 꽃섬길에서 만나는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여행객들이 길가에 서서 쉬면서 해안과 공원의 풍광을 바라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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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공원에서 바로 애림민 야생화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선창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무시한다. 하화도의 진짜 비경을 만나기 위해서다. 꽃섬길은 큰산전망대와 깻넘전망대를 거쳐 큰굴삼거리로 이어진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는 나무데크로 연결해 놓았다. 해안의 기암괴석과 다도해 풍광이 동행한다.

큰산전망대는 하화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고 이름 붙었다. 높이가 해발 118m에 이른다. 풍광이 거침없고, 아름답다. 고흥 나로우주센터도 지척이다. 큰산전망대에서 조금 가면 깻넘전망대다. '깻넘'은 깨밭으로 가는 길에 넘던 작은 고개를 가리킨다.

전망대를 캠핑족들이 점거하고 있다. 한낮인데도 텐트를 펴놓은 채 독차지하고 있다. 여행객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빤히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 모습이 얄밉다.

깻넘전망대를 점거하고 있는 캠핑족들. 한낮인 데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텐트도 치우지 않아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깻넘전망대를 점거하고 있는 캠핑족들. 한낮인 데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텐트도 치우지 않아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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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 풍경. 길이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지면서 다도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해주는 길이다.
 꽃섬길 풍경. 길이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지면서 다도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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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에서 만나는 큰굴. 왼편 절벽에 큰굴이 뚫려 있다. 파도와 세월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꽃섬길에서 만나는 큰굴. 왼편 절벽에 큰굴이 뚫려 있다. 파도와 세월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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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넘전망대에서 길은 큰굴삼거리로 이어진다. 막산전망대와 이어주는 출렁다리 공사를 하고 있다. 내년 4월까지 마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큰굴삼거리에는 큰굴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에 파여 있다. 파도와 세월의 합작품이다. 옛날에 밀수꾼들의 비밀장소로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길은 이제 막산전망대로 간다. '막산'은 섬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마지막 산을 뜻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광이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나무의자도 놓여 있어서 차분히 앉아 지친 일상을 풀 수 있다. 절벽에 아스라이 피어난 하얀 구절초가 예쁘다. 길섶에서 빨갛게 물든 마삭줄도 요염하다.

막산전망대 앞에 떠 있는 섬은 장구도다. 섬의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 감성돔과 농어가 많이 잡히는 포인트로 소문 나 있다. 막산을 돌아 큰굴삼거리로 다시 내려오면 몽돌해변이 펼쳐진다. 바닷물도 잔잔하다.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막산전망대 풍경. 그 앞에 떠있는 작은 섬이 장구도다.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막산전망대 풍경. 그 앞에 떠있는 작은 섬이 장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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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길 풍경. 예쁘게 단장된 길에 갖가지 꽃이 피어 여행객들을 반겨주고 배웅해 준다.
 꽃섬길 풍경. 예쁘게 단장된 길에 갖가지 꽃이 피어 여행객들을 반겨주고 배웅해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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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해변을 따라 선창으로 이어진다. 몽돌해변 너머에 또 하나의 꽃섬 상화도가 떠 있다. 주황색으로 단장된 집들이 이국적이다. 해변가에 자리한 애림민 야생화공원도 소담스럽다. 감국과 산국, 해국이 흐드러져 있다. 쑥부쟁이와 범의꼬리, 털머위도 보인다. 코스모스도 몇 송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몽돌과 바닷물이 연주하는 낮은 해조음이 귓전을 간질인다.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연주음이다. 영화 속 여자들처럼, 가슴 한쪽에 남아있던 근심과 걱정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 활력과 희망이 채워졌다. 몸도 마음도 맑고 서늘하다.

몽돌해변에서 바라 본 상화도 풍경. 하화도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위꽃섬이다.
 몽돌해변에서 바라 본 상화도 풍경. 하화도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위꽃섬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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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서순천나들목에서 17번·22번국도를 번갈아 타고 화양면 소재지를 지나 백야대교를 건넌다. 하화도로 가는 배는 백야선착장(☎061-686-6655)에서 오전 8시, 11시30분, 오후 2시50분 출발한다. 30분 걸린다. 여수여객선터미널(☎061-665-6565)에선 오전 6시, 오후 2시 들어간다. 1시간 10분 걸린다.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하화도, #꽃섬길, #꽃섬, #깻넘전망대,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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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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