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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의 두 번째 손가락은 앞으로 모으고 나머지 손가락은 깍지를 끼워 상대편의 항문을 찌르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똥침'의 사전적 의미다.
 '양손의 두 번째 손가락은 앞으로 모으고 나머지 손가락은 깍지를 끼워 상대편의 항문을 찌르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똥침'의 사전적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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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의 두 번째 손가락은 앞으로 모으고 나머지 손가락은 깍지를 끼워 상대편의 항문을 찌르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똥침'의 사전적 의미다. 학창시절 친구 사이에 똥침을 놓는 짓궂은 장난을 했거나 당한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리라.

그런데 이 똥침으로 형사법정에까지 서는 사람도 있다. 똥침을 놓은 사람 입장에선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고 반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선 또 다르다.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똥침은 장난에 불과할까, 아니면 성추행일까. 얼마 전 판결이 선고됐던 똥침 사건을 통해 답을 찾아가보자.

똥침은 장난일까, 강제추행일까

이아무개(61)씨는 서울 어느 구립도서관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청소구역인 여자 화장실에서 A양(7)이 손을 씻는 것을 보고, 뒤에서 손가락으로 A양의 항문 주위를 한 차례 찌르고, 다시 배를 한 번 찔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양의 어머니는 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여자아이들 2~3명이 물장난을 하고 있길래 '물장난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른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씨를 기소했다. 적용법률은 성폭력처벌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이었다. 이씨의 '똥침'이 A양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은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했다. 먼저 이씨가 똥침을 놓았는지를 살폈다. A양이 "엉덩이 부분에 똥침을 하였다"고 수차례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에 비추어 이씨가 손가락으로 항문 주위를 찌른 것으로 인정됐다.

또한 이씨 스스로 'A양의 배를 찔렀다'고 인정했으므로, 손가락으로 항문과 배를 1회씩 찌른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게 성추행에 해당하는지 법적인 판단이 남게 되었다.

현행 판례에 따르면 강제추행죄의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은 '주관적인 구성요건으로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상대방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그러한 인식 하에 행위를 하는 경우라야만 이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1심] "성적 수치심 유발행위로 보기 어렵다"

1심은 어땠을까.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 재판장 김경)은 강제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형사처벌 대상으로서의 추행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씨에게 추행의 의도가 없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A양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거나 손으로 문지른 것이 아니라 단지 손가락으로 배와 엉덩이를 1회 찌른 것에 불과하다"면서 "신체 부위나 접촉 방법에 비춰볼 때 명백히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강제추행 의도도 없었다고 보았다. A양은 부모에게 "이씨가 장난으로 찔렀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때는 토요일 오후 3시로 주위에 사람이 많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 비춰 재판부는 "이씨가 대담하게 추행의 고의로 A양의 항문 주위와 배를 손가락으로 찔렀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덧붙여 "이씨가 A양이 물장난치는 것을 지적하면서 옆구리 부분을 접촉하려 하였으나 엉덩이 부분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1심은 무죄로 결론이 났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씨의 똥침은 처벌 대상으로 삼을 만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이씨에게 추행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2심] "성적 목적 없어도 성적 자유 침해 행위"

하지만 2심(서울고법 8형사부 재판장 이광만)의 법적 평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2심 역시 "이씨의 행동이 성적 만족감을 얻을 목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성적 목적이 없었더라도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면 추행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심은 피해자인 A양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A양 입장에서 보면 여자 화장실에서 처음 보는 이씨로부터 기습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강제당한 것"이라며 "이는 A양이 의도하거나 원하지 아니한 강요된 행위이고 특히 항문주위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부위에 해당한다"며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비록 성적인 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도 친분 관계 없는 A양을 상대로 불시에 두 손을 모아 항문 주위와 배를 찌른 행위는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숙한 A양의 성적 정체성의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다."

2심은 이씨가 장난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A양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었던 이상, 추행의 범의(고의)도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2심은 유죄였다. 성적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으로 민감할 부위를 접촉한 행위는 강제추행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미성년자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30년 또는 벌금 3천만 원~5천만 원'으로 전혀 낮지 않다. 재판부는 지난 16일 이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다만 성범죄 전력이 없고 추행의 정도가 약한 점을 참작,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판결했다. 이씨는 상고장을 제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60대 남성이 7세 여자아이에게 똥침을 놓았다. 이 행위를 놓고 1심이 범죄까지는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2심은 강제추행으로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분명한 것은 현행 대법원 판례로 기준으로 보면 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더라도 '객관적'인 평가에 따라 강제추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난으로 똥침을 놓았더라도 성범죄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적 행위 아닌 똥침도 폭행·상해로 처벌 가능

한편,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지 않거나 성적 도덕관념에 어긋나지 않는 똥침도 범죄가 될 수 있다. 2009년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한 햄버거를 기다리던 여성에게 똥침을 놓은 남성이 폭행죄로 벌금형(100만 원)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 만일 똥침을 당한 피해자가 다쳤다면 상해죄 적용도 가능하다. 성적 행위 아닌 똥침, 동성 간의 똥침도 처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똥침을 학창시절 추억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현실에서 똥침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었다. 판례가 이를 증명하듯이 말이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똥침, #판결대판결, #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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