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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한참 고구마를 캐다가, 땅콩 10 여개를 캐냈다. 어찌된 일일까.
▲ 증거 사진 아내가 한참 고구마를 캐다가, 땅콩 10 여개를 캐냈다. 어찌된 일일까.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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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거 봐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옆 고랑에서 고구마를 캐던 아내가 놀라며 큰 소리로 말한다. 무슨 일일까. 고구마를 캐다 말고 내가 아내에게 눈길을 준다. 조그만 내 눈이 세 배는 커진 듯하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일이다.

"앗.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아내가 가리킨 고구마 밭고랑에 땅콩 한 가족이 겸연쩍게 배시시 웃고 있지 않은가. 살다 살다 고구마 밭에서 땅콩 열린다는 건 처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땅콩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 못해 굵고 튼실한 놈들이다. 혹시나 옆 고랑에서 땅콩뿌리가 땅 속으로 기어 나왔는지 확인하고 확인했지만, 그런 흔적은 없다. 혹시나 들짐승이 그랬다면, 고구마 밭 표면에 널려 있어야 했다. 그런데, 땅콩은 고구마 가족들과 함께 땅 속에서 사이좋게 파묻혀 있었다.

우리의 생각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뒤적거리다가, '들짐승'에 이르자 한 동물이 떠오른다.

"그럼 혹시 그 놈들이."

이미 아내와 나는 이심전심이 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을 굴리고 굴리다 얻어낸 결론은, 이젠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정설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래 틀림없다. 그 놈들이다.

"바로 두더지."

아내와 내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선언이 되자, 우리의 안개정국은 확 걷히고, 새 세상이 다가와 있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가 할 일이 생겼다. 바로 그 추리를 증명하는 거다. 괜히 엉뚱한 놈들을 범인으로 몰아 응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증은 없는데, 심증만으로 범인을 체포 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일만큼 잔인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범인은 두더지, 수사에 나서다

 사진 속 고구마는 일상의 고구마보다 훨씬 크다. 농사를 짓다보면, 가끔  일탈의 상황이 생긴다. 이때 그 일탈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나눌 거리를 제공한다.
▲ 대형 고구마 사진 속 고구마는 일상의 고구마보다 훨씬 크다. 농사를 짓다보면, 가끔 일탈의 상황이 생긴다. 이때 그 일탈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나눌 거리를 제공한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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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아내와 내가 고구마 밭을 파봤다. 아내와 나는 무슨 명탐정 코난이 된 것처럼 신중하게 범행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고구마 밭 속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구멍도 보인다. 이제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을 잡았다. 증거를 찾고 나니 무슨 큰일을 해낸 기분이 든다.

이제 어쩐다. 일반 인간 수사라면, 증거를 찾고, 범행이 밝혀지면, 범인을 구속수감해야 마땅한데 말이다. 어디 가서 범인을 잡는단 말인가. 하하하.

사실, 이 수사는 처음부터 불공평 했다. 용의자 당사자는 나타나지 않고, 피해자가 형사가 되고, 검사가 되어 벌인 일이다. 용의자의 신변확보도 안 되었고, 용의자의 진술도 전혀 확보하지 않은, 순전히 일방적인 수사였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 아닌 난리가 지나가고 나니, 아내와 나에게 찾아온 건 한바탕 웃음이다.   

"그 녀석들, 귀엽네. 땅콩을 몰래 캐간 것도 웃긴데, 하필 숨긴다는 게 고구마 밭이라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네. 우리가 고구마를 캐다가 들키게 될  줄 알았다면, 고구마 밭에 안 숨겼을 텐데. 땅콩 주인과 고구마 주인이 동일인인 줄 몰랐나벼. 하하하하하."

이렇게 내가 말하고 나니, 웃음이 웃음을 불러 가을 들녘에 웃음꽃이 만발하다.

나중에 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난다. 고구마를 캐고 난 후 땅콩을 캐니 추가 증거물이 확보된다. 바로 땅콩 밭 속 땅굴들이다. 북한에서 남한 땅에 판 '제 1 땅굴, 제 2 땅굴'처럼, 땅굴이 2, 3개가 나 있다.

순간 범행 경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범인은 땅굴을 판다. 파고 또 파서 땅콩 냄새가 나는 곳에 이른다. 땅콩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모두 다 따면 주인에게 의심받으니, 실한 놈으로다가 몇 개를 딴다. 이왕 도둑질 할 거면 그 중에 크고 좋은 놈으로 골라야 한다.

이제 장물들을 들고 어찌할까. 이 맛난 걸 한꺼번에 다 먹기는 아깝다. 그렇다면 저장하는 수밖에 없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두더지는 또 열심히 땅굴을 판다. 태어나서 이때까지 한 거라곤 '땅굴파기'이니 땅굴 파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땅굴을 파다보니 아주 부드럽고 좋은 땅이 나타난다. 거기다가 그 땅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 큰 것들(고구마) 사이에 숨겨져 있으면, 못 찾겠지. (이 생각이 패착인 줄 두더지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하하하하). 그렇게 훔친 땅콩들을 그 큰 것들 속에 숨긴다.

두더지는 생각날 때마다 거기로 가서 하나씩 꺼내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그 행복이 얼마 안 가 들통 나고 깨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괜히 두더지에게, 아니 어쩌면 두더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후, 이런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나의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말해온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그런 일을 가끔 보았어요."

이로써 나와 아내만 겪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이 아니라, 땅콩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나저나, 우리에게 이렇게 재미난 에피소드를 선물한 '귀요미 두더지'가 고맙다. 그놈 한 번 보고 싶다. 하하하하.

이날 거둔 고구마와 '두더지 땅콩 에피소드'는 우리 부부의 가을 수확물이다.
▲ 고구마 수확 이날 거둔 고구마와 '두더지 땅콩 에피소드'는 우리 부부의 가을 수확물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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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텃밭, #고구마, #땅콩, #농사,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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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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