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밥을 지으려고 하니 둘째 녀석이 쌀을 만져보고 싶답니다. 현미 같이 약간 누런 빛을 띱니다.
▲ 자연재배쌀 밥을 지으려고 하니 둘째 녀석이 쌀을 만져보고 싶답니다. 현미 같이 약간 누런 빛을 띱니다.
ⓒ 정명진

관련사진보기


완연한 가을입니다. 시골 다락방에서 내려다보면 누런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농로마다 벼 이삭을 햇볕에 말리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기계로 말리기도 하지만, 자연 건조해야 밥맛도 좋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산하던 농로도 콤바인(수확기계)과 정미소를 오가는 트럭으로 분주합니다.

추수가 한창이던 어느 주말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취재하면서 만났던 농민 한 분이 집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홍성군에서 자연 재배를 실천하고 있는 금창영 씨입니다. 트럭을 세우더니 반쯤 담긴 쌀 포대를 내밉니다. "귀한 쌀이에요. 잘 드세요." 갓 추수해서 찧은 햅쌀을 나누는 일은 인심이 살아 있는 시골에서 흔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자연 재배 쌀에 어떤 노고가 담겨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선뜻 받기가 미안했습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 자연 재배에 대해 기획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 재배는 무투입 농법입니다. 여기서 무투입이란 농약, 화학비료는 물론 유기농법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약제나 퇴비 등 인위적인 물질을 논밭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위적으로 크게 키우지 않고, 자연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기른 농작물이 가장 건강하다는 믿음을 깔고 있습니다. 자연과 공생하면서 농사를 짓는 방식이지요.

"논바닥 기면서 풀매고 나면 주먹이 안 쥐어져요"

농촌마을의 가을은 온통 황금 빛입니다. 추수하는 손길이 바쁜 계절입니다.
▲ 가을들녘 농촌마을의 가을은 온통 황금 빛입니다. 추수하는 손길이 바쁜 계절입니다.
ⓒ 정명진

관련사진보기


단점이라면 자연 재배라는 방식이 몸을 많이 쓰는 농법이라는 겁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습니다. 봄에 모를 심고 나면 한 달 내내 논을 맨다고 합니다. 요즘에 논에 들어가는 농부는 거의 없지요. 제초제를 뿌리거나, 유기농을 위해 우렁이를 논에 넣습니다. 그런데 자연 재배 농부들은 논바닥을 네발로 기면서 풀을 뽑는데, 일하고 나면 주먹이 안 쥐어질 정도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수확량도 적습니다. 비료나 퇴비를 논에 넣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금창영 씨는 1만여㎡(3000평) 넓이의 논에서 자연 재배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번에 조곡(벼 껍질을 벗기기 전의 이삭) 기준으로 2t 정도의 수확량을 올렸다고 합니다. 관행농이나 유기농 수확량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렇게 귀하게 키운 자연 재배 쌀을 덥석 받는 손이 무척이나 겸연쩍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자연 재배 쌀이 얼마나 귀하고 그 맛이 어떤지를 알려서 자연 재배 농작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현미 같은 색깔, 찹쌀 같은 찰기 그리고 달콤함 

국내에서 생산된 자연 재배 쌀을 먹는 것은 저도 처음입니다. 취재차 일본 농장에서 자연농 쌀로 지은 밥을 먹은 적이 있지만, 솔직히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색깔이 현미처럼 누렇지만, 밥을 하고 나면 차집니다. 보통 백미는 10번 이상 깎아내서 영양분은 거의 없지만, 밥맛이 좋습니다. 반면 껍질만 벗긴 채 한 번도 깎지 않은 현미는 영양분이 100% 남아 있지만 씹으면 거칠고 찰기도 없습니다.

제가 받은 자연 재배 쌀은 7분 도미입니다. 쉽게 7번 깎아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미처럼 약간 누런빛을 띠지만 백미보다 영양분이 더 살아있지요. 그런데도 밥을 하면 차지고 윤기가 흐릅니다. 찰기가 많은 밀키퀸이라는 종자의 영향도 있겠지만(그래서 물을 적게 넣습니다.) 비료나 퇴비 없이 자연 상태에 있는 만큼의 영양분만으로 자란 자연 재배 농작물의 특징입니다.

농민들의 말에 따르면, 쌀은 거름기가 적을수록 차지다고 합니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나 퇴비를 뿌리게 되면 작물이 최대치의 거름을 먹게 되고, 그러면 쌀이 푸석해지고 찰기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참고로 금창영 씨의 논은 7년째 무투입, 즉 비료나 퇴비 같은 거름을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찬 맛이 아닌 밥맛을 음미하다"

자연재배 쌀에 기장, 수수, 찰보리를 넣어 맛있는 밥을 지었습니다.
▲ 자연재배밥상 자연재배 쌀에 기장, 수수, 찰보리를 넣어 맛있는 밥을 지었습니다.
ⓒ 정명진

관련사진보기


맛은 달콤합니다. 자연 재배라고 해서 밥맛을 음미하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쌀은 달콤하니까요. 저녁 식사에 초대한 지인에게 자연 재배 쌀이라고 귀띔해주니, 역시 반찬 없이 밥만 한 숟가락 입에 넣은 채 맛을 음미합니다. 원래 밥은 반찬이 아니라 밥맛으로 먹어야 하는 데 말이죠. 그 밥맛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지인도 달콤하다며, 이런 쌀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묻더군요.

홍성에서 자연 재배를 실천하는 7~8개 농가가 도시소비자와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반 시장에서는 자연 재배 농작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그 가치와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소비를 약속해주는 방식이지요.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직거래로 자연 재배 농작물을 사들이는 소비자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 재배 농부들은 유기농이나 일반농민들보다 소득이 낮습니다. 농업 자체가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산업이 되어버렸지만, 이들은 수확량도 적고 시장 가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연 재배를 왜 하는 것일까요?

지난해 자연 재배 기획취재 당시 홍성자연재배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은 금창영씨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자연 재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행복하게 농사짓고 싶어서.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작물이 결실을 맺더군요. 큰 열매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개체를 보존하기 위해 올망졸망 결실을 맺어줍니다. 그런 것을 지켜보면 감사하게 먹을 수밖에 없어요. 무지막지한 상품을 만들지 않아도 농사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더 행복해졌어요. 논밭에 나가면 작물과 함께 '우리 한번 잘 놀아보자'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합니다. 그 논밭에 서 있으면 행복합니다." - 금창영씨 <홍성신문> 인터뷰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남도가 운영하는 <충남넷>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연재배, #홍성자연재배협동조합, #밀키퀸, #금창영, #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