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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표지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표지
ⓒ 역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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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李愃)은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둘째 아들이다. 첫 아들을 잃고 불혹의 나이를 지나 얻은 귀하디 귀한 아들이다. 이들 부자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28세의 나이가 된 이선은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히고, 8일만에 사망한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사도(思悼)세자다.

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 권의 역사평설을 다시 읽기로 했다.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다. 세자 이선이 영조의 하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이 '임오화변(1762년)'이다.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텍스트는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 그리고 <영조실록>, <정조실록> 등 조선의 사관이 기록한 실록과 함께 상소문을 포함한 당시의 각종 문헌들이다.

사도세자와 관련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혜경궁 홍씨의 기록, <한중록>을 바탕으로 세간에 알려져 왔다. <한중록>은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조 생전에 쓴 1편과 정조 사후에 쓴 2~4편은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조는 사건(임오화변) 당시 열한 살의 어린 나이지만 사건의 진상을 잘 알고 있었다. 정조 치세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병이란 말을 하지 못하다가 사도세자의 정신병 주장은 정조 사후에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p.53)

한중록의 내용만으로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영조는 어떻게 왕이 되었나

영조가 왕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면, 사도세자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송시열을 필두로 한 서인(西人)이 정치의 주류로 활약하던 시대의 왕이다. 첫 번째 부인 인경왕후와 계비 인현왕후 민씨는 모두 서인가의 여인들이었지만 둘 다 아들을 생산해 내지 못한다.

이때 장옥정이란 남인계 중인 출신 궁녀가 등장하는데 우리에게 장희빈으로 익숙한 여인이다. 서인들의 거센 반발을 뚫고 숙종은 장희빈 소생의 아들 윤을 원자로 정호하고, 이를 종묘에 고했다. 서인 영수 송시열은 원자 정호를 부정하다가 사약을 받는다. 원자, 윤이 훗날의 경종이다.

5년 뒤 왕비였던 장옥정이 후궁으로 강등되고 실각한다.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는데 이는 숙종의 승은을 입은 숙의 최씨(서인) 공이다. 숙의 최씨는 숙종의 둘째 아들 금을 낳게 되는데, 이로써 희빈 장씨와는 정적이자 연적이 된다. 숙의 최씨의 장희빈을 견제하기 위한 노력은 인현왕후가 중전의 자리로 복위되는 것으로 결실을 맺지만, 왕비는 7년 후 사망한다. 숙종은 이 책임을 희빈 장씨에게 돌린다.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장희빈은 성종의 폐비 윤씨처럼 세자의 친어머니로서 사약을 받게 된다.

숙종 말년엔 서인이 남인 출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남인 출신의 세자, 윤(경종) 대신 서인 출신 세자, 금(영조)을 차기 대권주자로 삼으려는 시도를 노골화 하는 이른바, 택군(擇君)의 시대가 도래한다. 서인에서 갈라져 나와 세자(뒷날 경종)를 지지하는 당파가 바로 소론이다. 금(영조)을 지지하던 서인은 노론으로 불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세자 윤은 조선의 20대 왕이 되지만 노론에게 둘러싸인 무늬만 임금이다. 경종은 재위 4년 만에 숨을 거둔다. 이어서 경종의 이복 동생 금이 21대 임금, 영조가 된다. 잠깐, 경종 초 목호룡의 고변(임인옥사)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조의 역사 다시 쓰기

영조와 사도세자에게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지게 되는 결정적인 일은 영조 31년에 발생한 나주 벽서 사건(1775년)이다. 나주 객사에 한 장의 글이 내걸린 것으로 영조의 치세 전체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소론 강경파 윤지가 범인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노론은 소론 전체를 역적으로 모는 계기로 삼았고, 영조가 이를 추인했다. 영조는 자신의 세제시절 목숨의 은인이었던 소론 온건파 조태구, 유봉휘 등 죽은 대신들마저도 역적으로 규정하고 만다. 

경종이 아직 젊은 시절 이복동생인 영조가 왕세제가 되는 과정에서 경종 2년 발생한 목호룡의 고변(임인옥사)은 경종과 소론의 일대 반격이었다. 노론 4대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이 경종을 제거하고 연잉군(영조)을 추대하려 했다고 목호룡이 고변한 것이다. 이 고변으로 노론 4대신이 사형 당한다. 당시 수사기록이 <임인옥안>인데, 여기에 영조의 이름이 역적의 수괴로 올라 있었다. 소론 온건파의 도움으로 당시 연잉군이었던 영조는 기사회생한다.

영조는 무려 3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노론 4대신의 명예회복과 <임인옥안>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얽매고 있던 모든 족쇄를 풀었다. 심지어는 자신과 노론의 행위가 옳았다는 주장을 담은 <천의소감>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한다. 목호룡의 고변과 임인옥안에 따르면 영조와 노론 4대신 등은 경종 시절 역모에 가담한 것이 분명하다. 영조의 정통성에는 흠집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조가 진정한 탕평군주가 되고 싶었다면, <천의소감>같이 용렬한 책을 편찬할 것이 아니라 모든 당파에 문호를 개방하고 용서와 화해를 청했어야 옳다.

세자의 정치적 입장은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소론에 동정적이었다. 사도세자는 나주 벽서 사건과 토역경과 투서사건 등으로 발생한 소론에 대한 노론의 비정상적인 공세를 바로 잡고 싶었다.

"노론 사간 박치문이 올린 상소는 노론의 정치보복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여인으로 종이 된 자를 제외하고 남자로 종이 된 자는 대조(영조)께 아뢰어 일체 남김없이 진멸해 화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p.221)

소론에 동정심을 보인 사도세자는 노론의 정적으로 규정되기에 이른다. 사도세자에게는 변변한 자기사람 하나 없는 형편이었고, 비극을 더하는 것은 아내인 혜경궁 홍씨마저도 노론 영수였던 아버지 홍봉한의 당론을 따르는 정적이었다는데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아버지 영조의 유고시, 신변이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한 세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형수 혜빈 조씨(효장세자빈)의 오빠인 소론 조재호와의 연대를 꾀하고, 평안감사의 군사 도움을 받기 위해 관서행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동궁의 마당을 파고 집을 지어 무기와 말을 숨기는 행위를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했다는 것이 실록과 당시 문헌을 연구한 이덕일 소장의 분석이다. 이 자구책이자 승부수는 물론 노론에 의해 즉각 역모로 몰릴 소지가 충분했지만 말이다.

 영화 <사도>의 한장면
 영화 <사도>의 한장면
ⓒ 타이거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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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에서 대비 인원왕후 김씨(김혜숙), 정성왕후 서씨, 혜빈 홍씨(문근영),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전혜진), 숙의 문씨(박소담) 등은 모두 노론 일색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혜빈 홍씨의 부친이자 사도세자의 장인이면서 노론 영수인 홍봉한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이 훗날 정조가 되자마자 홍씨가가 몰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2살까지 살았던 혜경궁 홍씨는 임오사화의 목격자가 모두 사라진 순조 때에야 <한중록>을 완성하게 된다고 저자 이덕일은 말한다. 순조 대에 가서 홍씨 일가가 복권되는 배경이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역사책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이 부자지간의 광기 어린 폭거로 기록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도세자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그가 꿈꾼 나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조 33년 사도세자는 <무기신식>이라는 병서를 집필한다. "우리나라는 좁아서 군사를 쓸 땅이 없다. 하지만 동쪽으로는 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오랑캐와 접했으며, 서쪽과 남쪽은 바다지만 여기를 건너면 곧 옛날의 중원이다.<어제장헌대왕지문>" 영조시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북벌을 위해서다.(p.238)

영조 36년 종기 치료를 위해 온궁행차를 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군주의 모습 그대로다.

"원근에서 구경 오는 백성들이 매우 많은데, 사람과 말이 복잡하게 얽혀서 반드시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서 각별하게 구휼하도록 하고 구경하는 사람을 구타해 쫓지 말며 농토를 상하게 않게 하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 2년 전의 모습이다.(p.269)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이 좁은 나라에서 역사를 다시 쓰고 고쳐 쓰다 못해 한 권의 책으로 역사의 일극체제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지금의 세계화 시대에 '나라의 발전이 곧 나의 기득권 침해'라고 여기는 대한민국의 노론일파들이 이 책을 읽고 참회를 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지만 말이다.

실재했던 사건들과 사건들이 연결되는 합리적 추론이 불가능한 역사책은 읽히지 않는다. 아무리 올바르다고 껍데기에 적혀 있어도 자연히 소멸될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정한 역사책은 먼 훗날에도 후손들에 의해 읽힐 것이며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처럼.

덧붙이는 글 |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이덕일 지음, 2011년 12월 24일 초판 2쇄, 역사의 아침 발행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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