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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힘들게 모은 내 살림살이들을 몽땅 도둑맞았다.
 몇 년간 힘들게 모은 내 살림살이들을 몽땅 도둑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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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초군사훈련 4주를 수료한 뒤 '이등병'의 계급으로 소집 해제를 받았다. 그 이유는 병무청에서 지정해준 '병역 특례' 업체에 취업을 해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했기 때문이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전자기기 기능사' 자격증을 딴 게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덕에 나는 다른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소집 해제 이후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들로 스카우트 되면서 초고속 승진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경북 구미시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처음 병역 특례를 받기로 마음 먹고 구미로 올라갈 때 이전 직장에서 받은 월급 80만 원이 내 전재산이었다. 돈이 없어 겪을 수 있는 비참한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뒤 작지만 편히 발뻗고 누울 수 있는 내 보금자리가 생겼고 그 안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구미는 공단지역이기 때문에 나처럼 타지에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설좋은 기숙사를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기숙사에도 많이들 사는데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부터 기숙사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원룸을 구해서 많이들 살았다.

특히 구미 삼성전자 2사업장이 있는 '인동'에서부터 '구평동'에 이르기까지 수 킬로미터 구간에 '원룸단지'가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원룸에 살았다. 당시 나도 구평동에 있는 모 원룸에 1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때가 막 원룸들이 지어져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원룸을 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이다보니 건물들이 모두 새건물이었다. 내가 살던 원룸도 지은 지 몇년 되지 않은 새건물이었다. 총 4층짜리 건물 2개동으로 구성된 우리 원룸의 주인은 포항에 살고 있는 한 젊은 부부였다. 가끔 집주인 부부가 구미에 오면 만나곤 했는데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 집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곰팡이'였다. 대체 건물을 어떻게 지은 건지 온 집안 벽면에 곰팡이가 피었던 거다. 특히 장롱 뒤편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는 곰팡이가 온 벽면을 덮곤 했다. 그러다보니 종일 비워놨던 집에 들어가면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반지하도 아니고 4층 건물 중에 3층이었는데도 이렇게 곰팡이가 심했다.

이 곰팡이 문제를 집주인 부부에게 이야기해 새로 도배를 해달라고 하려고 연락을 했다. 당시에 나는 1년을 계약해서 이 집에 들어왔는데 계약기간이 몇 달 남지 않아 도배를 새로 해주지 않으면 그냥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연락을 받은 그 부부는 한 번 와보겠노라고 이야기를 했고 와서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실랑이가 없겠다는 생각에 그러라고 했다.

그 주 주말쯤 집주인 부부가 부동산 직원과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집안 벽면 곳곳에 피어있는 곰팡이를 보여주고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 부부와 부동산 직원은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벽이 습해서 그런 것 같다며 나에게 외출할 때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외출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 말은 들어서는 안될 말이었다.

도시가스 배관 타고 도둑이 들었다

도둑들은 건물 외벽에 붙은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3층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왔다.
 도둑들은 건물 외벽에 붙은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3층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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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미에는 흉흉한 소문들이 많이 떠돌아 다녔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돈 잘 벌고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소문들 중 가장 충격적인 소문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원룸'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모 대기업 생산직으로 3교대 근무를 하는 여성 2명이 한 원룸에 살았다. 사건이 있던 날, 한 여성은 오전 근무라 오전 7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3시에 퇴근을 했고 한 여성은 야간 근무라 오후 11시에 출근을 했다. 오전 근무를 마친 여성은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새벽부터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 준비를 하려고 일어난 다른 여성은 곤히 자고 있는 친구가 잠에서 깰까봐 불도 켜지 않은 채 주섬 주섬 짐을 챙겨 출근길에 올랐다. 밖에 나오고 보니 사원증을 챙겨나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친구가 깰까싶어 불도 켜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사원증을 찾아서 집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퇴근을 한 이 여성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서 기겁하며 쓰러졌다. 그 방안에는 죽은 친구가 누워 있었고 화장대 거울엔 빨간 립스틱으로 '어제 불켰으면 너도 죽었어'라고 쓰여 있었다.

이렇게 흉흉한 소문이 떠돌만큼 원룸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잦은 범죄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범죄를 당하는 사람 중에 내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범죄 소문을 이야기 하고는 했다.

당시 나는 병역 특례 2년차로 브라운관TV 생산라인의 '수리기사'였다. 수리기사는 생산도중에 발생된 불량품을 정상제품으로 수리해서 생산라인에 재투입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생산라인에서는 '반장'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리다. 대신 그만큼 책임감도 강해야 한다.

오후 5시 30분이면 퇴근시간이다. 하지만 생산라인이 제시간에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2시간 정도의 잔업을 한다. 어쩌다 물량이 없어 5시 30분에 정시 퇴근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녁 스케줄을 잡으며 싱글 벙글이었다.

내가 도둑을 맞았던 그 사건 당일에도 정시퇴근이 가능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라인에서 불량으로 빠진 제품들이 너무 많아 그 제품들을 저녁에 남아서 다 정리하기 위해 잔업을 했다. 그리고 오후 11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현관문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아침에 문 잠그는 걸 잊었나?'라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엉망이 된 집안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어버렸다.

TV, 컴퓨터, 캠코더, 액세서리, 전기밥솥, 전자레인지까지 살림살이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온집안엔 발자국들로 가득했다. 그 도둑들은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와 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곰팡이 때문에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외출하라는 말을 듣고 창문의 양쪽 끝을 10센치미터 가량씩 열어두고 출근을 했었는데 이런 사단이 나 버린 거다.

범인 잡았지만 보상은 커녕 얼굴도 못 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신고를 한다고 해서 당장 범인을 잡을 수도 없었고 없어진 내 물건들도 범인이 잡혔을 때까지 남아 있지 않으면 돌려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직장 상사분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날 월차휴가를 썼다. 그리고 옆집부터 시작해서 우리 건물에 함께 사는 집들을 다 방문해서 목격자를 직접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일대 원룸에 똑같은 피해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낮 시간에 도둑들이 들어와 옆집의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걸 보아도 평소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사 가는가보다' 생각하고 지나친다고 한다. 메마른 이 시대를 잘 대변해주는 범죄다.

창문 열어 놓고 다니다가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안 집주인네 부부는 자기네들한테 불똥이 튈까 싶어 내 연락을 피했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내가 이사를 가겠다고 하니 아무런 조건없이 보증금을 도로 돌려 주었다. 그리고 신고한 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경찰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내 마음에 상처만 남겼다.

원룸을 나와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인동에 있는 3층짜리 상가 주택이었다. 원룸만큼 깔끔하진 않았지만 같은 층에 주인 할머니가 계속 계셨고 아래층이 상가라 사람들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이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달간 잃어버린 살림살이를 사서 채워 넣느라 금전적으로도 많이 고생했다. 그렇게 아픈 기억들이 잊혀져갈 무렵 경찰에서 범인을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당장 가서 그 범인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범인 신변보호를 해야 한다며 만나게 해주질 않았다. 대략적인 신상정보를 보니 겨우 그들은 스물한 살과 스물두 살의 어린 친구들이었다. 낮 시간에 원룸에 빈집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획적으로 빈집들만 돌아다니며 원룸털이를 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빈집에서 훔쳐낸 가전제품과 살림살이를 내다 팔다가 계속적으로 많은 물건을 파는 게 의심스러워 신고한 중고상 주인 덕에 덜미가 잡혔단다.

제일 중요한 내 물건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니 이미 훔쳐낸 모든 물건을 팔아 치운 상태고 지금 컴퓨터 2대만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분명 범인을 잡았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고 괘씸한 범인의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사건은 종결됐다.

이게 벌써 11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그때보다 '1인 가구'가 훨씬 더 많이 생겨 났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더 개인주의로 변해가면서 당장 우리네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또한 '예외'가 아닌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을 없애고 항상 조심 또 조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아파트 고층까지도 침입하는 사건들도 있다고 하니 고층이라고 해서 창문을 열어두고 외출하는 것은 특히 삼가야 한다.

언제든 누구나 다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범죄자들에게 '자비'란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아무소용 없으니 내가 그 표적이 되기 전에 스스로가 내 것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방법만이 최선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공모 '도둑들' 응모글입니다.



태그:#원룸, #도시가스, #창문, #도둑,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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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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