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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정신장애 진단·통계 체계' DSM-Ⅳ에 의하면, '화병'은 한국인에게서만 주로 관측되는 문화 관련 증후군이다. 이 질환을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하는데, 분노(火)가 계속 응어리져 답답(鬱)한 상태를 말한다.

울화병에 걸리면 여러가지 신체 증상이 동반되지만, 특히 명치 부근이 응어리지는 듯 답답할 수 있다. 고 최상진 전 한국심리학회장은 <한국인의 심리학>에서, 울화병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인 '울분'과 연관된다고 설명한다.

가령 대형 마트 직원이 손님의 갑질에 의해 굴종의 서비스를 강요 당한다면, 원통하지 않겠는가. 이때 분노가 나타나면 그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징후다. 그런데 분노가 분출되지 못하고 응어리져 울화병이 도지기 일쑤인 건, 한국 사회가 분노의 표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고통 하나쯤 있다', '관심직원이냐' 등등…. 이 사회적 마취제들은, 청년들에게도 가해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힐링 담론은 약발 떨어진 지 오래고, '더러운 꼴 참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류의 처세술 담론은 아직 유효하다. 그러나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류의 노력 담론은 이제 잘 안 먹힌다.

헬조선의 '울화병'

한 트위터리안이 제작 및 배포한 <지옥불반도>. 우리나라의 상황을 온라인 게임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맵에 빗댄 게 눈길을 끈다. 출생을 하면, 지옥문이 열리고 평생 노예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고 일만하다가 결국 탑골공원으로 수렴된다.
 한 트위터리안이 제작 및 배포한 <지옥불반도>. 우리나라의 상황을 온라인 게임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게임맵에 빗댄 게 눈길을 끈다. 출생을 하면, 지옥문이 열리고 평생 노예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고 일만하다가 결국 탑골공원으로 수렴된다.
ⓒ 이카무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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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전국 성인남녀 81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유선전화, 신뢰수준 95% 오차 ±3.45%),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어렵다'는 답변이 81%에 이르렀다. 또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한 편'이라는 답변도 90.7%에 달했다.

그러니 청년들이 이 땅을 절망스러운 '지옥불반도(지옥+한반도)' '헬조선(지옥+조선)'에 빗대고, 환멸스러워 하는 건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때때로 '죽창을 달라'며 분노가 표출되는데,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못이겨 죽창을 들었던 1894년 동학 운동의 민초들과도 조금은 닮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사회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만 맴돈다. 물론 조상들도 울분을 분출하기보다는 응어리지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국어시간에도 고전문학을 배우면 '운명에 순응'이니 '한(恨)'이니 하는 정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납량특집 귀신들은 죄다 사연이 있고 '한(恨)'풀이를 하며 어둠 속만 헤맨다….

비주얼 노벨 게임 <페이트 할로우 아타락시아>를 '헬조선'과 전봉준에 빗대어 패러디한 <헬조선 아타락시아>의 한 장면.
▲ 녹두장군 전봉준 비주얼 노벨 게임 <페이트 할로우 아타락시아>를 '헬조선'과 전봉준에 빗대어 패러디한 <헬조선 아타락시아>의 한 장면.
ⓒ 디씨인사이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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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청년들은 인터넷이라도 있지 연로하면 더 곤란하다. 민성길 의학 박사의 <화병연구> 임상경험에 따르면, 50~70대는 분노를 직접 표현하기보다 '한(恨)'을 품고 긴 하소연을 하거나 가슴 응어리·열감 등 신체 증상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반면 20~40대는 스스로 화병이라며 병원을 찾는 일이 증가하는데, 분노를 직접 표현하고 공격 충동을 호소하는 급성 경향이 두드러졌단다. 이는 대책없이 '짱돌부터 들라'는 짱돌 담론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참 어렵다. 분노를 응어리뜨릴 수도 대책없이 분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헬조선'이 참 울화병 터지는 곳이긴 한데…. 그래도 미리부터 죽창이 "자기파괴적" "파국적 결말"(경향신문)을 맞이할 거라고 또 단정지을 것까진 있나 싶다. '대책없이' 짱돌을 드는 게 문제지, '대책있게' 죽창 든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대책'을 확보하느냐다.

대나무숲 역사에서 곱씹는 '죽창'의 가능성


을(乙)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대나무들이 솟아올랐다.
 을(乙)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대나무들이 솟아올랐다.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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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잡히지 않는 맥락(Context)들을 존중해야 한다. 이때 자신들을 '지키려고' 싸워온 청년들의 '노오력'을 인정할 수 있다. 이야기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판사 직원이 트위터에 '출판사X'라는 계정을 만들어 사장의 갑질과 비리를 내부고발했고, 이것이 '대나무숲(아래 대숲)' 열풍으로 번졌다. '직장인 옆 대나무숲' '알바처 옆 대나무숲' '우골탑 옆 대나무숲' 등 다른 계정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이때 한창 사회에 갑질논란이 대두됐고, 당시 대숲들은 익명으로 내부고발을 하며 사회비판 분위기에 기여하는 동시에 청년들의 울분도 어느 정도 해소했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처럼!

그런데 트위터 구조 때문에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다. 계정 비밀번호를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탓에, 운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세력들이 비밀번호를 알아내자마 계정을 삭제하는 등 방해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훈은 뭘까.

'자율성'을 지키는 게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자보 떼는 학교... 안녕 못한 학생들". 지난 2014년 1월 7일 오후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떼고 있다.
 "대자보 떼는 학교... 안녕 못한 학생들". 지난 2014년 1월 7일 오후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떼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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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14년 대학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실명' 운동이었다. 고려대 주현우씨가 처음 대자보를 붙여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안부를 묻자, 대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다.

물론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던 '꿘(운동권)'들의 암약도 있었다. 그러나 운동 주체가 불특정 다수의 실명으로 활동한 '대학생'들이었고, 장소도 그들이 쉽게 연대할 수 있는 '대학교'라는 일상 공간이었다는 점이 더 눈길을 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사람들에게는 '경제자본' 격차뿐 아니라 학력·지식·글쓰기 능력 등 '문화자본' 격차도 존재한다. 대학생들은 대자보라는 형식의 문화를 생산해 사회에 증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언론은 이 '지성의 전당'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목하게 마련이다(권위가 예전만 못해도).

활동이 실명으로 가능했던 건, 민주주의 의식 자체가 높기도 하지만 공간이 운동 주체들 서로가 지지해주고 연대할 수 있는 대학이었다는 점을 무시 못한다. 그러나 이 운동도 지속되지 못했다. 학교가 학칙을 앞세우거나 일베 회원들 몇몇이 대자보를 찢고 불태우는 등 개입이 있었다.

마치 트위터 대숲이 당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운동의 파급력이 있어도, 어떤 구체적 요구들로 갈무리 되지 못해 스파크가 오래갈 수 없었다. 교훈은?

'문화자본' '연대' '구체적 요구' 확보가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

최근 페이스북에는 '어둠의' 대숲들이 늘어났다. '어둠의'라는 수식어가 드러나듯, 쌓인 이야기들을 한 번 풀어보라는 암시가 깔려있다.
▲ 페이스북 대나무숲 최근 페이스북에는 '어둠의' 대숲들이 늘어났다. '어둠의'라는 수식어가 드러나듯, 쌓인 이야기들을 한 번 풀어보라는 암시가 깔려있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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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은 페이스북에 대자보 실황중계를 하며, SNS 파급력을 잘 살린 케이스다. 대학생들은 '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즉 자기 이야기를 잘 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는 문화자본을 갖추고 있었다는 게 크다.

스파크가 사라지자 절묘하게도 2014년부터 페이스북에는 각 대학 이름을 단 대숲들이 등장했다. 사회를 향해 외치고픈 열망이 계속됐고, 트위터와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의 익명성과 실명성을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놓은 구색을 갖췄다.

각 대숲 페이지에 제보글을 올리려면, 외부의 구글 문서시스템이나 학생들이 자체 프로그래밍한 익명제보함을 거친다. 이때 관리자에게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관리자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대숲에 옮길 만한 글인지 아닌지(주로 욕설, 인신공격 등이 걸러진다) 판단한다.

옮겨진 글을 보고, 실명으로 꾸준히 자기 주관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다. 제보는 개인적 연애, 학점, 취업 고민 이야기부터 대학 구조조정이나 국정원 논란 등 사회 현안까지 폭이 넓다. 관리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엄격한 대숲은 인기가 떨어진다. 언제든 페이지 구독을 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훈은?

운동에는 주체들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정치와 문화의 가장자리에서

페이스북 대숲은 한계가 있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이용자들을 참여시키고 상호견제를 통해 균형을 갖추지만, 대숲은 여전히 '유령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목소리(제보)는 어둠 속에서만 들려오고, 메아리(댓글)의 수신이 완료됐는지 알 수 없다.

의제들도 파편적으로 올라오니,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 일상의 공간에 출현하기도 어렵다…. 결국 대숲은 대숲일 뿐이다.

프랑스 역시 경제 불평등과 계층이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소한 철학교육과 작문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는다.
 프랑스 역시 경제 불평등과 계층이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소한 철학교육과 작문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는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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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사회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방식으로 치뤄진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사회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는 방식으로 치뤄진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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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고 싶은 열망은 이제 '죽창'으로 돌아왔고 새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다룬 운동의 조건을 결산하자. 첫째,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참여를 이끌어내고 견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셋째, 구체적 합의와 연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운동의 주체들이 문화자본을 가져야 한다.

앞의 세 가지는 결국 판의 '구조'를 어떻게 짤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대숲과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은 이 필요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진 못했다. 그러나 역사는, 청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투쟁을 꾸준히 해왔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열망을 '구체적 구호'로 만들어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도, 기회도 얻지 못했을 뿐이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진보정치에 투신 중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불평등은 경제 구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진보정치 내부에 경험 많은 활동가와 입당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사이에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대학 교지에서 활동하는 말 잘하는 사람들과 고졸자 사이에도 있을 수 있다.

SNS에는 여전히 겉돌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미 고민됐어야 할 점은 그들이 자신들의 정치와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도구'를 가졌느냐다.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진보정당과 엘리트들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물론,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인식수준은 더 노답이지만.

페이스북 '죽창당' 페이지는 '죽순'으로 쪼그라들었다.
 페이스북 '죽창당' 페이지는 '죽순'으로 쪼그라들었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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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청년들은 '꼰대'에 반감을 가지고 '주입식 교육'을 미개한 사회 풍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들은 울화병에 걸렸고, 그것이 때때로 과격한 모습을 보이는 경향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죽창을 달라'는 말을 진보좌파라면, 좀 융통성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청년들이 "자기파괴적"인 게 아니라 엘리트들이 그들을 "자기파괴적"이라고 말할 때, 정말로 "자기파괴적"으로만 머물 수밖에 없다.

얼마전 다른 정당도 아닌 '죽창당'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다가, 관심을 못 받고 임시 휴면상태로 바뀌며 '죽순'으로 이름이 바뀐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와 문화의 가장자리에 선 한 청년이 남긴 말이다. 여기에 응답할 자 누굴까.

"결국에는 위로 솟아 오르리라."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한국인의 심리학>(최상진 / 학지사 / 2011 / 1만7000원)
<화병연구>(민성길 / 엠엠커뮤니케이션 / 2009 / 1만5000원)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 사월의책 / 2011 / 2만3000원)
<물화>(악셀 호네트 / 나남출판 / 2006 / 8500원)
<구별짓기>(피에르 부르디외 / 새물결 / 2005 / 2만7000원)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 까치 / 2008 /8000원)



태그:#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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